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름다움

법정스님 그림자 밟기

qhrwk 2022. 11. 15. 08:28

법정스님 생전에 '강원도 어느 산골 오두막'으로만 알려졌던 <수류화개> 가는 길, 세인들의 속된 호기심을 나무라는듯 거대한 설해목이 길을 막고 누워있다.
(사진 / 무심재 님, 2011년 겨울) 진고개 넘어가는 길, 산 밑에는 화전민의 흔적같은 밭과 납작 엎드린 집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계류를 건너 낙엽송 비탈을 지난 뒤 널따란 눈밭 옆길로 숨어들듯 찾아든 수류화개 산방. 일부러 지은 집이 아니고 예전에 살던 집을 법정스님 쓰시라고 드렸단다. 스님은 '등기'도 안하고 17년을 여기서 기거하셨는데 사후에 권리 문제가 생겨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사진 / 수메루 님, 2010년 봄) 이 개울에서 스님은 세수도 하고 찻물도 길으셨겠지.얼어붙은 개울물 때문에 산짐승들이 마실 물이 없을까봐 스님은 새벽마다 도끼로 얼음을 깨셨다지.
보온재 대신 굴피로 휘감은 굴뚝이 강원도 산간을 실감케 한다. 방문 앞에 매달린 낡은 등이 스님의 분신인양 반갑다.
20대 초반에 스님은 내게 우상이셨다. 문고판 책 한권으로 나를 사로잡아버린 법정스님. 불일암 가는 길에 우연히 스님을 만났는데 그 형형한 눈빛에 내 발이 그만 얼어 붙어 버렸다. 스치고 나서야 그 분이 법정스님이란 걸 알았고 뒤쫒아가기엔 이미 멀어진 뒤였다.  그 안타까움이라니...
(사진 / 무심재 님) 진심 어린 마음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그의 거짓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한동안 이유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쉽게 잊어버리는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이세상을 살아가다 힘든일 있어  위안 받고 싶은 그누군가가 당신이기를그리고 나이기를 이세상 살아가다 기쁜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누군가가 당신이기를그리고 나이기를이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서로에게 기쁨을 주는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법정스님 '귀한 인연이기를'>

서대암 가는 길에 본 중대암. 산비탈을 개간해 계단식으로 지은 건물이 특이하다.

저지난해 오대산 5암자 순례길에서 하룻밤 묵은 기억이 새롭다.

기도객들이 많아 밤새 엎치락 뒤치락...

한겨울 서대암에 오게 될줄 몰랐다. 아니, 여기 다시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홀로 수행하는 스님이 외부인의 발길을 꺼려 두번 다시 올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서대암에 얽힌 일화 하나. 초겨울에 스님이 불을 땠는데 아무리 불을 때도 연기가 안나 굴뚝소제를 했더니그 속에서 뱀이 한 가마쯤 나오더라고. 굴뚝 속에서 겨울잠이 든 뱀 때문

에 스님도 혼비백산하셨다고.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에 여길 왔었는데, 아니 여기까지들어오지도 못하고 뒤돌아섰는데...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밟아 서대암에 이르니 텅빈 암자를 키큰 전나무가 지키고 있다. 인적이 끊긴 산 속에서 하루 한끼를 먹으며 살아가는 수행자의 삶- "이런 데서는 창자만 안 붙으면 살지요."하시던 어느 스님이 생각난다.
너와집 지붕에 켜켜이 얹어놓은 눈 시루떡, 누가 누가 먹을까?
재작년 여름 서대암에서. 암자 뒤로 동자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법정스님의 오두막에 가기 위해 무심재 여행에 편승했는데 이외의 보너스까지 얻게 되었다.   다시 여기 올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늘 추억을 가슴에 고이 간직해두고 싶다.
(사진 / 무심재 님, 2011년 겨울)   생각 외로 눈이 없어 다소 실망했지만 아무나 갈수 없는 곳을 밟아서 감개무량하다.   조근조근 암자의 내력을 일러주시는 무심재 님이 미덥고도 고맙다.   서대암에서 내려와 출출할 거라 여겼던지 일행들에게 찐감자를 준비한 그 마음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일월암 가는 길에 만난, 내가 살고 싶은 집.   아무래도 여기 다시 오지 싶다. 푸른 녹음이 있을 때, 아니면 깊은 가을, 다시 한번 오고 싶다.
활짝 꽃피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절명해버린 꽃.   산수국 무더기 넘어 일월암 지붕이 일몰에 잠기고 있다.
법정스님의 또 다른 흔적 일월암. 왼쪽은 김희준 건축가가 지은 일월암 객실. 해와 달, 혹은 참선중인 스님을 형상화한 건물로,  스님은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으로 내려와 맞으셨다고 한다.   새벽 6시 출발,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서 일행을 만나 무심재 여행에 동행했던 하루. 돌아오는 길, 대관령 터널을 넘을 때 휘몰아치듯 앞을 가로막던 운무를 잊을 수가 없다. 시속 20키로 저속으로 그 안개 속을 겨우 빠져나와 7번 국도에 접속했다. 자정 무렵, 자리에 누우며 내가 나를 위로한다. 잘했어! 좋았어! 오늘 여행 만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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