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윤회(輪廻)를 확신하는 생활

qhrwk 2025. 1. 10. 12:49

 

 

◈윤회(輪廻)를 확신하는 생활◈

우리 주변의 종교들중에서 윤회를 가르치고 믿는 종교는불교 뿐이다. 
그런데 불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윤회는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세가 엄연하고 인과응보의 법칙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진대 어찌 윤회를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원각경]에
'선남자야, 온갖 중생이 무시의 끝으로부터 갖가지 번뇌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윤회가 있게 되느니라'라고 하셨고,

또 [현우경]에는 '세존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다함없고 윤회가 가 없어서 개미처럼 휘돌아 끝날줄 모르는
도다'하시며 우리를 가르치고 계신다.
이외에도 경전의 여러 곳에서 부처님은 윤회와 해탈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불교는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가르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요사이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하여 많은 사람들은 물질의 윤회를
믿는다. 그러나 정신(識)의 윤회는 믿으려 하지 않으므로
다생(多生)을 사는 중생들이 단생(單生)밖에 생각치 않는다.

오늘날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생기는 것은 윤회전생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 신문에 한국인의 특성을 어느 외국 기자가
평했으되, 한국인은 걸핏하면 싸우고 걸핏하면 맞붙는다는 것이다.

현실의 여러 현상을 생각해보면 그 평이 틀린 평이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때 그것은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만들어낸
일회적 인생관에서 연유한것으로 생각된다.

함허 스님께서도 '유자(儒者)는 자취(迹)를 전공한다'고 하셨듯이
의를 너무 숭상하다 보니 현세적 형상에만 매여 단생에 겉치레만
강조하는 풍토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평생에 모든 것을 다 해야하고 이름을 남겨야 하고
체통을 생명처럼 여기다 보니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타인의 탓으로 돌려 싸움을 벌이곤 한다.
오랜 세월을 당파싸움으로 보내게 되니 자연히 민족성은
조급해지고 서로간의 불신은 커져만 가서 투쟁성이 강하게
되어 걸핏하면 싸우고 맞붙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설상가상으로 전후에 밀어닥친 서구의 종교사상 또한 일회적
인생관이고 보니 이 민족 이 사회가 성급해지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못된 인생관을 바로잡아
화목하고 서로 도우며, 형식보다는 내면의 충실을 기하는
성실하고 차분한 민족성으로 고쳐 나갈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불교의 윤회사상만이 이 민족의 병을 고쳐가는 양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한생이 아닌 다생을 사는 것을 확신하게 될 때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표면적 형식보다는 내면적인 삶의
자세가 다음 생을 좌우함을 확신해야 한다.

인과응보의 법칙을 확신하게 될 때 양보 와 봉사가 있는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죄악의 삶은 반드시 무서운
업보로 돌아온다.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부처로서의 생명으로
정화되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이타와 적선,
그리고 참다운 지혜를 열어나가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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