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류의 평화는 자신을 찾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자신이 만든다는 것 몰라요- . 세간과 청산 어느 것이 옳으냐,
봄빛 이르는 곳마다 꽃이 피더라. 산하대지가 나의 집이거늘, 다시 어디서 고향을 찾는가.
덕숭산 아래 한 길에 비추는 봄 광명에 또 다시 온갖 꽃이 만발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의 이치입니다.
봄볕은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차별이 없이 비춥니다.
들판의 꽃가지도 긴 것이나 짧은 것 할 것 없이 평등하게 물이 오르지요.
그러면 꽃가지는 크건 작건 제 나름의 꽃을 피워냅니다.
일체가 평안한 도리를 알려면 길고 짧은 것에 끄달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 옷은 짧지도 길지도, 작지도 크지도 않고 아무나 입을 수 있습니다.
법의는 마음만 내면 누구나 입을 수 있습니다.
중생과 수행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생과 부처도 평등한 도리가 분명 있습니다.
하루빨리 깨달음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요즘 세계를 둘러보면 어디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공포심 분노심 불평등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히 혼돈의 세상이라 할 수 있지요.
환경오염으로 인해 하늘과 땅, 바다에 사는 동식물까지 저마다 ‘평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북한산 천성산 금정산이 개발로 인해 환경이 파괴될 위기에 있습니다.
많은 스님네들이 전쟁을 막고, 환경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미국인과 이라크인’등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힘과 편의만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자연도 파헤치려 하지만
그것은 종국엔 자신을 헤치는 것이고, 모두가 살 수 없는 길입니다.
서로 위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래야 다 잘 살 수 있습니다.
우주만유 유정물 무정물이 모두 한 뿌리라는 것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조국이 광복을 맞자 만공스님께서는 온 인류(人類)가 함께 실천해야 할 정신으로
‘世界一花(세계일화)’를 일러주셨습니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해와 달, 공기와 물,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고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나라가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세계인의 마음을 정신적으로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자기 마음을 올곧게 지키고 있으면 이 세상에 평화의 꽃을 피우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다. 어떤이가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섰지요.
많은 세월 행복을 찾아 세상을 헤매었지요. 행복을 찾지 못한 나그네는 지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담 넘어 매화가지에서 꽃망울 터진 것을 보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 나그네처럼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또 다른 곳에서
공기를 찾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 진리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만인이 귀착해야 할 깨달음은 멀리서 다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서 나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간혹 불자 중에는 불교를 '부처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를 찾을 생각보다는 밖에서 무엇을 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자신의 깨끗한 본래성품이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으세요.
불교의 가르침은 스스로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기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만이 평화를 찾는 길이요, 고향을 찾는 길이요, 정법을 찾는 길입니다.
자기를 찾는 것이 곧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각자 마음속에 지닌 부처 뿌리를 발견하고자
정진을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그 문자에서 가르치는 마음의 진리만을 전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육신이 곧 ‘선방’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을 찾는 데는 별도의 장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있는 곳이 어디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정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이 영원할 것처럼 세속의 일, 물질위주의 삶에 너무 집착해 있습니다.
탐 진 치 삼독에 물들어 살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모릅니다.
불나비가 저 죽을 줄 모르고 불속에 뛰어 드는 것과 같고, 예리한 칼끝에 묻혀져 있는 꿀을
빨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집착하기 때문에 끝없는 방황과 착각과 고통에서 허덕입니다.
진실로 삶의 참된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놓으세요. 움켜쥐었던 손을 활짝 펴세요.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사바세계에 나
타나신 것도 바로 인간 그대로가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그 이치를 가르쳐주기 위해
나투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것도 인간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당신께서 몸소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 이치를 이해하려 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밥솥 안에 있으면서 밥을 찾지 못해 굶어죽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 안에서 부처를 찾다 죽는 이는 그나마 다행이고, 물질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마치는 이들이 대다수 입니다. 내 마음, 내 부처, 내 본래면목을 찾으십시요.
그것만 찾으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중생심은 저 멀리 사라지고 항상 안락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바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처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참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수행법 중에서 자신을 찾는 가장 편하고
빠른 지름길이지요. 참선법은 연구나 공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선정진은 일체 생각을 쉬고 일념에 들되, 일념이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무념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사를 걸고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오늘은 비록 보존하나 내일은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금도 방일함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과 경계가 서로 부딪쳐서 섭나무에 불이 타는 것 같이 번잡스럽게 세월을 보내 버리면,
화두 드는 공부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업보만 더할 뿐입니다.
수행할 때는 나를 잊어버리세요. 잊어버렸다는 생각조차 버리세요.
상을 세워서도 안됩니다. 부처가 되어 나를 완성하면자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참선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살릴 수 있습니다. 나를 찾으면 모든
불행과 번뇌 불화는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안심(安心)의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어떤 일을 하다가도 난관에 도달하면 잠깐 시간을
내어 일념으로 참선에 들어 보세요. 참선하면 지혜가 나오고, 무슨일이든 해결되는
힘이 나옵니다. 요즘 세계가 뒤숭숭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불안과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세계 인류의 평화는 나를 찾는데서 시작하여 자신을 찾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늘 자신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돌아보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개인이나 사회나 나아가 이 세상이 평화롭게 될 것입니다. 한 조각 비고 밝은 것 본래 둥글고
묘해 유심 무심으로는 능히 알 수 없네. 거울 가운데 형상 없는 이 마음은 곧 확연한
허공 같아 털끝만치도 걸리지 않네.
출처 :매사와법진 원문보기▶ 글쓴이 : 法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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