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미움과 노여움이 쌓이면 병이 된다.

qhrwk 2024. 12. 28. 10:35

 


 ♣미움과 노여움이 쌓이면 병이 된다.♣

 “자기의 본성품이 불(佛)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거짓된 아(我)를 집착하고
경계를 보며 그에따라 애증과 미움과 원망 등 온갖 거치른 마음과 행이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이 번뇌를 쉬지 못하고 애착과 미움이 있으면 끝없이 변화하는 경계를 보게 된다.

여기서 범부들은 수레바퀴 구르듯이 생을 거듭하며 육도를 윤회한다.
그러므로 윤회에서 벗어나자면 자기 본성을 깨달아 번뇌가 쉬고 증애가 쉬어야 한다.
우리 생활에서 우선 탐진치 삼독을 버려야 하며 상을 여의고 마침내 법에 대한 애착도
없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선지식을 만나면 사견에 떨어지지 않는다.” - 원각경 정업장-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我)에 대한 강한 집착을 여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 뜻에 맞으면 기뻐하고 자기 뜻에 어긋나면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합니다.

경에 “먼저 탐진치를 버려라”하신 것처럼 힘써 삼독심을 버려야 합니다.
분노심을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이 본래로 무인 것을 깨닫고 나아가 상대방의 원만한 덕성을 관하여 감사하고
존중할지언정 결코 원망심을 버려야 합니다.

노여움을 참아서 쌓이면 병이 됩니다.
우리가 비단옷을 입었든 거친 옷을 입었든 모두가 그것은 한때 옷입니다.
덧옷이라고 하는 생을 제대로 가꿔가려면 항상 자기 마음을 올바르고 바르게
 가꿔가야 합니다.

겉모습에 상관없이 안에 형성돼 간다는 것을 부처님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옷은 계절이 다했으면 벗어버려야 합니다.
유행없이 아무 때나 입는 옷이라 해도 결국 벗어버려야 합니다.

옷은 철따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착한 과를 받는 생의 종말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땅에 이르는 문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유전문(流轉門)과 아울러
환멸문(還滅門)을 가르칩니다.

부처님께서는 깊은 지혜로 인간의 삶이 윤회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윤회라고 하는 생은
자기행에 따라서 새로운 생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또 하나는 그것은 생사이기 때문에
거기서도 해탈해야 한다.

근원에 돌이켜야 한다 하는 환멸문을 가르칩니다. 

되돌아 꺼지지 않는 것, 열반의 언덕,생명의 뿌리에 되돌아 와서 죽음이 없는 땅을 가르칩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법(四諦法)에서 말하면 이 현실은 죽음을 앞에 한 무수한
고통이 감겨있는 고라는 것이며 그 고가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번뇌입니다. 번뇌가 모여서 그런 것입니다.

번뇌의 질에 따라서 그 과보가 다르다 하는 내용이며 모든 것은 유전문(流轉門)의
법문이 되고 그 번뇌는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끊는 상태는 멸을 말하고 멸하는 방법은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고집멸도 중에서 멸, 도 이 두 가지 법문은 환멸에 속하는 법문입니다.
또 우리들이 아침에 법당에서 예불할 때 영단에 항상 독경을 합니다마는 독경을 하는
내용을 읽어보면 그것은 다 깊은 법문입니다.

영단에서 영가들에게 생사에서 벗어나는 법문을 매일 아침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생(生)이 십이인연(十二因緣)에  따라서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유(有), 생로병사(生老病死)까지

유전문(流轉門)을 설명하고 유전문을 거슬러 올라와서 끊어버리면 마침내 생사없는

세계에 간다 하는 환멸문(還滅門)의 법문을 반복해 줍니다.

이것이 무상계 법문입니다마는 이 무상계 법문, 이것이 하나는 유전문의 설명에서 부터
유전을 끊어서 결국 단멸(斷滅)해서 마침내는 성과가 없는, 생사를 초월한 불멸의
생명지에 도달하는 법문을 해주고 있는 것을 아실 겁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들은 유전문에서 벗어나 정말 참된 자기불멸의
생명에 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원각경의 장면입니다.
진리 전체가 자기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을 붙잡고 이것이 나(我)라는 생각을
가지고이 생각이 나라고 함으로써 유전하게 됩니다.

유전의 원인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서 아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아(我)에 대한 집착을 통해서 생겨지는 사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을
다 부숴버려야 합니다.
또한 깨닫지 못하는 원인으로써 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기 중심이 되어 버리고
자기 중심이 되어서 자기에게 맞으면 기뻐하고 거슬리면 미워하고 대립하고 투쟁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애착과 미움이 겹겹이 붙게 됩니다.

집착을 버리고 염불 수행하라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에 돌아와 생사가 없는 언덕에 오르려고

하면 우선 애착하고 미워하는 마음, 이것은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에 보면 깨닫는 근본을 가장 쉬운 총체적인 말씀 두 가지로 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탐진치를 버려라. 우선 내 몸뚱이를 중심해서 집착하고 있는 탐심과 노여워하는

어리석은 생각들, 탐진치를 끊어 던져버려라.
그리고 마침내 염불하고 수행하고 닦아서 ‘이 법이다’하고 얻었다 하더라도 이 법이라고 하는

생각을 따로 지어먹지 말아라.”

본래부터 깨달은 진리, 본래 부터 완전한 진리며 법인데‘법이다’ 하고 생각을 그리고 앉아

있으면 그런 것은 가짜다 이겁니다.

머리는 본래 부터 있는데 내가 머리를 얻었다 하면 그 얻었다는 생각, 그것은 가짜 생각입니다.

본래의 것에 눈뜨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탐진치를 끊고  마침내는 마음 가운데 있는 모든 상을여의어서 법에 대한 애착마저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이면 선지식을 만나서 삿된 지견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부처님께서 여기 말씀하시고 계신 것을 보면 제일 강조하신 것이 증애입니다.
미워하는 것, 원망하는 것, 노여움,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든 이유가 없든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사를 가져오고 금생, 내생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금생, 내생 가운데 불행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생도 가져오고 내내생도 가져오고 계속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불행을 끊고 불행을 가져오는 생사를 끊어서 생사가 없는 영원한 진리
자체, 생명이 없는 진리 자체, 거기에 제대로 돌아오려면 우선 미움부터
버리라는 것이며, 노여움도 버리라는 것이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수일 전에 어느 보살님의 수기를 읽었습니다.
내용을 말하자면 그 보살님의 고향은 온양인데 결혼해서 남편 직장따라 서울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외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육남매 중 시동생 셋을 공부시키고, 시아버님도 한달에

반쯤은 와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없이 열심히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님께서는 칭찬은 한번도 하시지 않고 늘 꾸지람만 했습니다.
또 오고 가는 남의 말만 들으시고는 전화로 편지로 꾸지람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보살님은 인내와 순종으로 참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시동생들도 다 장성해서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구들도 단촐해지고 할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부터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몸이 형언할 수 없게 아프고 정신적인 불안 같은 것이 겹쳐오고 고통이 심해서 안

가본 데 없이 다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낫지를 않았습니다.

다행히 거사님은 참 자상하신 분이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집으로 전화를 하시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강동구의 대자광 보살님을 만나서 우리 불광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자광 보살님은 “몸이 괴로운 것은 남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발견하여 참회하여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가슴 속의 노여움과 미움을 지우라 그런데 그 보살님은 그 말을 몹시 거슬려 하면서도

다행히 대자광 보살님이 일러준 대로 기도를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염불을 하면서 지금은 살아계시지도 않은 시어머니를 왜 이렇게 미워하고 있는가.’

그렇게 순종과 인내로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시동생들 뒷바라지까지 잘 해왔지만 그 보살님의

가슴속에는 노여움이 가득 고여 있었던 것입니다.

앙금처럼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그것이 병이 되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보살님은 염불하다가 시어머니에 대한 미운 생각이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서 부터 마음을 돌이키고 참회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삼칠일 회향일이 되었을 때에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경우를 보면 역시 미움이라는 것, 노여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든 없든 우선
자기 자신에게 손해가 오는 것입니다.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깊이 쌓이면 그 후에
두고두고 고치기 어려운 병까지 들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로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병의 뿌리 같은 것도
일심으로 염불하고 참회하면 그것이 소멸됩니다.
잠재의식 깊은 곳에 앙금처럼 앉아있는 나쁜 때를 벗겨내는 방법은 일심염불하고
진정으로 뉘우칠 때 그것은 맑혀질 수가 있습니다.

잠재의식을 정화시키는 방법, 그 방법은 일심염불입니다.
일심염불 속 그삼매 속에서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 보살님은 기도를 마치고 나서 깨끗이 나아버렸습니다.
나아서 정말 활발하게 법등 임원활동도 하고 거사님도 항상 기뻐하면서 법회에 열심히

나오실 뿐만 아니라 전법을 하시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원각경에 있는 말씀 하나를 인용해야겠습니다.
“나의 몸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 미워함, 애착함 이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나랴.”
그러니까 나를 해치고 원망스러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我)라고
하는 집착 때문인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이 몸은 물거품같이 공허한 것이고 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무아(無我)의 생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나에 대해서 원망스럽게 대해오시는 분들, 그 분도 원만한 덕성을 가지고

있고훌륭한 분이신데 나를 키우고 나를 단련시키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에게 어렵고 모질게 대해오시는 분이라 할지라도 그 분은 훌륭하신 분,
덕스러운 분,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 나를 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분,
이렇게 마음을 먹어서 정말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합니다.

마음 가운데서 겉으로는 순종하고 속으로는 원망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순간순간 쉬지 아니하고 일체 부처님께 예경한다고 하는 것이 보현행원품의
예경장입니다마는 어떻게 순간순간 쉬지 않고 일체 부처님께 예경하느냐.
그 방법은 부처님께 예경하듯 대하는모든 사람에게 항상 공경하고 예경하는
자세가 그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이 끊이지 않으면 일체 제불에게 예경하는 것이 됩니다.

역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서로 맞지 않는 것도 있고 성격이 두드러져
부딪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집안의 어른과 가족들을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그 분들이 참으로 나를 키워주시고 나를 빛내주시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시는 훌륭하고 은혜로운 분이라는 생각을 잊지 마시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말 것은 일심염불 가운데 참회하는 것이 내 마음 속에 있는
묵은 앙금을 닦아내는 방법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것도 꼭 잊지 말아서 잠재의식 속에 누적되어 있는 불행을 소탕해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료출처: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