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씀

[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유녀의 아름다운 보시

qhrwk 2024. 7. 18. 07:48

 



[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유녀의 아름다운 보시

“복 짓는 일 어찌 양보하리?” 가진 것 흔쾌히 희사한 유녀 대원각 보시한 김영한 보살

재물에 대한 집착 떨친 사례

부처님이 마가다에 계시다가 베살리로 오셨을 때의 일이다. 

부처님은 베살리 북쪽의 암라나무 동산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름다운 유녀(遊女) 암라팔리는 깃털로 장식된 화려한 수레를 

끌고 부처님을 친견하러 왔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그녀를 보더라도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부처님을 친견한 암라팔리는 훌륭한 가르침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했다. 부처님은 이를 승낙했다.

암라팔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성안의

귀공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부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공양청장(供養請狀)을

올리려고 숲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데 그렇게 바삐 가는가?”
“나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청해놓고 집으로 가는 중이오. 내일 아침 공양을 

올리려면 빨리 가서 준비를 해야 하므로 길이 바쁩니다.”
“그런가? 우리도 부처님을 초청하러 가는 길인데 난처하게 되었구려. 그대에게 

1천 냥을 드릴 테니 내일 우리가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할 수 있도록 양보해 주면 

고맙겠소.” 그러나 암리팔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천냥이 아니라 2천냥 3천냥 5천냥을 준대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이르기를 

‘중생은 재물과 목숨에 대해 기대와 집착을 하지만 내일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목숨이 내일을 보장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복 짓는 일을 양보하겠습니까.”
그들은 암라팔리의 양보를 받지 못하자 부처님을 찾아뵙고 설법만 듣고 돌아갔다. 

한편 암라팔리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음식을 장만했다. 

부처님은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 암라팔리의 집을 방문했다. 

암라팔리는 공양을 올린 뒤 이렇게 사뢰었다.

“이 암라팔리 동산을 부처님과 비구중에게 바쳐 그분들이 여기서 지내도록 하고 

싶습니다. 원컨대 이 동산을 받아 주옵소서.” 

부처님은 암라팔리의 희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칭찬했다.
“그대는 과수원 숲으로 시원한 쉼터를 마련했다.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건너게 했다. 

길가에는 화장실을 지어 사람들의 고달픔을 쉬게 했구나. 남에게 낮이나 밤이나 

안온을 주었다. 그대가 받을 복은 헤아릴 수 없도다.”    

 

 증일아함 제10권 권청품(勸請品) 제11경

요정이란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가무도 즐기는 유흥음식점을 말한다. 

밀실정치가 한창이던 1970년대 서울에는 유명한 요정이 세 군데 있었다. 

삼청각 대원각 청운각이 그곳이다. 

삼청각은 정치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대원각은 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 요정들은 1990년대 강남에 룸살롱들이 성황을 이루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곳은 대원각이다.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절로 바뀌었다. 독실한 불자였던 김영한 여사가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조건 없이 불교계에 희사함으로써 이루어진
‘아름다운 사건’이었다.

1987년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김여사는 평소 존경하던 법정스님이
미국을 방문하자 찾아뵙고 희사의 뜻을 밝혔다. 이를 거절하자 김여사는 10년 뒤
대원각이 소유한 7000여 평에 이르는 땅과 40 동의 건물을 모두 송광사
서울분원 명의로 등기하고 스님에게 관리를 부탁했다.
이렇게 태어난 길상사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마치 암라수원이 부처님 당시 중요한 포교거점이었던 것처럼.  

홍사성 / 불교방송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