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6

qhrwk 2025. 3. 3. 07:34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6

所以로 蓮華色比丘尼가 昔為戲人하야 披法服時에 以宿命智로 觀過去無始前에 恒處地獄

하야 無有出期하고 遂乃廣勸王舍城中釋種等女하니 但出家하면 破戒入地獄이라도 

終有解脫之時라하니 是以로 但受破戒라도 速超得道之場이요 不受不破하면 

永處泥犂之患이니 以業道罪相酬하야 無有休息이니라

[원문] 그러므로 연화색(蓮華色)이라는 비구니는 예전에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는데 출가하여 

법복을 입고는 과거를 꿰뚫어보는 숙명통의 지혜를 얻어 과거를 관찰해보니 항상 지옥에 

드나들어  빠져나올 기약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왕사성 석가족의 여자들에게 널리 권하였다.

 “다만 출가만 하면 설사 파계해서 지옥에 들어갈지라도 마침내는 해탈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계를 받고 파계만 할지라도 신속하게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계를 받지 않고 파계할 것도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과 같은 삶에서 살게 되리라. 

업을 지은 것과 죄를 받는 일이 서로 서로 반복해서 주고받고 배상하여 쉴 날이 없으리라.

(해설) 앞에서 사바세계 중생들의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하였다. 

그 일상적인 삶이란 열 가지 악한 일을 밥을 먹듯이 저지르면서 온갖 부귀공명을 지나치게 탐하여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하는 일로 끝내는 형무소를 자기 집 드나들듯이 한다고 하였다. 

연화색 비구니로써 그 한 사례를 들고 있다. 

연화색 비구니에 대한 설화는 불교에서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사분율(四分律)에 

실려있다.

인도의 서쪽 아반티라는 나라에 웃제니라는 한 도시가 있었다. 

그곳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연화색, 즉 웁팔라반나[蓮花色]란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어서 그의 부모는 이 웁팔라반나를 결혼시키고 그 사위를 맞아들였다. 

얼마 후 그 젊은 부부 사이에는 딸이 생겼는데 그때 바로 웁팔라반나의 아버지가 별안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가 갓난애를 안고 자기 방안에 있을 때,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사위와 

몰래 정을 통하고 말았다. 

하녀가 이것을 보고 곧 그 사실을 웁팔라반나에게 말하였다. 

그 어머니와 남편의 이와 같은 불륜을 알고 분노와 슬픔을 금치 못한 그녀는 정신없이 갓난아기를 

방에 그대로 둔 채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먼 길을 걸었다. 웃제니를 출발하여 베나레스 성에 도달하였다. 

성문 밖에 서서 정신을 잃고 허탈한 심정에 잠겨 있었다. 

아름다웠던 육체는 지금 먼지와 흙에 뒤덮이고 발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이 성에는 상처(喪妻)를 한 한 장자가 있었다. 

때마침 무료를 풀기 위해 성 밖으로 나와 교외를 거닐려고 하던 참에 성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웁팔라반나를 보았다. 

 

장자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쏠려 마차를 세우고 그 여자의 앞으로 갔다.

 “당신은 어느 누구의 아내이시오?”

“나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올시다.”

“당신이 독신이시라면 내 아내가 되어줄 수는 없소?”

이런 대화가 오고 간 후에 그녀는 그 뜻을 수락하였다.

장자는 여인을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로 삼았다.

얼마 동안의 세월이 지나갔다. 

장자는 큰돈을 모았다. 그는 장사를 위해 웃제니로 가야할 일이 생겼다. 

웃제니는 그 아내 웁팔라반나의 고향이다. 장자가 거기에 갔을 때 그는 우연히 그 지방의 처녀들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절을 맞아 기쁘게 뛰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 중에는 웁팔라반나가 낳은 딸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를 닮은 그 미모에 장자는 크게 마음이

동하여 그 옆의 사람들에게서 이름과 주소를 알고 그 집으로 찾아가 그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

수만금을 주고 그 딸을 데리고 올 수가 있었다.

장자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를 숨겨두고 그가 가졌던 돈의 절반을 

거기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아내는 돈이 적은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더니 “도적을 만나 절반을 빼앗겼다. 

이제 가서 곧 도적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떠난 뒤 남편의 친구가 와서 “장자는 어디로 갔느냐?” 

“돈을 뺏어간 도적을 찾아갔습니다.” 

“도적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간 것일 게다.”라고 여행 중에서 생긴 모든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얼마 안 있다 장자가 돌아오니까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은 유달리 나를 속이려고 하오.

이미 딴 여자가 있으면 어째서 내 집에 데려오지 않소.”

“두 아내가 한 집에 있으면 싸움이 생길 염려가 있어서 그랬소.”

“하지만 제가 잘 참을 것입니다. 절대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만일 나와 나이가 비슷하면 자매와

같이 지낼 것이고, 나이가 어리다면 딸과 같이 대하겠습니다.”

장자는 아내의 말대로 그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동향인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더 친근한 뜻을 표했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는 그 여인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었다. 

“당신이 웃제니 사람이라는데 집은 어디에 있으며, 그 거리 이름은 무엇이고, 아버지 

이름은 누구요?” 하고 자세히 물었다. 

“당신 어머니의 이름은?”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머니 이름은 ‘웁팔라반나’라 한다고 하며 

어렸을 때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답니다.

”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바로 자기 딸임을 알고 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한 때는 어머니와 남편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또 딸과 남편을 같이하게 되다니 

이 무슨 죄악일까?” 

그녀는 다시 집을 버리고 나가 걷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 거리 저 거리를 방황하였다.

베나레스 성문(城門)을 나서서 울며 울며 가다가 도달한 곳이 라자가하[王舍城]였다. 

거기에 온지 며칠 안 되는 동안에 그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성 안의 노름꾼들 사이에 자자하였다. 

오백 명의 노름꾼들이 오백 금을 웁팔라반나에게 주고 같이 꽃밭으로 가서 거기서 노는 것이다. 

그때에 마침 목력(目連)존자가 그 동산 안에서 나무 밑을 산보하고 있었다. 

이 노름꾼 중의 한 사람이

 “너 저 존자에게 가서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옛날에 수많은 남자의 마음을 녹였다. 어째서 저런 사람쯤 녹이지 못하겠느냐”하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도심(道心)은 견고하기 때문에 그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목련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가진 교태를 다 부렸으나 목련존자의 마음은 숲과 같이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때 목련존자는 이 여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인이여, 깊이 스스로 반성하라. 네 몸은 미워해야 할 것, 더러운 그 몸은 뼈가 되고, 뼈의 

둘레를 도는 근육과 혈액은 엉키고 설키어서 나쁜 피가 그 사이를 흐른다. 

위(胃)의 주머니는 언제나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아홉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은 

그칠 사이가 없고, 나쁜 기운이 늘 몸에서 넘치고 있다. 내가 만일 네 몸의 부정(不淨)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면 마치 여름철의 변소와 같이 사람들은 너를 버리고 멀리

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진실을 찾는 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우치(愚痴)의 안개에 뒤덮여 마음이 

미혹되어 너를 가지고 쾌락을 누리려는 모습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구덩이에 

빠져가는 것과 같다.”

웁팔라반나는 그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멀리 물러나 존자께 절하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높으신 분이시여, 제가 지금 알았습니다. 미워해야 할 이 육신이 항상 부정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존자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만일 사람들이 내 진실을 안다면 여름날의 변소에는 가까이할 

바가 못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멀리 나를 버리고 떠나가 버릴 것이옵니다. 

원하옵건대 높으신 분이시여, 저를 위해 그 가르침을 다시 깊이 설해 주옵소서. 

저는 가르침에 따라 출가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 도(道)를 닦겠나이다.”

목련존자는 이를 불쌍히 여겨 스승의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열려 거듭

출가하기를 간절히 구했다.

그리고 같이 왔던 노름꾼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목련존자가 그녀를 데리고 부처님에게로 가서 전후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부처님은 다 듣고 나서

웁팔라반나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연화색비구니가 되었다.

이 설화에서 보여주는 연화색의 인생이나 우리들의 인생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부귀공명에 흔들리고 끌려서 이리 저리 팔려 다니는 삶은 대동소이하리라.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다. 

아무리 사바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 온갖 일을 다 저질렀을지라도 끝에 가서 정신을 차리고 

본심으로 되돌아 올 주 알면 된다. 

본심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일불승(一佛乘)의 경지, 즉 자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자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자리로 되돌아 오면 그 때부터는 저절로 부처님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연화색비구니는 자신의 인생을 깨닫고 미루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석가족의 여인들에게 널리 권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였다. 

참으로 자신의 불행한 삶을 잘 승화시킨 사례다. 

전화위복이라는 것을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어쩌면 그와 같은 행운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는 어떤 삶과 어떤 경험과 어떤 고통도 잘 회향하여 승화시키면 결코 헛된 것은 없으며 

오히려 몇 만 배의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출처: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