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식수가 밀려 든다♣
입하 절에 들어서면서 고랭지에도 침묵의 숲이 깨어나고 있다.
자작나무 가지에 여린 새 잎이 피어나고, 전나무에 새움이 돋고 낙엽 송이 무리 지어 있는 숲에도 연 초록
물감이 풀리고 있다.
이 골 짝 저 골 짝에서 돌 배 나무 꽃이 구름처럼 허옇게 피어오르고 꽃 사과와 산 벚나무 꽃도 볼 만하다.
나무마다 새 잎을 펼쳐 내는 신록의 숲은 그대로가 꽃이요 향기다.
며칠 전 벙어리 뻐꾸기가 첫 소식을 전해 오더니,
오늘 아침에는 찌르레기와 검은 등 뻐꾸기 소리도 들린다.
뻐꾸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산 아래 서는 밀 화 부리와 꾀꼬리의 노래도 들려올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어김없이 순환의 질서를 지킨다.
사람들에게 그토록 허물 리고 더럽히며 상처 받으면서도 계절의 질서를 묵묵히 이행하고 있다.
이런 자연이 그지 없이 고맙고 미덥고 기특하기만 하다.
묵은 밭에 감자를 세 두 렁 심고, 옥수수도 두 두 렁 심었다.
그리고 구덩이를 세 군데 파서 거름을 두둑이 주고 호박도 심었다.
작년에 꽃을 보고 거두어 둔 해바라기 씨도 여기저기 묻어 주었다.
아직도 서리가 내리는 곳이라 채소는 갈지 않고, 고추 모도 구해 오지 않았다.
일 끝에 개울가에 나가 흙 묻은 손을 씻고 흐르는 물을 움켜 마시면 이내 갈증이 가시고 몸에 생기가 돈다.
우리 산천의 이런 물 맛은 이 세상 어디에 가서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해외에 나가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아쉽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이런 물 맛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달 단 이런 물을 어디서 마실 수 있단 말인가.
듣자니 외국산 식수가 그야말로 물 밀 듯 밀려올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쩌다가 먹는 물까지 남의 나라에서 사다가 먹게 되었는가.
집집마다 들어온 수돗물은 이제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도록 그 오염 도가 심각하게 된 모양이다.
이런 현상이 요즘 입만 벌리면 너도나도 외쳐대는 세계화인가.
국정을 맡은 책임자들이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식수 만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 다짐하던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외국산 물은 마음 놓고 마셔도 된단 말인가.
한심한 일이다.
그 누가 마음 놓고 달게 마시던 물을 더럽혀 놓았는가.
무엇이 우리 식수 원을 망쳐 놓았는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서울의 경우만 하더라도 식수 원인 팔 당 수원 둘레에는 수많은 경고 문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는 팔 당 상수 원 보호 구역입니다.
야영이나 취사, 투망, 낚시, 쓰레기 투여 등 수질 오염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경고문만으로 상수원이 제대로 보호될 수 있다고 생각한 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다.
이런 경고문이 게시된 바로 지척에 각종 음식점이 즐비하여 구정물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강물에 내보낸다.
크고 작은 공장에서 끊임없이 폐수가 흘러내리고 소와 돼지의 축사에서 배설물이 흐른다.
이와 같은 수질오염의 근원을 방치해 둔 채 야영이나 낚시 같은 것만을 금지 시킨다고 식수 원이 보호될 수 있겠는가.
이러니 외국산 식수가 들어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균형과 조화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활기요 지혜다.
생태계는 이 균형과 조화로 유지 존속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그저 많은 것을 차지하고 큰 것만을 원하는 우리들의 삶은 날로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균형과 조화로 이루어진 자정능력이 자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끼리 모여 사는 사회에도 자정능력은 있다.
그것은 건전한 가치의식과 도덕성일 것이다.
가치의식과 도덕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건전한 사회는 자체의 모순을 그때 그때 치유하면서 정화한다.
세계화를 외쳐 대고 있는 우리 사회는 과연 이런 자정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경쟁만을 치르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인간의 가치는 비정한 경쟁을 퉁하기 보다도 상호 협력으로 구현될 수 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이류 삼류로도 얼마든지 살아남아 왔다.
수많은 사람들과 나라들이그렇게 살아온 것을 인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허구 적인 말의 수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세계화에 앞서 인간 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직장의 동료끼리 혹은 이웃끼리 같은 국민끼리 서로 믿고 의지해 협력하면서 인간 답게 사는 인간 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터전 위에서세계화는 실속 없는 한낱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재고 따지려는 경향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욕구 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다양한 가치 의식이 있다.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고 심리적인 존재이며 또한 종교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인간의 욕구가 균형 있고 조화롭게 채워지지 않는 한 삶의 질은 이루어질 수 없다.
동방의 지혜인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말한다.
"자연은 만물을 낳아서 기른다. 만물을 낳아 기르면서도 자기 소유로 삼지 않는다.
스스로 일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고, 만물을 길러 주었지만 아무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겸허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산소와 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나무와 풀만이 산소와 물을 맑게 간직한다.
산소와 물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무와 풀에 고마워하자.
<9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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