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참 나를 찾는 법

qhrwk 2024. 9. 20. 06:23

 

참 나를 찾는 법 / 만공선사(滿空禪師) 

오전이나 오후나 한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나니라.
참선은 모든 업장과 습기를 녹이는 도가니니라.
사람을 대할 때에는 자비심으로 대하여야 하지만, 공부를 위하여 서는 
극악 극독심이 아니면 8만 4천 번뇌마를 쳐부수지 못하나니라.

사형이 집행될 시간 직전에도 오히려 여념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진중에는 털끝만한 어른거림이라도 섞여서는 아니 되나니라.
공부하는 데는 망상보다도 수마가 두려운 것이니,
수마를 먼저 조복시켜야 하나니라.

인신을 얻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니 사람 몸 가졌을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에 힘쓰라. 사람 몸 한 번 놓치게 되면 또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라. 공부에 득력을 못하였을 때 안광낙지하게 되면 인업만 남아
짐승도 미남 미녀로 보여서 그 뱃속에 들기 쉬우니라.

참선하는 사람의 시간은 지극히 귀중한 것이라, 촌음을 허비하지
말아야하느니라. 변소에 앉아 있는 동안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없나니, 그 때만이라도 일념에 든다면 견성할 수 있나니라.

공부가 늦어지는 까닭은 시간 여유가 있거니 하고 항상 미루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자고 나면 오늘은 죽지 않고 살았으니, 
살아 있는 오늘에 공부를 마쳐야 하지 내일을 어찌 믿으랴! 하고 
매일매일 스스로 격려해 가야 하나니라.

밤 자리에 누울 때 하루 동안의 공부를 점검하여 망상과 졸음으로
정진 시간보다 많이 하였거든 다시 큰 용기를 내어 정진하되, 
매일매일 한결같이 할 것이니라.

공부하다가 졸리거나 망상이 나거든 생사 대사에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전정을 다시 살펴 본다면 정신이 저절로 새로와질 것이니라.
사선을 넘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사심의 여유가 있다면 참선하는 기억조차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생사 윤회의 생활을 면하려고 출가한 중이니만큼 
참선법을 여의고 하는 일은 모두가 생사법을 익히는 것이니라.

도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알고 구하는 마음으로 참선한다면 외도에
떨어지게 되나니라. 설사 도인이 온갖 신통. 변화를 부리고,
죽을 때에도 불가사의한 이적을 보일지라도이는 상법이니, 
이런 상법이란 하나도 가히 취할 바는 아니니라.

믿음은 부처를 찾아 오르는 발판이기 때문에 몰아적 믿음의 발판을
딛고 부처를 넘어 각자의 자기 정체를 찾아야 하나니라.
선학자는 선학자의 행위를 엄숙히 가져서 입을 열지 않고서라도 남을 
가르치게 되어야 하나니라.

공부의 과정에는 지무생사. 계무생사. 체무생사. 용무생사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 사무애하게 
되는 대자유인이 되나니라. 공부할 때에 짐짓 알려는 생각을 말고, 
정진력만 얻으면 공부는 저절로 성취되나니라.

공부가 완성되기 전에 미리 알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진을 게을리
하다가는불법인연마저 떨어지기 쉬우니라. 물체에 의존하지 아니하는 
정신은 한 모양도 없는 자리에서 일체 행동으로 능히 현실화할 수
있나니라.

정신은 물질의 창조자이지만, 물질이 아니면 정신의 존재와 효과가
나타나지 못하나니라. 물질은 각자 그 이름에 따르는 한 가지 책임을 
할 뿐인데, 정신은 이름도 형상도 없지만 만유의 근본이라, 
어디서 무슨 일에나 절대 능력자이니, 이 정신은 누구나 다 기지고 있다.

이 정신만 도로 찾으면 만능의 인이 되나니라.
정신이라는 전당 안에는 생사와 선악이라는 두 배우가 순번으로 
삼라 만상이란배경 앞에서 희비극을 무한한 형태로 연출하고 있나니라.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없으면 빈 나라요,
아무리 빈약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비지 않은 나라이니라.

도인은 도인이라는 대명사에 지나지 않는 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명상이 생기기 이전 소식을 증득하여, 도인이라는 우상도 여의고,
계니 수행이니 하는 구속에서 벗어나 완전 독립적 인간이 되어야
육도에 순력하면서 고를 면하게 되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