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qhrwk 2022. 2. 5. 08:08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자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로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현자賢者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感官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져버린 파리찻타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가사는 출가 수행승이 입는 법복

 

여러 가지 맛에탐착하지 말고 욕구하지도 말며 남을 양육하지도 말라

문전맏 밥을 빌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없애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내던져 버리고

또 쾌락과 우수를 떨쳐버리고 맑은 고요와 인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우환인지를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자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自制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의 헤매임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강론

 

범속의 늪에서 벗어나라

 

"심불반조心不返照 간경무익看經無益"이란 말이 있다.

경전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이익도 없다는 뜻이다.

소설이나 신문기사를 읽듯이 건성으로 읽고 지나친다면 설사  대장경을 줄줄 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듯 독송할 때 경전은 살아서 빛을 발한다.

경전이라는 거울에 일상의 자신을 비추어봄으로써 자신의 현 존재를 뚜렷이 인식할 수 있다.

 

우리들이 한 집에 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사귀어온 사이라 할지라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함께 여행이라도 하면서 며칠 동안 한 울 안에서 같이 지내보면

 그 사람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

 

좋은 친구란 세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다.

내 자신 또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때로는 헤알보아야 한다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평생을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끌려가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불행한 인생이다.

적어도 자기 인생만은 자주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초기 경전에는 '선우善友'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그만큼 친구와 영향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친구를 잘 두어 덕을 보는 일도 많지만, 친구 때문에 한평생 말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부처님이 석가족이 살고 있는 한 마음에 머물렀을 때, 시자인 아난다가 부처님께 불쑥 이런 말씀을 드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선량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이 길의 절반에 이른 거나 다름이

 없겠습니다."

 

이 길이란 구도의 길이고 열반에 이르는 길, 또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길일 수도 있다.

아난다의 이와 같은 말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착한 벗은 이 길의 전부이니라."

그러면서 부처님은 더 자세히 그 뜻을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나를 선우善友로 삼았기 때문에 늙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늙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죽지 않으면 안 될 인간이면서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착한 벗을 만나 함께 지내는 것은 이 길의 전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와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 훤히 알 수 있다. 친구란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들이 흔히 겪는 일인데,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그 친구가 하는 짓을 보고 환멸을 느끼면서 함께

길 떠난 것을 못내 후회하는 일이 더러 있다.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해봐야 그 친구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이럴 바에야 혼자 떨어져서 자기 식대로 지내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휘화가게 된다.

속물들과 함께 어울리면 내 자신도 또한 속물이 되고 만다.

"외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

조금은 외로울지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맑히는 일이기도 하다.

 

시시껄렁한 세속적인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빠져들지 말고 그런 일에 관심도 갖지

 말라는 것.왜냐하면 그것은 내 자신을 멍들게 하는 오염이니까.  창조적인 만남이란,

서로가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범속한 늪에서 거듭거듭 헤쳐나오는 일이다.  

 서로가 잠든 영혼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켜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이다.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라"는것. 이것은 집착이구나, 여기에는 즐거움도 별로 없고 괴로움뿐이로구나.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싯밥이구나,이렇게 알고 미련없이 떨쳐버리면서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

  새로운 시작을 통해 인생은 거듭거듭 되살아난다.

 

부처님 제자 중에서 카샤파(가섭)와 아난다는 매우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카샤파는 아주 검소하고 가난하게 지내는 것을 수행자의 이상으로 삼는 반면, 아난다는

 부처님 시중을 드는 사자였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에게서 호의와 많은 보시와 공양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은 걸식하는 태도에서도 아주 대조적이었다.

카샤파의 경우는 일부러 가난한 집만을 찾아 다녔다.

그 까닭은, 현재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일찍이 복을 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이 다음 생에라도 가난을 면하려면 지금부터 복을 지어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니까 단순히 밥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복밭을 마련해주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언젠가는 문둥병 환자에게서 걸식을 한 적도 있었다 가는 평생 마른 옷은 입지 않고 다 해진 누더기만을

걸치고 다녔다.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이 카샤파에 의해 최호의 경전 편찬이 이루어졌다는사실로

미루어보더라도, 교단에서 차지한 그의 덕과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얼굴이 잘생긴 아난다는 여승들에게나 일반 신자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부처님을 가까이서 모신 그늘의  덕도 었었을 것이다. 그는 걸식할 때 부잣집만을 골라 다녔다.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 했을 법도 하지만, 자기네가 먹고 살기도 어려운처지에 놓인 가난한

 집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이 남에게 보시하기에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배려에서였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걸식(탁발) 태도를 보고, 부처님은 그런 차별을 두지 말고 차례대로 평등하게

걸식하라고 타이르신다.

 

여러 가지 맛을 탐해서 집착하지 말고,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말라는 것.

문전마다 평등하게 고루 음식을 빌 것이지 어느 특정한 집을 골라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법자체가 평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比丘란 팔리어 빅쿠bhikkhu를 음역한 말인데. 거지라는 뜻이다.

보통 거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콧대가 세어 보시나 공양을 반고도 굽신거리지 않는다.

걸식乞食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밖으로는 밥(음식)을 빌어 육신을 돕고, 안으로는

 법(진리)을 빌어 중생을 돕는다는 뜻이다. 보시를 받고도 그에 알맞는 법을 베푸지 않으면 빚을 지게 된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시주의 은혜() 가 가벼워야 한다. 세상에는 절대로 공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을살라는 교훈, 지당한 말씀이다

<숫타티파타>에 들어 있는 신선한 말씀 중에서도 이런 표현을 대할 때 말의

 아름다움에 감사를 느낀다.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은 어디에도 거리낌없이, 숲 속의 용맹한자처럼, 늘 살아 움직이는 시원한 바람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오렴되지 않는 청초한 연꽃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른 곳 '성인'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어진 이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얼어붙은 대지에 다시 봄이 움트고 있다.

겨울 동안 죽은 듯 잠잠하던 숲이 새소리에 실려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우리들 안에서도 새로운 봄이 움틀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미루는 버릇과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인간의 봄은 어디서 오는가?

묵은 버릇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때 새 움이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