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수행이 잘 안될 때는

qhrwk 2024. 9. 21. 08:37

 


♣수행이 잘 안될 때는 ♣


아마도 지금쯤이 되면 대부분의 법우님들이 수행이 잘 되고 있거나, 수행이 잘 안되고 있거나 

하는 분별을 하면서 잘 될 때 기뻐하고, 잘 안 될 때 짜증도 내고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이유는 수행을 잘 하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수행은 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하려는 마음으로, 수행 잘 하고 싶은 바램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즉, 수행 잘 되는 때와 수행이 잘 안 되는 때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나누게 되면 수행 잘 될 때는 기쁨에 겨울 것이지만, 수행이 안 될 때는 슬픔에 잠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 우리는 '수행'이라는 것에 휘둘리게 됩니다. 

수행이 잘 되고 안 되는데 따라 울고 웃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 잘 된다고 생각할 때 정말 우리는 수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참 수행 잘 된다'고 했다면 그 사람의 수행은 아직 많이 덜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수행 잘 안 된다'고 하는 것 또한 아직 덜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저 또한 이렇게 수행 덜 되었다는 표현을 쓰게 되어서 유감이지만요... 

다만 매 순간 순간 지켜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 '잘 되는 때', '안 되는 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면 됩니다.
대비주를 외면서도 집중이 안 되고 하기 싫은 마음도 자꾸만 생기고 진도도 안 나가고 

명확하게 또박또박 독송되지도 않고 그런 상황이라면 아주 중요한 수행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고, 아주 중요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잘 안 된다'고 느끼는 그 생각, 그 분별을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잘 안 된다'는 생각이 일어났다는 것은 '수행 잘 안 되는 바로 이 상황'에 화를 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잘 안 된다'는 생각을 잘 관찰하면 그 안에 있는 '화'를 깨닫게 됩니다. 

또 더 나아가 그 화, 분노까지도 잘 관찰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가 그 이유인 

것까지 알게 됩니다.

'나'라는 것을 내세우기 때문에, 즉 아상이 있기 때문에 '내가 수행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마음대로 잘 안 되기 때문에 '화', '분노'가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관찰하면서 스스로 '분노'를 찾으려 하거나, '나'라는 아상을 찾으려고 

애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미세한 생각, 마음, 느낌, 변화 등 내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체 모든 것을 마치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비추듯이 그저 그렇게 비추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비추어 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수행 잘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수행 잘 하는 때와 수행 잘 못 하는 때를 나누지 말고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다만

 '수행이 잘 안됨' 하고 느끼는 그 느낌과 생각을 판단하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 잘 될 때는 잘 된다고 비추어 보면서 가면 되고,잘 안 될 때는 잘 안 

된다고 비추어 보면서 가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수행 잘 되니 좋다'거나, '수행 안 되니

 나쁘다'거나 하는 분별과 판단을 붙이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대비주 독송을 하는 이유도 대비주 독송을 하는 그 순간에 아무런 판단과 분별을 하지 말고 

다만 묵묵히 고요히 비추어 보라는 의미인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독송 잘 안 될 때'도 잘 될 때 처럼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비추면서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잘 안 되니까 하기 싫은 바로 그 마음을 비추어 보는 

것이야말로 대비주 독송의 공덕이 참 빛을 보는 때인 것입니다.

수행력이 증장하는 때이고 대비주 수행이 잘 되고 있는 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분별하지 말고... 또 하나, 주의할 점이 수행은 차별심을 

놓아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나아가셔야 하겠습니다. 

남보다 내가 좀 뒤져가고 있다고 차별하고 분별하여 남보다 잘 가고 있을 때는 기뻐하고, 남보다 

못 하고 있을 때는 슬퍼하며 좌절하는 그런 양 극단의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도의 수행이지요. 다른 법우님들은 벌써 2000독 하고, 3000독 했는데 나는 뭣 하고 

있는가 하고 나누면서 비교 우위와 열등에 울고 웃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동반자고 도반이며 길벗으로 아직 100독도 못 하신 분들이나, 벌써 3000독도 넘게 

하신 분들이나, 모두가 제 몫으로써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근기만큼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빨리 한다고 더 좋은 것이 아니고, 늦게 한다고 더 나쁜 것이 아닙니다.

 1만독 대비주 수행은 서로 경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직 '지금 이 순간' 보다 깨어있는 정신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했나 하는 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깨어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많이 했다거나, 적게 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과거에 내가 너무 못했다는 생각, 혹은 미래에 

언제까지 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혹은 과거와 미래를 견주어 또 나와 상대를 견주어 

차별하는 것 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수행일기를 쓰면서도 아직 200독도 못하였다고 쓰기를 망설이거나, 남부끄러워할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3000독을 하였더라도 혹은 100독 밖에 못 하였더라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대비주 독송이라는 방편 수행 안에서 내가 깨어있는가 하는 점이라는 것을
 보다 깊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법우님들의 대비주 수행에 법계의 큰 빛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광명 안에서 빛으로 하나가 되도록 합시다.
 
[자료출처 : 목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