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8
以知菩薩은 為發菩提無上心故受戒하야 雖暫有犯이라도 乃從事而論하야 一期所制라
若菩提心과 四弘願不斷하면 即不名犯이요 若永捨菩提心하고 違四弘誓하면 即名犯戒
어니와 以聲聞人은 不發菩提心受戒하야 但求出離니 事戒纔犯하면 持心即斷이라
以從生滅邊論故니라 若菩提心菩薩戒는 約盡未來際토록 無有間斷故니라
[원문] 그러므로 알라.
보살은 보리심이라는 최상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계를 받아서 비록 잠간 범했더라도
형식적인 것이라는 사실의 바탕위에서 논한다.
어느 한 순간만 필요한 법이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만약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끊어지지
아니하면 곧 범했더라도 범했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영원히 보리심을 버리고 사홍서원을 어기면 그것이 곧 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문인은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계를 받아서 다만 세상에서 벗어나기만을
구하므로 형식적인 계를 조금만 범하면 계를 가지는 마음이 곧 끊어지고 만다.
생멸에 치우쳐서 논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리심 보살계는 미래세상이 다하도록 결코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해설) 요컨대 불교의 본질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을 가장 잘 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성불이 목적이 아니라 중생제도가 목적이라고 한다. 계율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영명연수선사가 여기에서 명확하게 강조하기를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지계냐 파계냐를 평가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보살계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있기 때문이고 성문계를 낮추어 평가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하고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없기 때문이다.
보리심이란 무엇인가.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다. 사랑과 연민심이다.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은 사홍서원으로 표현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즉
제도해야할 중생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내가 다 제도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 제도란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을 뜻한다.
부처님은 언제나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중생들의 눈을 열어주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의식주문제를 등한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하는 봉사는 부처님처럼 반드시 진리의 가르침으로서 해야 한다.
의식주문제를 가지고 봉사하는 것은 국가의 보건복지부에서나 다른 종교에서 해도 된다.
불교와 같은 고급 종교가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종교처럼 진리의 가르침은 뒤로
제쳐두고 의식주문제만을 도와주려는 봉사활동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그릇의 밥을 주려는 노력으로 한 그릇의 감동적인 진리의 가르침으로 나누어 주어
사람들의 지혜의 눈을 열어주는 것이 보리심이며 사홍서원이다.
비유하자면 그 마음을 제도하여 진리의 길로 열어주는 것은 다이아몬드를 주는 것과 같고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은 구리나 철과 같은 값싼 물건을 주는 격이다.
값싼 것을 줄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수만 배 비싼 것을 줄 수 있겠는가마는 그렇다고
불자가 다 나서서 사람들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직 부처님의 뛰어난 가르침으로서 그 마음을 제도해야 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이치를 따지고 경중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오로지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르고 참된 이치를 배우고 깨달아서
법으로써 사람들에게 전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수많은 공양 중에 법공양이 제일이라.’고 하셨다.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있으면 계를 파해도 파한 것이 아니요,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없으면
계율이 청정하고 자기혼자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단호한 내용의 말씀이다.
보살계는 오로지 심지법(心地法)을 바탕에 깔고 보리심과 사홍서원의 실천으로
그 종지를 삼는다.
출처: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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