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생각 없음(無心) 안에 머물러 있어라.

qhrwk 2024. 9. 20. 06:31

 

생각 없음(無心) 안에 머물러 있어라.

태어나지도 않은 자(참나)는 잠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는 나이도 먹지 않는다.그에게는 죽음도 없다.
꿈 속에서 또하나의 꿈이 보여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가 잠을 자고 있었고,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그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잠을 잤다"라는 것은 그가 무지(無知)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나는 육체다,

나는 이러 저러한 한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브라만(空의식) 상태가 무지(無知)에 덮혀 있는 것이고,그 망상 안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망상이 있는데,그것이 이 보여지는 현세 세상이다.

이것이 꿈 속에서 꾸는 또 하나의 꿈인 것이다.세상이라는 환영(幻影)은 실제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전체에 두루 편재해서 존재했었는데,(육체 동일시로 인해서) 아주 왜소하게 축소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이 현세세상을 실재(實在)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꿈 속에서,그는 스승과 제자, 상과 벌, 진실한 것과 진실하지 못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 꿈 속에서 그냥 세월만 흘려보낸다.
이 긴 꿈(한사람 일생)을 꾸는 동안에 진리라는 것과 비진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위대한

운명의 강에서 물 한 모금을 떠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개라 할지라도 죄인의 것은 먹지 않는다"
제물에 대한 포기, 초연함의 느낌과 성인에 대한 공경심은전생의 선업(善業)에 대한 보상이며, 

행운을 받은 것이다. 그(깨달은 제자)는 혼자서 구도수행을 시작했다.꿈 상태 안에서

그런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범한 것이다.
(어느 한때는) 그가 감각이 있는 상태에서 전체가 되는 것을 의식해  보기 위하여 비록 돈으로

악마적인 자존감을 얻어 보려고 한 짓이긴 하지만,한 박스의 브랜디를 다 마시고 나서 술취한

상태에서도 자기 감각은 아직 그대로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오히려) 그에겐 좋은 행운이었다.
그는 꿈과 함께 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결한 지성에 의해서,그는 스승을 찾아가게 되었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를

분별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은)그는 "나는 브라만이다(절대진리)"를 알았으며,그 외의 모든 것은 전부 거짓이라는 

체험을 얻었다.이것은 그가 하나의 꿈으로 부터 깨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꿈 속에 있을 때에, "나는 브라만이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거짓이며,이 세상과 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허황되다는 사실을좀 더 명확하게 결론이 얻어 질 때까지 거듭해서 심사속고하고
명상을 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지금) 그는 자신의 지복상태 속에서 고요하게 머무르게 되었다.
진리가 환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는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이러한 상황은 "나는 전체적으로 깨어났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환상에 대한 착각 뿐만 아니라, "나는 (브라만을) 체험했다"라는 경험조차전부 사라져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만일 그가 진아를 체험했다고 말을 한다면,그는 진아와는 다른 어떤 것을 가지자신으로 착각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증거는 자아가 "나"라는 자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인 것이다.

망고가, "나는 나 자신이 향기롭다것을 알아차렸다"고 말한다면,그러면 그것은 망고일 수가 없다.

만일 그대가 "나는 (깨달음의 ) 체험을 얻었다"고 말한다면,그대의 "나"라는 에고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라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나" 안의 "나"가 모든 것을 다 안다, 라든가 "나는 브라만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은"에고"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있던 "나"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간에 본래부터 있는 브라만이다.
"나"라는 가시는 뽑아 버려야만 한다.그러면 그대는 해탈하게 된다.

그대가 전체 모든 곳에 두루 편재될 때에,그대가 브라만이 된 것이다.
"내가 브라만이다"이것은 에고가 온 것이지만,그것 또한 나중에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오직 "하나"이며, 그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초월해 가기 위해서는 실재(實在)인 절대진아,즉 생각없음(無心)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유일한 스승인스리 시다라메쉬와르 마하라지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