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우리는 무죄체 <無罪體>

qhrwk 2024. 12. 20. 18:40



♣우리는 무죄체 <無罪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백겁동안 쌓아 올린 많고 많은 죄, 한 생각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서, 전부가 다 사라지게
해주십시요. 흡사 불씨 하나가 마른풀을 다 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남김없이 태워지이다' 하는 

우리의 발원입니다.
저 먼 과거로부터 백겁 동안 쌓아 온 죄업을 한 생각을 바로 하고 갈무리함으로써 언젠가는 

다 사라지게 됩니다.전생에 지은 업 같은 것도 이렇게 다 녹여 달라고 지성 드려 기도하는데, 

또 다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업을 짓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죄라는 것은 원래 실다움이 없습니다. 죄는 좋다, 나쁘다하는 분별망상심 따라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 분별망상심을 자꾸만 소멸시켜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을 때도 빈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자기의 선입견을 바탕으로 착색을 해서 

들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분별망상심이 사라지게 되면 죄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가 다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상태를 진정한 참회라 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모두 견해가 다릅니다. 180도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불교가
바라보는 관점과, 다른 종교가 바라보는 관점에도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완전히 무죄체(無罪體)로 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을 부처님의 분신(分身)이라고 합니다.

갈고 닦음에 따라서 누구나 부처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을 모두 죄를 진, 원죄를 짊어진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부터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불교는 만 중생이 모두 다 부처님의 분신이라 이야기

하고 부처님과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라고 하는데, 다른

종교에서는 우리가 아담과 이브의 죄를 뒤집어 쓴 원죄체(原罪體)라고 합니다.쓰레기는

실체가 없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忘)죄망심멸양구공

(罪忘心滅양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죄무자성종심기'란 죄라는 것은 원래 

실체가 없이 마음따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심약멸시죄역망'이란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져서 `죄망심멸양구공', 죄도 죄짓는 

마음도 `시즉명위진참회', 그런 상태를 이름하여 진참회라부른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은 죄도 따지고 보면 별다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죄라는 것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다 타버리면 없어져 버리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숯불 위에 쓰레기가 많이 덮여 있으면 그 불은 꺼지게 마련입니다.

다시 불을 붙이려면 여기에 바람을 불어넣어야 되는데 그 바람이 바로 부처님의
바람이며 진리의 바람입니다. 바람을 불어넣으면 그 쓰레기는 저절로 다 타버리고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쓰레기는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무자성(罪無自性)'입니다. 

`죄무자성'이라는말은 실다움이 없고 죄라고 주장할 본질적인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 생각 잘못했을 때 바로 거기에 죄가 오는 것입니다.


죄는 분별망상심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분별망상심이 없어지면
이것이 좋고 저것은 나쁘다, 이것은 맛있고 저것은 맛없다, 이것은 사랑스럽고
저것은 사랑스럽지 않다 하는 호오지심(好惡之心), 즉 이런 분별 간택하는
마음이 사라지게됩니다. 그러면 죄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분별망상심을 잠재우고 한 생각을 잘 가다듬기 위해 기도도 하고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부처님 법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화두를 챙기면서 `이뭣고'하다 

보면 나쁜 생각이 들어오다가도 튕겨져 나갑니다.

그렇게 계속 밀고 나가면 분별망상심이 끝간데가 있습니다. 일념이 끝간 자리에서 

구경열반을 증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생각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듭니다. 

가다가 자꾸 주저앉게 됩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선할 때 화두를 챙기는 것과 관세음보살 

할 때 일념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참선할 때 일념으로 화두를 챙기면, 화두는 

무자비한 칼날같이 마구 휘몰아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 할 때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호지묘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노라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액난, 괴로움, 쓰라린 일들이 닥쳐옵니다.

이럴 때, 화두를 챙기고 끊임없이 일념을 다독여 가면서 `이뭣고'를 하면 기도의 경우와는 

궤도를달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뭣고'를 자꾸만 계속하면 마음이 정제되고 그런 가운데 불보살과 화엄신장이
임하는 그런 측면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근본적으로 삶을 살아가려면 현실

사회는 넘어야 할 능선도 많고 괴로움도 많기 때문에 관세음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뭣고'만 하다보면 근기가 약한 경우, 파고드는 마장을 견뎌 내기가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대부분의 불자들은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가정생활도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관음정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의 가호지묘력으로 어려운 

액난도 소멸시키면서 수행정진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머리 깎고 산 중에 깊숙하게 살면서 수행정진하게 되면 `이뭣고'만 해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세속의 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구고구난(救苦救難) 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을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겐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이 슬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관세음보살님이 옆에 계십니다.

죄도 사라지고 분별망상심도 다 사라지면 마음이 깨끗해 질 것입니다. 

죄도 없고 분별망상심도 없는 경계, 정말 청정무구한 푸르디 푸른 하늘과 같은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계가 진참회(眞懺悔)의 경계이며, 

부처의 경계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경계가 되어 죄와 분별망상심이라는 쓰레기를 다 태우면 활활 타오르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인 숯불 자체가 됩니다. 

우리는 광명체(光明體)이며 무죄체(無罪體)입니다. 

원죄체(原罪體)가 아닙니다.우리 마음 가운데 죄를 지으면 `죄를 지었구나'하고 아는 

존재가 있습니다.


만약 원죄로 뒤덮여져 있다면 캄캄한 방에 갇혀 천년이고 만년이고 들어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밝은 세상을 모릅니다.다른 종교에서는 우리들이 태어날 때 부터 아담과 이브에 

의해서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존재라고 합니다. 

원죄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신의 구원이 아니고서는 결코 구원될 수 없는 존재라 합니다.
그 종교의 논리대로 따진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지으면 지었다는 것을 압니다. 

죄를 심판하는 존재가 마음 가운데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본질이무죄라는 사실과 같습니다. 

 

죄를 안다는 것 자체는 우리 내부에 죄를 판정할 수 있는 능력있는 자가 있으며, 죄를 참답게 

심판할 수 있는 능력자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유위심(有爲心)이고,죄를 짓지 않는 마음은 무위심(無爲心)입니다.
무위심의 증득(證得)을 이름하여 진참회라고 합니다.

출처 :매사와법진 원문보기▶ 글쓴이 : 法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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