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달이 밝아 그림 같은 산집의 밤이여

qhrwk 2025. 5. 5. 06:57

※ 근현대 중국화가 유자재(兪子才)의 <벽산녹수(碧山綠樹)>(兪子才, 근현대)

달이 밝아 그림 같은 산집의 밤이여

月明如畵山家夜
월명여화산가야
달이 밝아 그림 같은 산집의 밤이여,

獨坐澄心萬籟空
독좌징심만뢰공
텅 빈 고요 속에 홀로 앉은 이 마음 맑은 물 같네.

誰和無生歌一曲
수화무생가일곡  
누가 세월 밖의 노래를 따라 부르나?

水聲長是雜松風
수성장시잡송풍
솔바람 물소리가 길게 섞인다.

산속에 사는 어느 고고(孤高)한 사람의 밤의 노래다.
달빛 속에 그림 같은 산경山景이 있고 이 밤의 주인공이 가을 물처럼 가슴이 맑아진다.
갑자기 아득한 시원始原을 넘어 은은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계명도 없고 운곡도 없는
이른바 겁외가劫外歌인 무생곡無生曲이다. 세월 밖에서 들려오는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솔바람 소리와 화음을 이룬다.
이 물소리 솔바람 소리가 세월 밖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장단을 맞춘다.
다시 듣고 보니 바로 솔바람 물결소리가 무생곡이다. 이 곡조 없는 노래에 왜 애잔한
슬픔 같은 것이 묻어 나오는가? 담박한 영혼 속에도 애초에 생명의 비원 같은 애잔한
슬픔이 있었나보다.

이 시는 설잠雪岑 김시습의 시이다. 매월당梅月堂으로 더 알려진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풍운아의 일생을 살았던 김시습의 스님으로 있었을 때의 법호가 설잠이다.
근래 그의 유저 《십현담요해》 고본이 해인사 백련암에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선조 초기 배불정책에 의해 수난을 겪고 있던 불교의 암흑기에 그가 혜성처럼 나타나 《화엄법계도주》, 《법화경별찬》, 《조동오위요해》 등을 저술하여 어두운 세상에
불법을 유포, 전수하는 큰 공적을 남겼다.

 

※ 주회민(周懷民)의 <蘆花水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