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즉문즉설 -
▒ 문
제가 예전에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다른 분들의 고민을 들어보니까, 제 고민은 고민도 아니네요~"
그랬더니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교수님께서
"그런 말은 집단의 심리적인 안정성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삼는 것은
상대와 본인 모두에게 위험한 방법이라고 하시면서
저한테 실망하신 듯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수행자로서, '상대보다는 다행이다' 위안을 삼는 게 위험한 일인가요?
▒ 답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됩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출발해라"
이것은 절대적인 비교입니다, 생존의 비교..
'남보다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하면
이 세상에 고민할 게 뭐가 있겠어요?
욕을 먹어도 살아 있으니까 먹는 것이고
한 대 맞아도 살아 있으니까 맞는 것이고
병에 걸려도 살아 있으니까 걸리는 겁니다.
죽었으면 욕 먹을 일도, 맞을 일도, 병 걸릴 일도 없지요.
이렇게 관점을 딱 잡으면 고해(苦海)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괴로운 것은 상대적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내 팔이 부러졌을 때,
둘러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망을 하고 나만 살았다면
"아이구, 다행이다, 부처님 가피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아무도 안 다치고 멀쩡한데
나만 다쳤다고 하면 "재수 없다~" 이럴 겁니다.
이렇게 좋고 나쁘고, 재수 있고 없고는 주변하고 비교해서 일어나는 것이지
그게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믿을 만한 게 못되는 겁니다.
이게 중생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교수님은
이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불교의 가르침은,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냥 그 상황이 벌어졌을 뿐이지, 그걸 가지고 좋으니 나쁘니 하지 마라..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재수 있다 없다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버스사고로 팔이 부러졌으면 그저 팔이 부러졌을 뿐,
부처님 가피다, 부처님 벌이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생각일 뿐이고,
팔을 다쳤으면 병원으로 가서 고치면 된다,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이 여여(如如)하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좋다 나쁘다, 마음의 널뛰기 하지 말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라..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 평정심이 최고지만, 차선책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
그러나 아직 내 수준이,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된다면
두 번째로 차선책은, 재수 없다는 것보다는 재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낫다..
만약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면
다친 다리를 붙들고 "부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네~" 이러면
어차피 이미 당한 고통에다가, 부처님에 대한 원망까지 더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다리 다친 것하고 부처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고,
다쳤으면 그냥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인데,
그게 안 되고 마음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 부러진 다리를 보고 "아이고, 그래도 기도를 했더니 한쪽은 멀쩡하네, 다행이다~"
이렇게 일으키는 게 훨씬 더 낫다.. 이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긍적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진리의 길도 아닙니다.
진리의 길은, 그것을 좋게 보지도 않고 나쁘게 보지도 않는 것인데..
중생은 어차피 한 생각을 일으키니까,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일으켜라..
수행의 목표는 평정심이지만 평정심을 잃었다면
차선책으로 얼른 긍정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 마음의 습성은 부정적으로 돌아가기 쉽기 때문에
자꾸 긍정적으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꿈도 안 꾸는 것보단 못하지만
이왕 꿀 바에는 그래도 악몽보다는 좋은 꿈이 낫다..
세상에는 천당과 지옥이 있더라도 부처님은
천당과 지옥, 모두를 벗어난 해탈의 길을 보여 주신다..
물론 지옥보다는 천당이 좋지만 그것도 불완전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