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48

qhrwk 2025. 3. 6. 07:36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48

阿差末經云 若一切聲聞戒는 入涅槃故로 戒力消盡하며 若辟支佛戒는 無大悲故로 

戒力消盡이어니와 舍利弗當知하라 菩薩摩訶薩戒는 行無盡이니 何以故오 一切淨戒가 

皆因菩薩戒攝하야 現前故니 譬如種子漸多에 利益無盡이니라 舍利弗當知하라 

菩薩心者는 猶如種子하니 諸佛如來는 戒行無盡일새 是大丈夫며 名無盡戒行이니라 

舍利弗아 是修行菩提持戒故로 戒行無盡이라하니라 又受菩薩戒가 具五功德八殊勝하니

 向下廣明하야 挍量無盡하리라

[원문] 아차말경에 이르기를 “일체 성문들의 계는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계의 힘이 

다하고, 벽지불의 계는 자비가 없기 때문에 계의 힘이 다한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보살마하살의 계는 그 실천이 다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의 

청정한 계는 모두 보살계를 인하여 포섭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곡식의 종자가 많으면 그 이익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보살의 마음이란 마치 곡식의 종자와 같으니 제불여래는 

계행이 다함이 없으므로 대장부며 이름이 ‘다함이 없는 계행’이니라. 

사리불이여, 보리심을 닦아서 계를 가지기 때문에 계행이 다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또 보살계를 받는 것이 다섯 가지 공덕과 여덟 가지 수승함을 갖추었으니 뒤에 널리 

밝혀서 다함이 없음을 비교하여 헤아리리라.

(해설) 아차말경을 인용하여 보살계와 성문 연각의 계를 비교하였다. 

비단 계를 비교하는 데 끝나지 않고 불교의 바른 길을 가르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불교적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고통과 번뇌를 떠나서 열반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 불교적 삶이 아니다. 

자비심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어려움을 살피고 돌볼 줄 모른다면 그것도 

역시 불교적 삶은 아니다.

흔히 불교의 목적이 성불이라고들 하나 성불은 중생들을 제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비로써 보살피기 위한 하나의 힘을 준비하는 것이다. 

힘이 있으면서 남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성불만하고 중생제도를 못하는 부처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성불은 하였으되 불교적 인생은 아니다. 다함없는 자비로서 사홍서원을 

실현하는 삶이 곧 불교적 인생이라는 뜻을 계를 설명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보살계를 받는 것이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계품이 견고하여진다.
2, 온갖 원망들을 잘 다스린다.
3, 대중 가운데서 단호하여 두려움이 없다.
4, 의심을 품은 사람들을 능히 마음을 열어주고 이해시킨다.
5, 계를 잘 가지므로 정법이 오래 지속되게 한다.

여덟 가지 수승함이란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마음에 깊이 

새기고자 한다. 

남악 혜사(南岳惠思,515-577)스님은 보살계를 받는 의식[受菩薩戒儀]을 말씀하시면서 

보살계의 여덟 가지 수승한 점을 소개하였다.

1, 도에 이르는 것이 수승하다. 보살계를 받으면 마치 큰 붕새가 단번에 높이 올라 

십만 구 천리를 날듯이 이 보살계는 도에 나아가는 것이 매우 빨라서 발심만 하더라도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를 넘어서버리고 성문과 연각들보다 최상의 

깨달음에 질러가기 때문이다.

2, 발심이 수승하다. 한 순간 큰 자비와 지혜의 마음을 내면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초월한다. 마치 옛날 어린 사미가 있었는데 보리심을 발하므로 노 아라한이 도리어 시자가 

되어 공경하고 옷과 발우와 삿갓을 들어주며 앞길을 비켜 주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나이가 많은 노 아라한이 어린 사미를 시자로 삼고 길을 가는데 사미가 문득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계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앞서가던 노 아라한이 타심통으로 

그 사실을 알고는 사미가 들고 가던 짐과 삿갓을 도리어 받아들고 앞서가던 길을 비켜주고 

뒤에 따라가면서 공경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3, 복이 수승하다. 가령 염부제 안에 가득한 아라한들을 공양하더라도 한 마리의 큰 

붕새에게 공양하는 것 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이 붕새는 앞서 보살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4, 공덕이 수승하다. 보살계를 받는 것은 비유하면 태양이 어디든지 비추는 것과 같고,

 성문계를 받는 것은 마치 반딧불처럼 그 빛이 매우 작은 것과 같다. 도저히 서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죄를 받는 것이 가벼운 수승함이다. 보살계를 받은 뒤에 설사 파계를 하더라도 오히려 

외도들의 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보다 훨씬 수승하다. 

외도들은 삿된 견해 때문에 영원히 악도에 잠겨있어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그러나 파계를 한 사람은 계의 위력이 있어서 설사 악도에 떨어졌더라도 죄를 받는 것이 

아주 가볍다. 

만약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의 왕이 되고, 만약 축생에 떨어지면 축생의 왕이 되고, 

귀신들에게서도 귀신들의 왕이 되고, 인간에서는 인간의 왕과 나라의 왕이 되고, 천당에 

태어나면 천당의 왕이 된다. 태어나는 곳마다 왕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계를 범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보살이라 이름 한다. 

그는 계를 깨뜨릴 것이 있지만 범할 것도 없는 사람은 계를 깨뜨릴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6, 모태에서의 수승함이다. 보살이 모태에 있을 때 항상 천신과 왕과 팔부선신(八部善神)의 

왕들이 지키고 보호하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

7, 신통이 수승하다. 대지를 변화시켜 황금과 칠보로 만들고 장강(長江)을 저어서 소락과 

제호를 만든다. 능히 한 순간에 백 천세계를 초월하고 하루에 백 천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8, 과보가 수승하다. 연화장세계에 태어나서 법성신(法性身)을 증득하고, 한 번 참되고 

항상한[真常]진리를 얻으면 영원히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계를 받는데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공덕과 여덟 가지 수승함이 있다고 거듭 소개하였으나 

지극히 상징적인 것도 많다. 일언이폐지하면 수차례 밝혔듯이 범부가 그대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이며 중생이 그대로 부처라는 사실과 탐진치 삼독과 온갖 번뇌가 그대로 진리며 

불법이라는 이 충격적이고 엄청난 사실에 눈을 뜨는 일이다. 

이 사실에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눈을 뜨게 되면 보살계니 부처님 계니 심계니 진여니 

불성이니 범부니 성인이니 중생이니 부처니 문수니 보현이니 하는 말도 오히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이라는 말과 같이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고 말 것이다. 

무슨 다섯 가지 공덕과 여덟 가지 수승함을 논할 것인가.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소리에 불과하리라.

출처: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