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51

qhrwk 2025. 3. 8. 07:21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51

問 於諸佛誘進門中에 方便極多나 省要提携라하니 何不勸生安養하고 豈須破戒하야 

翻障淨方이리요

[원문] 

문, 모든 부처님들의 중생들을 타이르고 달래어 수행에 나아가게 하는 길에는 방편이 

지극히 많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방편이 중생들을 이끌고 극락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어찌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권장하지 않고 지키지도 못할 보살계를 주어 다시 

파계하게해서 도리어 정토인 극락에 가는 것을 방해하는가?


(해설) 

불교에서 중생들을 타이르고 달래어 해탈의 길과 자비의 실천과 깨달음의 문에 들어서게 

하는 방편은 실로 많다. 

그리고 불교가 여러 지방으로 널리 전파되면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방편들이 만들어 졌다. 

지금까지 그 많은 방편들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방편은 뭐니 뭐니 해도 염불을 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권장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적절하다고 하겠다.

그 외에 근래에 만들어진 숱한 방편들은 사실은 방편이라는 미명아래 지나친 것이 많다. 

방편이라면 늦어도 불교에 입문한지 3, 4년 이내에 사람들을 선도하고 나아가서 불교의 

바른 가르침과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나서 더 이상 방편을 쓰지 말고 버려야한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목적한 곳으로 가듯이. 그런데도 10년 20년 

내지 30년이 넘도록 늘 같은 방편을 쓰고 있다면 그것은 방편을 받아드리는 사람들도 

문제가 많고 또한 방편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무슨 저의가 있는 게 분명하리라.
아무튼 방편 중에는 왕생극락을 권장하는 염불방편이 가장 요긴한데도 지키지도 못할 

그 엄청난 보살계를 주어놓고 다시 파계하게해서 도리어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방해하는가?

答 若生安養인댄 教受九品之文이라 上根受戒習禪하고 中下行道念佛이니 眾生根器不等이라 

不可守一疑諸니라 大乘起信論에 明諸佛本意하야 為攝大乘하니 初入信之人이 恐生惡世하야 

難得成就일가하야 令迴向往生하야 免得退轉이라 若見佛法身하면 易成就法忍이라하니 

此是明文證이니라

[원문] 

답, 만약 극락[安養]에 태어나려고 한다면 구품(九品)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게 된다. 

상근기(上根器)의 사람들은 보살계를 받으며 선정을 닦고 중간 근기나 하근기들은 불상을 

돌거나 탑을 돌며 염불을 한다. 

중생들의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만을 지켜서 다른 방편들을 의심할 것은 아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본래의 뜻을 밝혀서 대승에 포섭하였다. 

처음 믿는 사람들이 열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성취하기 어려워할까 염려되어 그들에게 극락에 

왕생하는 것에 회향하도록 해서 불교에서 물러서지 않게 하였다. 

만약 부처님의 법신을 본다면 쉽게 깨달음[法忍]을 성취한다.”하였으니 이것이 분명한 

글로써 증명하였다.

(해설) 사람들의 본 성품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지만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본래의 성품을 

활용하는 작용의 면에서는 차별이 크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근기의 차별이라 한다. 

크게 나누면 세 가지다.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다. 

상근기는 보살계의 이치를 알고 선정을 닦는 생활을 한다. 중근기와 하근기는 염불을 한다. 

혹 어떤 글에는 상근기는 참선하고 중근기는 경전을 읽고 하근기는 사찰을 경영한다고도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참선을 하다가도 사찰 경영[住持]을 하려고 마음 쓰는 수행자가 적지 않다.

사람마다 근기가 같지 않고 수준이 다르므로 하나만 옳다고 여겨서 배척할 것은 아니다.

대승기신론에서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말하고는 있지만 부처님의 본래의 뜻은 대승, 

곧 일불승이며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이치에 모두 포섭한다고 본문에서 증명하고 있다. 

즉 근기에 따라서 방편이야 무엇을 쓰든 대승의 종지에 포섭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지를 살든 참선을 하든 기도를 하든 염불을 하든 세상일을 하든 자신의 지극히 존엄한 

근본은 그대로가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면 허물이 없다. 

금으로 동물을 만들었든 불상을 만들었든 금은 다 같은 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반회상에서 소를 잡던 백정이 어느 날 문득 “나도 천 부처님의 수에 포함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上品往生은 如文殊菩薩云 如壯士屈伸臂頃에 上品見佛하야 便證菩薩初地요 如下第九品은 

聞大乘하되 不信佛戒하고 或只念佛하야 乃至臨終迴向에 亦得往生이니 十二劫에 始花開나 

未得見佛하고 漸證小乘이니 格其圓功컨댄 遲速大隔이라하니라

[원문] 

극락세계에 태어나는데 상품에 왕생하는 것은 문수보살이 말씀하시기를, 

“마치 힘이 쌘 장사가 팔을 구부리고 펴는 사이에 상품으로 태어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곧 바로 

보살의 최초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최하의 구품에서는 대승법을 듣고도 부처님의 계를 믿지 못하며, 혹은 다만 염불만 

하고 임종할 때에 또한 왕생하게 되기도 한다. 십이 겁 만에 비로소 꽃이 피지만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차츰 차츰 소승의 경지를 증득하니 원만한 대승의 공력과 비교하자면 더디고 

빠른 것이 크게 차이가 있다.”하였다.

(해설) 

문수보살의 말씀을 인용하여 상품상생(上品上生)으로 태어나는 것은 마치 장사가 팔을 

구부렸다 펴는 것과 같이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하였다. 

왜 그런가? 대승법을 믿기 때문이다. 

염불만한다고해서 극락의 상품상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승법을 믿어야 한다. 

하품하생(下品下生)은 대승법을 듣고도 부처님의 계인 일불승의 이치를 믿지 않고 다만 

염불만 하여 극락에 태어나는 경우이다. 

염불을 해서 극락세계의 구품연대(九品蓮臺)에 태어난다는 방편설을 인용한 것이다. 

염불하여 극락에 태어난다는 방편설은 지극히 일반화 되어있어서 어떤 이는 극락이 세상 

어딘가에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앞의 원문에서도 밝혔듯이

 “부처님들의 중생들을 타이르고 달래어 수행에 나아가게 하는 길에는 방편이 지극히 많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방편이 중생들을 이끌고 극락세계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달리 해석하면 불교를 믿고 공부를 하더라도 참되고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아는 것과 

다만 방편의 가르침만 믿고 평생을 불교라고 알고 있는 것과의 다른 점을 극락에 태어난다는 

것을 설정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불교를 통해서 극락에 온 것은 

같으나 극락에도 아홉 등급의 차별이 있는데 소견에 따라 상 등급으로 올 수도 있고 

하 등급으로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같은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무수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리라.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을 잘 공부하여 인생을 크게 깨달아서 살아야 하리라.

출처: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