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성철스님-구도자의 질문

qhrwk 2024. 12. 16. 08:09

 


성철스님-구도자의 질문

5. 불확실성의 이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방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될 것입니까?
광명(光明)이 적조(寂照)하여 하사세계(河沙世界)에 편만(遍滿)하니 일체가 각각 자기 

위치에서 태평(太平)을 구가하거늘, 무엇이 '불확실'하며 어떻게 '방황'하는지 '불확실',

 '방황' 등의 언구(言句)는 진정한 불교사전에는 없습니다.

다만 눈을 바로 뜨고 좌우를 두루 보십시오.광활한 대로(大路)는 우주보다 더 넓고, 

혁혁한 광명은 수천 개 태양이 병조( 照)하는 것과 같아서 설사 천지가 붕괴하더라도 

당황할 게 없습니다. 

생사(生死)다 해탈이다 함은 백일하(白日下)의 잠꼬대요, 불타니 보살이니 부름은 

명경상의 먼지이니, 우리는 본래의 광명(光明)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수양버들은 실 끝마다 

푸르고 (楊柳系系綠)복숭아꽃은 조각조각 붉도다. (桃花片片

 6. 욕망과 물질은 인간에게 있어 무엇입니까?지공무사(至公無私)한 욕망과 물질은 

무가(無價)의 진보(珍寶)입니다. 자기 개인의 사리사욕을 떠나 국가 민족만을 위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인류라는 협소한 한계를 넘어서서 일체 생명을 위한 욕망과 

물질이야말로 참다운 진보(珍寶)입니다.
자기 개인을 위한 사리사욕은 물론 해독(害毒)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일체를 위해서만 사는 삶은 제불(諸佛)의 본원(本願)이며 보살의 대도

(大道)입니다.만 섬 쌀을 배에 가득 싣고 마음대로 쏟으니 (萬斛盈舟信手拏)도리어 

쌀 한 톨로 인하여 독이 뱀을 삼켰도다. (劫因一粒甕呑蛇)

7. 불교의 사회구제는 가능합니까?
'구제'라는 어구는 불교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이 절대적 존재로서 일체의 생명이 불타 아님이 없으므로, 불교에 입문(入門)하는 

첫 조건이 일체 중생을 부모와 같이 존경하고 사장(師長)과 같이 섬기며 부처님과 같이 

시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奉仕)'가 있을 뿐 구제와 구원은 없습니다.
남을 돕는 것이 불공(佛供)임을 항상 역설하지만, 이 '남'이라 하는 것은 절대자를 지칭함이며 

절대자는 불(佛)이므로, 남을 돕는 것이 즉 불공입니다. 

보통 남을 돕는다면 부자가 가난한 이를 돕는 태도인데, 이것은 참으로 남을 도울 줄을 

모릅니다. 참다운 도움은 병든 부모를 자식이 모시듯, 배고픈 스승께 음식을 드리듯, 

떨어진 옷을 입으신 부처님께 옷을 올리듯 하여 모든 '남'을 항상 받들어 모시는 태도만이 

진정한 남을 돕는 것입니다.
구제라 함은 이와 반대로 약하고 가난한 상대를 불쌍한 생각으로 돕게 되는 바, 이는 상대의 

인격에 대한 큰 모욕이니 불교에서는 구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배고픈 부처님, 옷 없는 부처님, 병든 부처님 등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무수한 부처님들을 효자가 부모 모시듯이, 신도가 부처님 받드는 성심으로 섬기며 

돕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니 '봉사'가 있을 뿐 구제는 없습니다.

사자는 여우소리를 내지 않도다. (獅子不作野干鳴)

8. 한국 불교는 1980년대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불교에는 만고에 일관된 진리가 있을 뿐, 시대적이거나 지역적인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시하처(何時何處)를 막론하고 불교의 근본정신에 입각하여 만사를 행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일체 생명 즉 중생이 '본래시불(本來是佛)'의 기치를 높이 

들고 생명의 절대를 널리 전하며, 모든 사심을 떠나 아무것도 구함이 일체 중생불에서 

신명을 다해 봉사하는 것뿐입니다.천겁을 지나도 과거 아니요 (歷千劫而不古)만세에 걸쳐 

항상 지금이로다. (萬世而長今)

9. 수행하는 승려들에게 주고 싶은 스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지구가 광대하지만 무변한 허공의 먼 곳에서 바라보면 찾아볼 수도 없는 미소한 

물체입니다.
허공이 그렇게도 광활하지만 진여법계에 비하면 대해(大海)의 일적(一滴)에 불과하므로 

공생대각중(空生大覺中)은 여해일구발(如海一 發)이라, 즉 허공이 대각(大覺) 속에서 생기

(生起)함은 대해(大海)의 물거품이 하나 일어남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이렇게 일체 생명의 

본체인 진여법성(眞如法性)의 공용(功用)은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이어서 미진제불이 

일시에 출현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언설하여도 법성공용(法性功用)의 일호(一毫)도 설(說)

하지 못합니다.이렇게 불가사의한 무가진보(無價珍寶)를 일체 생명이 구유(具有)하고 있으니, 

허망한 몽환 속의 구구한 명예와 이양(利養)은 일체 버리고 이 무진장의 보고(寶庫)를 활짝 

열어서 일체를 이익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탐타일립미(貪他一粒米)하여 실각만겁량(失却萬劫糧)이라, 즉 한 톨의 쌀알을 

탐하여 만겁의 양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순치(順治)황제는 중국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창건한 영웅입니다마는 발심출가(發心出家)할 

때에, 자기는 본시 서방의 걸식하며 수도하는 일개 납자(衲子)였는데 어찌하여 만승천자

(萬乘天子)로 타락하였는고[我本西方一衲子 緣何流落帝王家], 탄식하였습니다.
만승천자의 부귀영화를 가장 큰 타락으로 보고 보위(寶位)를 헌신짝같이 차버리는 

용단이야말로 수도인(修道人)의 참다운 심정(心情)입니다. 

그러하니 우리 수행자들은 오직 대각(大覺)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체를 희생합시다.
달밝은 깊은 산에 소쩍새 울음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