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qhrwk 2022. 3. 10. 08:45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살아있는 성자 달라이라마께서는 '우리가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인도의 현자 오쇼 라즈니쉬는 '종교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과학이요 예술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잘 살았다한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지 못했다면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삶만이 안락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연출 할 수 있습니다.
경전이나 어록의 한결같은 말씀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하고, 인생대사인 생사를 자재하고 생사를 해탈하려면 견성성불, 자기의 성품을 보아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두에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 집중이 되면 일체의 번뇌나 망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들끓어서 괴롭고 불안하던 온갖 생각들이 사라지면 마음은 아주 고요해 일부러 생각을 

하고 기억을 더듬어도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고요해지면 마음은 맑아집니다. 그러면 몸은 아주 가벼워지고, 때로는 새털처럼 

가벼울 때도 있고,자기 몸뚱이조차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참선 자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화두는 더 성성하고 적적하게 참구해가야 합니다.
화두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잘 되다가 깊은 잡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정도가 되면 

신통한 경계까지 느끼게 됩니다. 
신통이란 보통 사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이 통한다 해서 

통通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창 정진에 열중하고 있는데 무심히 얼굴을 들고 전면을 주시하니 갑자기 벽이 

사라지고 방 밖의 정경이 펼쳐집니다.
놀라서 더 자세히 집중하니 방 밖뿐만 아니라 원근에 관계없이 몇 십리 몇 백리 밖에 까지 

보입니다. 
더 자세히 중시하니 더 환하게 또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소위 천안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신통한 힘이 생기면 정수리로는 기상이 솟구치고, 날아갈듯 합니다. 
평소 다니기를 싫어하는데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칠 줄 모르며, 걸음도 사뿐사뿐하여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지에서 어느 날, '아 생사가 둘이 아닌 것' 을 알게 됩니다.
생生이 곧 사死요, 사가 곧 생이라는 것을 느끼고, 본성은 생하는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화두가 안락을 느끼는 경계가 되고, 신통한 경지를 체험까지 하면, 무슨 일이라도 

자신만만해지며 심지어 하늘의 별이라도 딸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사가 둘이 아니고, 본성은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죽음에 당당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선에서는 이런 정도가 돼야 '웰 다잉' 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생사까지도 

자재하고 해탈해야 진정한 '웰 다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여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