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3
有威儀比丘가 聞已誹謗하야 起是業已에 後時命終에 是業果報故로 墮阿鼻大地獄하야
九十百千億劫을 受諸苦惱라가 從地獄出하야 六十三萬世를 常被誹謗하고 其罪漸薄하야
後作比丘하야 三十二萬世를 出家之後에 是業因緣으로 返道入俗하고 乃至無量千萬世를
諸根暗鈍하니라 師子游步야 於汝意云何오 爾時有威儀比丘가 豈異人乎아 勿造斯觀하라
則我身是니라
[원문]
“그 훌륭한 비구가 그 게송을 듣고 나서 비방하였다.
비방한 업 때문에 죽고 나서는 그 과보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서 구십 백 천겁동안 온갖 고통을 받다가 다시 지옥에서 나와서 육십삼만 세를 항상
남들로 부터 비방을 받았다.
그리고는 죄업이 점점 가벼워져서 드디어 비구가 되어 삼십이만 세를 출가하여 지낸 뒤,
이 업의 인연으로 다시 세속에 돌아가서 한량없는 천만 세를 육근이 우둔하여 미련하게
살았느니라.
사자유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의 그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놀라지 말라. 내가 바로 그 비구였느니라.”
(해설)
게송 하나 듣고 비방했다가 그 과보로 지옥생활을 어지간히도 오랫동안 하였다.
하지만 경전에 기록된 대로 실지로 그와 같은 긴 세월이었을까.
일일이 여삼추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빠르며, 미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던가.
아인슈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상대성의 원리를 물었을 때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다고 들었다.
객관적인 시간이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아니 시간이란 것이 본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구십 백 천겁을 지옥에서 살았다하더라도 객관적인 시간은 불과 며칠인지 모른다.
구십 백 천겁이란 우리들이 사는 이 지구가 생기기 훨씬 이전의 시간이다.
그가 어떤 세월을 얼마동안 살아왔든 이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탐진치 삼독과 온갖 번뇌가
그대로 진리며 불법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 온
사람이 다름 아닌 석가모니 자신이라고 밝힌 사실이다.
경전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의 그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놀라지 말라.
내가 바로 그 비구였느니라.”라고 하였다.
비록 최상승의 큰 법을 듣고는 그 때 내가 받아드릴 수 없어서 비방도 많이 하였다.
그러나 최상승의 가르침을 비방한 그 인연으로 어느 날 어느 순간 다시 최상승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 마치 육조 혜능대사 이상으로 빠르게 이해하고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술회하고 있다.
독자는 이 사실에 주목하고 또한 깊이 사유하여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하리라.
출처: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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