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참선하는 법 (2)

qhrwk 2024. 10. 18. 07:46

 

참선하는 법 (2)


반역종(反逆宗)이라고.일본에 이런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일본 불교학자로 세계적 권위자인 중촌원(中村元)이라는 학자가 있는데, 언젠가 해인사에도

왔더라고 전해만 들었습니다.

그의 저서로『동양인(東洋人)의 사유방법(思惟方法)』이라는 책이 있는데 유명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습니다. 그 책 속에 보면 선종의 화두인  '삼서근(麻三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부처님이냐고 물었는데  어째서 '삼서근(麻三斤)'이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자연현상은 

모든 것이 절대이어서 부처님도 절대이고, 삼서근도 절대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물었는데 대해 삼서근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딱 잘라서 단안을 

해버렸습니다.

큰일 아닙니까. 혼자만 망하든지 말든지 하지 온 불교를 망치려고 하니.그러나 그의 스승인

우정백수(宇井伯壽)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선(禪)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다' 이렇게

아주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학자적인 양심입니다. 자기는 안 깨쳤으니까, 자기는 문자승

(文字僧)이니까 선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만 기록했지 선 법문, 선리(禪理)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도 하지 않고 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학자의 참 양심입니다.
그런데 중촌원(中村元)은 화두에 대해 딱 단안을 내리고 있으니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화두를 설명하려고 하면 불교는 영원히 망해버리고 맙니다.여기서 덧붙여서 화두의

하나인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에 대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선종에서 유명한 책인 벽암록(碧巖錄)에 송(頌)을 붙인 운문종의 설두스님이 공부하러 다닐 때

어느 절에서 한 도반(道伴)과 정전백수자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이야기 하다가 문득 보니 심부름하는 행자(行者)가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간 후에 불렀습니다.
'이놈아, 스님네들 법담하는데 왜 웃어?'
'허허, 눈 멀었습니다. 정전백수자는 그런 것이 아니니,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흰 토끼가 몸을 비켜 옛 길을 가니 (白 橫身當古路)
눈 푸른 매가 언뜻 보고 토끼를 낚아가네 (蒼鷹一見便生擒)
뒤쫓아온 사냥개는 이것을 모르고 (後來獵犬無靈性)
공연히 나무만 안고 빙빙 도는도다. (空向古椿下處尋)

'뜰앞의 잣나무'라 할 때 그 뜻은 비유하자면 '토끼'에 있지 잣나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 눈 뜬 매는 토끼를 잡아가 버리고 멍텅구리 개는  '잣나무'라고 하니 나무만 안고 빙빙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전백수자라 할 때 그 뜻은 비유하자면 토끼에 있는 것이니 나무 밑에 가서  천 년, 만 년 돌아봐야

그 뜻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금 전에 말했듯이 '화두는 암호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생각나는 대로 이리저리 해석할 수 없는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두에 대해 또 좋은 법문이 있습니다. 불감 근(佛鑑懃)선사라는 스님의 법문입니다.
오색비단 구름 위에 신선이 나타나서 (彩雲影裏神仙現)
손에 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 (手把紅羅扇遮面)
누구나 빨리 신선의 얼굴을 볼 것이요 (急須著眼着仙人)
신선의 손에 든 부채는 보지 말아라. (莫看仙人手中扇)

생각해 보십시오.
신선이 나타나기는 나타났는데 빨간 부채로 낯을 가리었습니다.

신선을 보기는 봐야겠는데, 낯가리는 부채를 봤다고 신선 보고서 말할 수 있습니까.

화두에 있어서는모든 법문이 다 이렇습니다. '정전백수자'니 '삼서근'이니 '조주무자(趙州無字)'니

하는 것은 다 손에 든 부채입니다. 부채! 눈에 드러난 것은 부채일 뿐입니다.

부채 본 사람은 신선 본 사람이 아닙니다. 빨간 부채를 보고서 신선보았다고 하면 그 말

믿어서 되겠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화두는 암호인데 이 암호 내용은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느냐 하면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데에서 깨쳐야만 풀 수 있는 것이지 그 전에는 못푼다는 것, 이 근본자세가 딱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눈을 확실히 뜨면 이것이 견성인 것입니다.

동시에 '뜰앞의 잣나무'라는 뜻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스님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가?

 

 

대혜 종고선사(大慧宗 禪師), 이렇게 세 분이 삼대에서 임제종을 크게 진흥시켜 임제종을 천하에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대혜스님이 공부한 것은 좋은 참고가 됩니다.

대혜스님이 공부하다가 스무 살 남짓 됐을 때 깨쳤습니다. '한소식'해 놓고 보니 석가보다 낫고,

달마보다도 나아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습니다.

'어디 한 번 나서 보자, 어디 누가 있는가'하고 큰스님들을 찾아가 보니 모두별 것 아닙니다. 

자기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가 제일이라고 쫓아다니는 판입니다. 당시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에 

담당 문준 (湛堂文準)선사가 계셨습니다.

 

대혜스님이 그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 하는 말을 막 쏟아부었습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하고 물어왔습니다. 

자신만만하여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