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9

qhrwk 2025. 3. 3. 08:06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39

 

又經云 犯戒名菩薩이요 不犯名外道라하니 以未聞大乘佛性戒故 無可得犯이라 

縱修萬善이나 皆是無益이요 苦行所收 種苦求甘 終無得理 蒸砂作飯 豈有成時리오 

所以 梁帝發願云 不願作鬱頭藍子하야 暫得生天이요 寧可作提婆達多하야

 永處地獄이라하니라

 

[원문] 또 경전에서 이르기를, ‘계를 범하면 이름이 보살이요 범하지 않으면 외도라.’

하였으니 대승불성계를 아직 듣지 못한 까닭에 범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만 가지 선행을 닦으나 모두 이익이 없다. 고행에 해당할 뿐이다.

쓰디쓴 것을 심어서 달콤한 것을 구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든들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므로 양나라 무제임금이 발원하기를, ‘울두람자가 되어서 잠간 천당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고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서 영원히 지옥에서 살리라.’라고 하였다.

 

(해설) 보살계는 일심의 이치를 잘 깨달아서 보리심과 사홍서원으로 중생들을 교화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그 교화란 거듭 말하지만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을

교화라 한다. 그 이외의 교화는 아직 완전한 교화라 할 수 없다.

경전의 가르침을 인용해서 계를 받아 범할 것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이니 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이 위대한 보살계를 멀리해서는 안 되다는 것이다.

 

지켜야할 것도 없고 범해야할 것도 없는 인간이 무슨 인간인가.

비유하자면 원시사회에는 지켜야할 법규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발달된 지금의 사회에서는 온갖 법률이 제정되어 있어서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을 문명이 발달한 세상이라 하고 원시사회는 미개한 세상이라 한다.

미개한 세상에서 좀 산다고 한들 무슨 사람이 사는 것이겠는가.

마음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선한 일을 한다 해도 별 이익이 없다.

 

고통의 씨앗을 심어 고통의 결과를 맺는 것이고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짓과 흡사하다.

양무제 임금의 발원을 이끌어서 더욱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울두람자(鬱頭藍子)란 우드라 카라마 푸트라라는 부처님이 출가해서 처음에 수행할 때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이다.

그의 가르침은 선정에 들어 있을 때는 비상비비상처의 경지를 얻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

하였으나 선정에서 나오면 다시 인간의 고통과 번민이 그대로였기 때문에 결국은

그를 버리고 떠나왔다.

그래서 양무제는 “잠간 천당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종형제로서 부처님에게 자주 대적하였는데 때로는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여러 번을 시도했다가 결국은 지옥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법화경에서는 제바달다가 부처님의 스승이며 나아가서 부처님이라고까지 수기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무제의 발원은 “차라리 그와 같은 제바달다가 되어 영원히 지옥에서 살리라.”라고 하였다.

 

양무제의 발원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 목석과 같이 되는 선정에 들어가서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석가모니의 훌륭한 모습에 분노와 시기 질투를 참지 못하여 끝내는 무리들을

동원하여 살해하려고까지 하였던 제바달다, 그래서 스스로 지옥과 같은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무수한 비방을 받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부처님으로부터 스승이라는

수기와 부처님이라는 수기를 받게 되는 그와 같은 파란만장한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제바달다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삶이 차라리 사람다운 삶의 길이라는 뜻이리라.

옛말에 “산중에서 선정을 닦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온갖 세상의 경계를 앞에 두고 숲과

같은 고요한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고하였다. 무엇이 진정한 수행이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의 길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겼으나

이와 같은 뛰어난 발원문을 세상에 전하여 일시에 만회한 결과가 되었다.

 

출처: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