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

qhrwk 2024. 9. 24. 16:41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초발심자경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마음 닦는 종교’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짓는 것에서 한 발을 나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깨달음의 종교라면 무엇을 어떻게 깨닫는다는 것인지 한 참 더 파고들어야 한다.
마음 닦는 종교라는 정의를 이해하자면, 마음에 대한
실체적 이해를 먼저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쉬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불교는 어려운 종교’라고 말해 버린다.
그렇게 말하는 이상 불교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종교다.
나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말보다는 실천하는 종교, 마음 닦는 종교라는 정의보다는 마음 편하게

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불교적’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이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명쾌한 길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불교적 깨달음의 근본줄기는 이미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 파악하셨고 45년이나 쉬지 않고 설명해 주셨다.

아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 병 그 결정적인 병을 극복하지 못해 이 세상은 어제 이상으로 어지러워

‘초발심자경문’만 제대로 알아도 수 천 명의 부처가 탄생할 것……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새벽별을 바라보며 깨달으신 그 것! 그 이상을 깨닫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사상누각을 짓는 꼴이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은 이미 팔만대장경에 아주 모범적으로 정리 되어 있다.

산더미처럼 전하는 논서와 역대 조사들의 어록은 그 참고서 내지는 실전보고서들이다.
이를테면, 우주의 모든 것이 연기적 관계 속에서 생멸한다는 것
(아함부), 일체는 공(空)하다는 것(반야부), 실상이 곧 불성 그 자체라는 것(법화경),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열반경), 내 안의 불성을 일깨워 내가 부처로 당당하게 일어서자는 것
(선종의 모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것

(조사들의 외침) 등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깨달음이 모자라서 실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지간한 불자라면 4성제 8정도는 알고, 연기법괴 윤회의 도리를 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알고 <금강경> 사구게들도 줄줄 외고 다닌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고갱이들을 머리속에 정확하게 카피해 두고 있는 것이다.

아는대로 실천하지 않는 병, 그 결정적인 병을 극복하지 못해 이 세상은 오늘도

어제 이상으로 어지럽다.

아는 만큼 실천만 한다면 <초발심자경문> 한 권이면 수 천 명의 부처가 탄생할 것이다.

사흘 동안 닦는 마음이 천년을 두고 보배가 되는 이치,
백년을 탐한 물건이 하루아침 이슬보다 못하다는 이치,
이 조차도 머리로만 알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한다.

매순간 깨어 있어서 매순간 마음 편하고자 한다면 아는대로 실천하는 삶이어야 한다.
불교는 행하는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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