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성큼한 달이 문득 솟아오르니

qhrwk 2025. 5. 5. 07:03

※ 근현대 중국화가 복효회(卜曉懷)의 <月明林下美人來>  

성큼한 달이 문득 솟아오르니

凉月忽東峯
양월홀동봉
성큼한 달이 문득 솟아오르니

天寒山氣疎
천한산기소
하늘은 차갑고 산기운은 쓸쓸하다.

秋風一葉飛
추풍일엽비
가을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하나

孤客窓間宿
고객창간숙
외로운 나그네 창가에 잠든다.

추야음(秋夜吟)이라 제목된 환성시집(喚惺詩集)에 수록된 시이다.
가을밤 산속의 쓸쓸한 전경이 외로움과 조화된 시이다.
하지만 선승들의 외로움이란 센티멘털한 감상에 젖은 외로움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어쩌면 깨어 있는 자의 홀로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로 치솟은 산봉우리는 언제나 외로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선각자들은 바로 이 외로운 산봉우리 같은 고독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정관(靜觀)을 얻으며 정관 속에서 다시 만물의 이치를 얻는 것이다.
“만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모두 제자리에 있다.”(萬物靜觀皆自得)이라는 주자(朱子)의
말처럼 고독해질 때 고요해지고 조용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은 사람이 외로움의 극치에 이르러야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데서 떠나 있는 진정한 홀로감은 천부의 본래 자기 것일 뿐이다. 수도의 길은
어쩌면 존재의 허무를 깨닫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상대적 존재의식을 절대적 무(無)의 세계로 바꾸어 자기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자는 무심으로 모든 것을 안고 있다. 무심이 되지 못할 때는 항상 이 세상과 싸우기만 할 뿐이다.
‘싸우지 말라.’ 이것이 바로 수도자들의 좌우명이다. 어떤 이념에 입각하여 주장을 크게
 외친다 해서 진리의 본체인 도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고독에 안주하여
편안함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싸울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 도냉월(陶冷月)의 <月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