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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이야기

숲 속의 이야기 아침부터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내나무들이 고개를 드리우고, 간밤에 핀 달맞이꽃도 후줄근하게 젖어 있다. 이런 날은 극성스런 쇠찌르레기(새)도 울지 않고, 꾀꼬리며 밀화부리.뻐꾸기.산까치. 불새.휘파람새 소리도 뜸하다. 어제 해질녘, 비가 올 것 같아 장작과 잎나무를 좀 들였더니 내 몸도 뻐근하다. 오늘이 산중 절에서는 삭발 목욕날. 아랫절에 내려가 더운 물에 목욕을 하고 왔으면 싶은데, 내려갔다 올라오면 길섶의 이슬에 옷이 젖을 것이고 또 땀을 흘려야 할 걸 생각하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솥에 물을 데워 우물가 욕실에서 끼얹고 말까보다. 숲속에서 살다보면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기분도 상쾌하여 사는 일 자체가 즐겁지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세게 부..

무소유(법정) 2022.01.17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 겪은 일들을 이제와 낱낱이 되돌아보면, 그 때 그 때 내 자신을 형성하는 데에 어떤 받침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진정한 수행이 무엇인지를 몸소 겪으면서 자신을 다스려온 것이다. 안으로 살피는 일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오두막 살림살이의 밝은 면만을 알렸기 때문에 내 거처를 마치 무릉도원처럼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은 도시건 산중이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몸담아 사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디서나 참고 견뎌야 할 일들이 있다. 내가 볼일로 ..

무소유(법정) 2022.01.17

그곳에서 그렇게 살지 들 않는가

그곳에서 그렇게 살지들 않는가 자다가 비 지나가는 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밤비 소리는 낮에 내리는 빗소리와는 또 다르다. 잠결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빗줄기 하나하나가 무슨 사연을 지닌 채 소곤소곤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밤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빗소리로 인해 숲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하늘은 구름을 떨치고 하루하루 높아간다. 날이 맑게 개어야 창을 바를 텐데, 궂은 날씨로 자꾸만 뒤로 미룬다. 바람기 없이 날씨가 화창한 날 창을 바르고 있으면 산중의 하루가 그지없이 풋풋하다. 이 산중에 들어와 산지 꼽아보니 어느덧 열두 해째가 된다. 세월 참 빠르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두 해째라니. 처음 이 오두막에 들어올 때는 무인지경에서 서너 철 살까 했는데 그렁저렁 지내다..

무소유(법정)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