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57

qhrwk 2025. 3. 9. 10:45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57

 

三乘十二分教 惟醫我執愚心이라 執盡情亡하면 智生道現이니  經云 眼病見空花 

除翳不除花 妄心執有法이라 遣執不遣法이라하니 若悟大道圓通之人 尚不見一法是 

何有一法非리오 盡十方世界 未有一人成佛이며 亦不見一人作眾生이니 地獄在何方이며 

天堂居何處리오 不省愚蒙翳目하야 爭攀空裏之花하니 豈察妄想疑根이리요

徒怖暗中之鬼하나니 實可怜愍이며 徒自驚嗟로다

 

[원문]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教)는 오직 아집과 어리석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다.

아집이 다하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情]이 없어지면 지혜가 생기고 도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눈병 때문에 허공에 꽃이 보인다.

눈병을 치료하면 꽃은 제거하지 않아도 되듯이 망녕된 마음으로 집착하니 법이 있다.

그러므로 집착만 버리면 법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였다.

만약 큰 도를 깨달아 원만하게 통한 사람은 오히려 한 법도 옳은 것을 보지 않거니

어찌 한 법인들 그른 것이 있겠는가.

온 시방세계에 한 사람도 성불한 이가 있지 않으며, 또한 한 사람도 중생된 사람을 볼 수 없다.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천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눈병 난 것을 살피지 못하고 허공 속에 있는 꽃만 부여잡으려 한다.

어찌 망상과 의혹의 근본을 살필 수 있겠는가.

한갓 어두운데서 잘못 본 귀신을 두려워하니 실로 가련하고 불쌍하도다. 나 스스로 놀라고

탄식할 뿐이로다.

 

(해설) 비록 아집과 어리석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그 목적이지만 방편으로 펼쳐놓은

불교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삼승십이분교라 한다.

먼저 삼승이란 성문, 연각, 보살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이다.

승(乘)은 물건을 실어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부처님의 교법도 중생들을 실어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데 비유하여 그렇게 쓴다.

성문승은 고집멸도 사제(四諦)의 법문이다.

부처님이 말씀하는 소리를 듣고 이를 관하여 해탈을 얻는다.

 

연각승은 12인연의 법문이다.

스승에게 가지 않고 스스로 잎이 피고 꽃이 지는 따위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닫는 것이다.

보살승은 6바라밀의 법문이다. 보살은 이 법문에 의하여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케

하여 성불한다.

 

십이분교란 십이부경(十二部經)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교설을 그 성질과 형식에

따라 구분하여 12부로 분류하여 놓은 불교 경전을 말한다.

1, 수다라(修多羅)는 계경(契經), 또는 법본(法本)이라고 번역하는 산문체의 경전이다.

2, 기야(祇夜)는 중송(重頌) 또는 응송(應頌)등으로 번역하는데 산문체의 경문 뒤에 그 내용을

운문(韻文)으로 노래한 부분이다.

3, 수기(授記)는 제자들이 다음 세상에서 성불할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4, 가타(伽陀)는 풍송(諷頌), 또는 고기송(孤起頌)이라 번역하는데 4언 5언 7언의 운문으로

구성된 경전이다.

5, 우타나(優陀那)인데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 번역하는 것으로 아미타경(阿彌陀經) 등과

같이 제자들이 묻지 않는데도 석가모니부처님이 스스로 이야기한 경전이다.

6, 니타나(尼陀那)는 연기(緣起) 또는 인연이라 번역하는데 경전 중에서 석가모니불을 만나

법을 들은 인연 등을 설한 것이다.

7, 아파타나(阿波陀那)는 비유(譬喩)라고 번역한다. 경전 중에서 비유로써 깊고 은밀한 교리를

명백하게 풀이한 부분이다.

8, 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는 본사(本事)라 번역하는 것으로 석가모니불이나 제자들의 지난

세상에서의 인연을 말한 부분이다.

9, 사타가(闍陀伽)는 본생(本生)이라 번역하는 것으로 석가모니불이 자신의 지난 생에서의

보살행을 말한 부분이다.

10, 비불략(毘佛略)은 방광(方廣)이라 번역하는데 광대한 진리를 말한 부분이다.

11,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인데 희유법(希有法)이라 번역하며 석가모니불이 보인 여러 가지

신통력을 말한 부분이다.

12, 우바제사(優波提舍)는 논의(論議)라 번역하는데 교법(敎法)의 이치를 논하고 문답한

경문 등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으나 매우 장황하다.

이처럼 장황한 일체의 가르침들은 모두가 오직 사람들의 아집과 어리석은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아집만 없어지면 지혜도 밝아지고 도도 나타난다.

원문에서 말한 눈병난 사람의 비유와 같다.

세상에 그 무슨 법이 옳고 무슨 법이 그르겠는가. 부처는 무엇이며 중생은 또 무엇인가.

지옥은 무엇이며 천당은 또 무엇인가. 모두가 마음의 병일뿐이다.

아집과 어리석은 생각으로 잘 못 헤아리는 분별망상이다.

 

팔만대장경이 불조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너무 빠지거나 신성시하지 말고 염불하고 독경하고

절을 하는 그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깊이 이해하도록 해야 하리라.

성인의 가르침은 모름지기 이와 같이 매인 사람을 풀어주고 답답한 마음을 툭 터지게 하고

어두움에 휩싸인 사람을 밝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의 그 어떤 훌륭한 법도 한 생각 밝아지면 허무맹랑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마치 토끼의 뿔과 같고 거북의 털과 같은 것이다.

꿈속에서 거지 노릇을 하느라고 거리에서 노숙을 일삼든 아니면 천자 노릇을 하느라고 금은보화로

장식한 대궐에서 호의호식을 하든 꿈을 깨면 모두가 헛것인 것과 같다.

얼마 아니하여 그 기억마저 깡그리 사라지리라. 삼승십이분교라는 것이 무슨 귀신 씨 나락을

까먹는 소리인가.

 

출처: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