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저는 20년 가까이 남편을 병간하고 있는데요.. 너무 힘이 듭니다.
제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할까요?
▒ 답
아픈 환자를 돌보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그것을 죄값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프기 전에도 별로 도움을 못 받았는데 이젠 병간까지 해야 하니까
결혼해서 좀 덕을 보기는커녕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거 같은데 왜 이래야 하나?
아, 전생에 빚진 거 갚는다고 하더라..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안하긴 한데
정말 전생에 빚진 게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이 말이죠?
그럼 만약에, 내가 '전생에 빚진 거 없다'고 말하면 자기는 어떻게 할래요?
남편을 어떻게 할 건데? 이혼하고 갖다 버릴 건가?
(그건 아니지만, 문득 문득 원망스런 마음이 올라옵니다.
남편이 안 그랬으면 돈 벌어서 지금쯤은 좀 편할 텐데 ~
남편이 그렇게 서운하게만 안 했어도 이렇게 누워 있어도 덜 미워할 텐데 ~
몸이 아플 때도, 남편이 조금만 더 잘 했어도 ~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내생에 또 이렇게 살더라도 일단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정말 제가 남편을 병원에 보내고 해서, 전생의 빚을 덜 갚으면
정말 내생에 또 만나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없어요! 자기 죄 지은 거 없어요!
자기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자기가 지금 말한 것은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정당한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죄 지은 것도 없고, 빚진 것도 없어요.
남편은 상태가 어때요? 대소변 받아내야 하나? (그 정도는 아닙니다)
밥은 자기가 떠 먹어요. (네)
그러면 괜찮네~
내가 아는 분은 대소변 받아내고 밥도 떠 먹여주고.. 그러고도 살았어요.
그래서 정말 도망가려고.. 그래서 나한테 물었는데.. 내가 몇 마디 해줬어.
전생의 죄냐? 아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말고, 니 맘대로 해라..
그런데 가면 아런 일이 있을 거고, 안 가면 이런 일이 있을 거다..
그랬더니 고민하다가 그냥.. 도망 안 가고 뒷바라지를 잘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행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내 기도문 받고 3년 만에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나한테 와서 엄청나게 고마워했어요. 왜?
그때 못 참고 가버렸으면 장례식장에 오지도 못하고, 애들하고 완전히..
아버지 버린 사람이라고 원수지고 그랬을 거 아녜요?
그런데 끝까지 병수발을 했기 때문에, 일가친척 누구도 말을 못 해요.
아이들도, 엄마가 재혼을 하든 말든 할 말이 없어요.
완전히 자유인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내생을 멀리 볼 필요가 없어요.
내 기도문 받으면 3년 만에 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자기 딱 그만두고 갔다가 만약에 그 사람처럼 몇 년 안에 돌아가시거나 하면
자기 후회할까 안 할까? (하겠죠)
애들 보기에 면목이 설까 안 설까? (안 서겠지요)
그래서 내생이 아니라 금생에, 이런 재앙이 곧 닥치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병간이 너무 힘들면, 이제 자기도 늙어가고 건강도 안좋은데
남편을 어디 시설에 맡기는 건 생각해봤어요? 애들은 뭐라고 그래요?
(딸하고는 아직 그런 얘기 해본 적 없고요, 아들은 그런 얘길 몇 번 하더라고요)
남편은 어때요? (아직 저도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아이구, 내생이 겁이 나 가지고? (ㅎㅎ 네, 또 이렇게 살아갈까봐요..)
집에서 모신다고 꼭 환자한테 좋은 건 아녜요.
우선 의사선생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고, 아이들하고 의논하고
일단 남편을 시설에 한 번 모셔보세요.
남편이 처음엔 싫어할지 모르지만 차차 적응할 수 있으면 적응하는 게 좋다..
자기가 모신다고 꼭 좋은 거 아녜요.
그리고 남편이 도저히 적응을 못하면 다시 집으로 모시더라도
아들딸하고 의논해서 역할분담을 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 일주일에 5일은 엄마가 모실게, 토요일은 아들이, 일요일은 딸이 돌보고..'
이렇게 정하고 주말엔 자기도 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조치를 취하면 좋겠어요.
전생에 빚진 것도 없고, 내생에 벌받을 일도 없어요.
다만, 신체가 불편한 사람은 누가 돌봐도 돌봐야 하는데
그래도 나하고 인연이 된 사람이니까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돌보는 데 누가 앞장서야 할까? 내가 제일 앞장서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이들하고 의논해서.. 당분간 시설에 좀 모시고
안 되면 집으로 모시고, 또 힘들면 시설에 좀 모시고..
그리고 집에 모실 때는 주말마다 번갈아 가면서 아이들 도움도 좀 받고..
시설에 모시더라도 주말에는 반드시 내가 가서 돌보고.. 그렇게 해보세요.
이건 빚진 게 아니고, 복 짓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스님..)
'향기로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 복 (0) | 2022.03.03 |
---|---|
지나친 욕망 (0) | 2022.03.03 |
운명 바꿀 수 있다 (0) | 2022.03.03 |
수행의 가장 큰 적 (0) | 2022.03.03 |
고집스러운 삶 (0) | 2022.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