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내가 부처가 된 때 3.

qhrwk 2024. 10. 18. 07:31

 

♣내가 부처가 된 때3♣

근래에 와서 순치황제(順治皇帝)같은 분은 만주에 나와서 1년 동안 전쟁을 하여 대청제국

(大淸帝國)을 건설한 분입니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나라입니다. 

중국 본토 이외에도 남북만주, 내외몽고, 티벳, 인도지나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래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눈을 떠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해탈도를 성취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10원짜리 가치도 안되는 것임을 알고 대청제국을 

헌신짝처럼 팽개쳐버리고 그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금산사(金山寺)라는 절에 가서 다른 것도 아니고 나무하고 아궁이에 불이나 때는부목(負木)이 

되었습니다. 대청제국을 건설한 만고의 대영웅 순치황제같은 사람이 절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나무해 주고 스님네 방에 불이나 때주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공부를 성취 안할래야 안할 수 

없습니다. 순치황제가 출가할 때, '나는 본시 서방의 걸식하며 수도하는 수도승이었는데, 

어찌하여 만승천자로 타락하였는고? 

(我本西方一衲子緣何流落帝王家)'하고 탄식하였습니다. 

 

만승천자의 부귀영화를 가장 큰 타락으로 보고 만승천자의 보위(寶位)를 헌신짝같이 차버린 

것입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욕심이 커서 그렇습니다. 대청제국이란 그것은 10원짜리도 못되고, 

참으로 눈을 바로 뜨고 보면 시방법계에서 자유자재하게 생활할터인데 이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6·25사변 때 서울대학에서 교수하던 문박사라고 하는 이가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

스님네는 어째서 개인주의만 합니까?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사회와 국가도 다 버리고 산중에서 

참선한다고 가만이 앉아 있으니 혼자만 좋으려고 하는 그것이 개인주의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스님네가 개인주의 아니고 당신이 바로 개인주의야!''어째서 그렇습니까? 

저는 사회에 살면서 부모 형제 돌보고 있는데, 어째서 제가 개인주의자입니까?'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당신 여태 50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부모 내 처자 이외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는지 양심대로 말해 보시오.

''참으로 순수하게 남을 위해 일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네가 부모, 형제 버리고 떠난 것은 작은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한 것이야. 

내 부보 내 형제 이것은 작은 가족이야.이것을 버리고 떠나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 손발을 묶는, 처자권속이라고 하는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오직 큰 가족인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사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야! 내 부모 내 처자 

이외에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당신이야말로 철두철미한 개인주의자 아니가?'

'스님 해석이 퍽 보편적이십니다.

''아니야, 이것은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에 모두 그렇게 씌어 있어.

 '남을 위해서 살아라'하고. 보살의 육도만행(六度萬行) 6바라밀의 처음이 무엇인고 하니 베푸는 

것이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을 도우는 것,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야! 팔만대장경 

전체가 남을 위해서 살아라 하는 것이야.'
'...'

그러니 승려가 출가하는 것은 나 혼자 편안하게 좋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더 크고 귀중한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릴 뿐이야. 그래서 결국에는 무소유(無所有)가 되어 마음의 눈을 뜨고 

일체 중생을 품안에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려면 반드시 탐내는 마음 

이것을 버려야 하는데, 탐욕을 버리려면 '나만을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하는 이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불공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앞에 갖다 놓고 절하고 복비는 것이 불공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도우는 것이 불공이라고.부처님께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아주 간곡하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신 앞에 갖다 놓는 것보다도 중생을 잠깐동안이라도 도와줄 것 같으면 그것이 

자기 앞에 갖다 놓는 것보다도 여러 억천만배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이라고.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국 마음의 눈을 떠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영원한 큰 살림살이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도와주는 것이 부처님에게 갖다 놓은 것보다 비유할 수 없을 만큼 큰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일본 천리교(天理敎)의 교주되는 사람이 '나카야마 미키'라는 여자분입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도 굉장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공부를 해서 자기 딴에는 

마음의 눈을 떠버렸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자기 살람살이는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큰 살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당신 마누라였는데 오늘부터는 내가 당신 스승이야! 내가 깨쳤어! 내가 

하나님이니까 내 말을 들으시오.''미쳤나? 왜 이러지?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요?''

우리 살림살이를 전부 다 팝시다. 이것 다 해봐야 얼마나 되나요. 모두 다 남에게

나누어 줍시다.

그러면 결국에는 참으로 큰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돈벌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다 팔아서 모두 남에게 줘버렸습니다. 이제 내외는 빈손이 되었습니다. 

밥은 얻어 먹으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이익이 되는 것, 남에게 좋은 것, 남 도우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몸으로 일본 역사상 유명한 큰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돈벌이는 크게 한 것입니다. 우선의 조그만 살림살이를 나눠 주고서는.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도 큰 살림살이를 한 번 해 봐야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집도 팔고 밭도 

팔고 다 팔 사람 있습니까?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 재산 온통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나누어 준다면! 그렇게만 되면 내가 목탁 가지고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예불하며 모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설사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생활방침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남을 위하는 이것이 참으로 나를 위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참으로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해 욕심부리는 것은 결국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꾸 노력하면, 참으로 남을 돕는 생활을 할 것 같으면 결국에는 마음의

눈을 떠서 청천백일 (靑天白日)을 환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을 많이 할 것 없이 한 가지라도 남을 도우는 생활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가 앞으로 바른 길로 서려면 승려도 신도도 모두 생활방향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느냐

하면 남을 돕는 데로 완전히 돌려져야 합니다.

승려가 예전같이 산중에 앉아서 됫쌀이나, 돈푼이나 가지고 와서 불공해 달라고 하면 그걸 놓고

똑딱거리면서 복 주라고 빌고 하는 그런 생활을 그대로 계속하다가는 불교는 앞으로 영원히

없어지고 맙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도 또한 그렇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 자식이 머리만 아파도 쌀되나 가지고 절에 가서 '아이고, 부처님, 우리 자식

얼른 낫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참된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승려도,

신도도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 발전이 없습니다.

산중에 갇혀서 결국에는 아주 망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불교 승단에는 승려

전문대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을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을 사람들도 논을 팔아서라도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합니다.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승려를 자꾸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데 어떻게 포교하며 또 어떻게 남을 지도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나중에는 법당의 기왓장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들을 교육시키자' 하는

것이 내 근본생각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종단적인 차원에서 꼭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억천만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고 있는데 왜 지금은 캄캄밤중에서 

갈팡질팡하는가?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을 뜨는 방법은?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해서 깨치든지 아니면 남을 돕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떡장사를 하든, 술장사를 하든, 고기장사를 하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화두를 배워서 

마음속으로 화두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화두를 하고, 행동은 남을 도우는 일을 꾸준히 할 것 같으면 어느 날엔가는 

마음 눈이 번갯불같이 번쩍 뜨여서 그때에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에 살고 있다는 그 말씀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부터는 참으로 인간 세상과 천상의 스승이 되어서 무량대불사(無量大佛事)를 미래겁이

다하도록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춤뿐이겠습니까? 큰 잔치가 벌어질텐데 그렇게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方丈 大衆法語 1981년 음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