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가믄장아기 [‘古典 여걸’ 열전] .삼공본풀이 ?

qhrwk 2025. 11. 3. 07:16

옛날 옛적에 ‘강이영성이서불이’라는 남자거지는 윗마을에 살고, ‘홍은소천궁에궁전궁납’이라는 여자거지는 아랫마을에 살았다.
흉년이 든 어느 날, 자기 마을에서 얻어먹기가 쉽지 않았던 두 거지는 저마다 길을 떠났다. 윗마을 남자거지는 아랫마을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랫마을 여자거지는 윗마을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들어 서로 얻어먹으러 나섰던 것이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연분이 있는 법, 도중에서 만난 두 거지는 부부가 됐다. 부부는 거지 짓을 그만 두고 힘을 합쳐 품팔이 나섰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

그러다 딸아이가 태어났다. 가뜩이나 가난한 데다 일가친족도 없는 부부는 아이 키울 걱정에 탄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정성을 들여 은그릇에 죽을 쑤어다 먹이고, 밥을 해다 먹이며 딸아이를 키워 주었다. 아이 이름은 은그릇으로 밥을 먹여 키웠다 해서 ‘은장아기’라 불렀다.

부부는 두 해를 넘기고 또 딸을 낳았다. 이번에도 마을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첫아이만큼 정성을 들이지는 않아 놋그릇에 밥을 해다 먹이며 키워 주었다. 그래서 둘째 딸 이름은 ‘놋장아기’라 불렀다.

또 딸이 태어났다. 역시 마을사람들이 도와주었지만 이번에는 나무바가지에 밥을 해다 먹여 키워 주었다. 그래서 셋째 딸은 ‘가믄(검은)장아기’라 부르게 됐다.

가믄장아기가 태어나 두 살이 되어가자 이상하게 운이 틔었다. 부부는 하는 일 마다 잘 돼 날마다 돈이 모아졌다. 밭을 사고 마소가 우글대고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풍경을 달고 살게 되었다. 가믄장아기를 낳은 뒤 잠깐 사이에 거부가 된 것이다.

부부는 거지생활을 하며 얻어먹던 지난날들과 품팔이로 연명하던 고생들을 남의 일처럼 잊어버리고 점점 오만해져갔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딸아이들은 어느새 열다섯 살이 넘어갔다.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날, 심심해진 부부는 딸들을 불러 앉혀 물었다.

 

“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호강하며 살고 있느냐?”
“아버님, 어머님 덕입니다.”
“아이구, 우리 큰 딸 기특하구나. 그럼 놋장아기야, 넌 누구 덕에 호강하며 살고 있느냐?”
“부모님 덕입니다.”
“그래, 우리 둘째딸 기특하구나. 자, 이번엔 우리 가믄장 아기는 누구 덕에 호강하며 살고 있느냐?”
“아버지 어머니 덕도 있지만, 하늘님, 땅님 덕이고, 내 배꼽 아래 선그믓 덕으로 먹고 삽니다.”

전혀 딴판으로 생각하는 가믄장아기의 대답에 부부는 기가 막혔다. 화를 벌컥 내며 소리 질렀다.
“이런 불효막심한 아이를 보았나?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버려라!”
벼락같은 호통에

가믄장아기는 입던 옷들과 얼마간의 양식을 검은 암소에 실어 집을 나섰다.

 


“어머니 아버지, 잘 살고 계십시오.”
막내딸이 괘씸하긴 했지만 막상 작별인사를 하며 떠나려 하자 섭섭해진 부부는 다시 불러들일

심산으로 맏딸에게 말했다.
“동생더러 식은 밥에 물 말아서라도 먹고 가라고 해라.”
은장아기는 가믄장아기를 부모마음을 눈치 채고 시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똑똑한 가믄장아기를 다시 불러들이면 부모의 사랑이 옮겨질 우려도 있고, 장차 재산을 

가르는 데도 이로울 게 하나도 없을 터였다.
은장아기는 노둣돌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가믄장아기야, 빨리 가거라! 아버지 어머니가 너 때리러 나오신다.”
고약한 언니의 속셈을 알고 있는 가믄장아기는 중얼거렸다.
“큰언니, 노둣돌 아래로 내려서거든 푸른 지네 몸으로 환생해 버리세요.”
노둣돌 아래로 내려선 은장아기는 푸른 지네가 되어 노둣돌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은장아기도 가믄장아기도 들어오지 않자 부부는 둘째딸을 불러 동생을 불러오라고 했다

놋장아기 역시 시기심이 우러나와 두엄 위에 올라서서 가믄장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믄장아기야, 어머니 아버지가 때리러 오니 빨리 가버려라!”
놋장아기의 고약한 마음씨를 아는 가믄장아기는 괘씸해하며 중얼거렸다.
“두엄 아래로 내려서면 버섯으로 환생해버려라.”

놋장아기가 두엄 아래로 내려서자 버섯이 되어 두엄에 뿌리를 박고 서버렸다.

방안에 앉아 기다리던 부부는 놋장아기마저 소식이 없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른 나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문틀 위에 눈이 부딪혀

봉사가 되고 말았다. 그날부터 부부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입고 쓸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재산만 축내다보니 부부는 다시 거지로 나서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집 쫓겨난 가믄장 아기의 새로운 삶

집을 나간 가믄장아기는 검은 암소에 옷과 쌀을 싣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이 고개 넘고 저 고개 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벌판을 지나노라니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간다.

“이 밤을 보내려면 인가가 있어야할 텐데….”
걸음을 한참 재촉하다보니 멀리 다 쓰러져 가는 초가가 하나 보였다.

 저녁노을을 등 뒤로 받으며 그 집으로 들어가 보니 머리가 허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었다. 

가믄장아기는 소를 매어 놓고 말했다.
“지나가는 행인인데, 하룻밤 머물고 가게 해주세요.”

노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에는 아들이 삼형제나 있어서 아가씨 잘 방이 없으니 어찌할까.”
가믄장아기는 부엌에라도 자게 해주라고 사정해 겨우 허락을 받았다. 

부엌에 들어가 조금 앉아 있으려니까, 바깥에서 와당탕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큰아들이 그리 요란하게 들어오는 것이

알고보니 아들 삼형제는 마를 캐다 파는 마퉁이였다.

큰아들은 부엌 쪽을 힐끗 보더니 고래고래 악을 썼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애쓰게 마 파다가 배부르게 먹이다 보니 지나가는 떠돌이 

아이 데려다가 노는구나!”

조금 있다가 둘째 아들도 와당탕 요란하게 들어오더니 한번 휘 둘러보고 욕을 해댔다.
조금 더 있으니 셋째 아들도 와당탕 들어오는데, 형들과 다른 소리를 했다.
“햐, 이거 우리 집에 난데없이 검은 암소며 사람이 들어왔구나. 하늘에서 도우려나 보네!”
가믄장아기는 부엌구석에 앉아 삼형제의 행동을 안 보는 척 살폈다. 

삼형제는 저마다 파 가지고 온 마를 삶아서 저녁으로 먹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먼저 태어나 오래 살면서 많이 먹었으니 이거나 먹어요.”
이렇게 말하며 대가리와 꼬리를 뚝뚝 꺾어 부모에게 주고 살이 많은 잔등이 쪽은 자신들이 

우걱우걱 먹는 것은 첫째와 둘째였다. 

셋째는 양쪽 끝을 꺾어 두고 살이 많은 잔등이 부분을 부모에게 드리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우리들 낳아서 키우려니 얼마나 공이 들었습니까. 앞으로 살면 몇 해나 살 겁니까?”

가믄장아기는 쓸만한 사람은 막내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믄장아기는 솥을 빌려 가져온 쌀로 밥을 지었다.
기름이 번지르르한 흰쌀밥을 떠서 한상 차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져가니, 조상대에도 

안 먹었던 것이라며 먹지 않는다.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벌레처럼 생긴 것을 어찌 

먹느냐며 화를 냈다. 셋째아들만 얼른 받아 맛있게 먹었다.
밤이 되자 가믄장아기는 혼자 자는 게 허전하고 무서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나하고 발맞추어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십시오.”
첫째도 둘째도 싫다고 했다. 셋째는 기뻐하며 가믄장아기에게 갔다. 꽃을 본 나비인지라, 

가믄장아기와 셋째아들은 그날 밤으로 부부가 됐다.
다음날 가믄장아기는 남편에게 마 파던 곳에 구경 가자며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판으로 나갔다.

첫째가 마를 파던 구덩이에 가보았더니 똥이 가득했다.
둘째가 파던 구덩이에는 지네와 뱀들이 우글거렸다.
마지막으로 셋째가 파던 구덩이에 가보았다. 자갈이라고 던져 쌓아놓은 것들을 주워서 

닦아보니 금빛 은빛이 번쩍거렸다. 가믄장아기와 셋째아들은 금덩이, 은덩이들을 검은 암소에 

실어다 팔아 논밭을 사고 마소를 늘려 큰 부자가 되었다.



부모 찾으러 거지잔치를 연 가믄장 아기

처마 높은 기와집에 풍경을 달고 많은 종을 거느리며 떵떵거리며 살게 되니, 가믄장아기는 

부모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자기가 집을 나온 뒤 봉사가 되고 결국 거지가 되어 얻어먹고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믄장아기는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부모를 찾아봐야겠다고 의논했다.

백일동안 거지잔치를 열면 가믄장아기의 부모도 그 안에 틀림없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잔치를 시작했다.소문이 꼬리를 물고 번져 날이 갈수록 많은 거지가 모여들었다. 가믄장아기는

찾아드는 거지들을 대접하면서 자신의 부모가 오나 꼼꼼히 살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흘러도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

백일째 되는 날 저녁 무렵, 막대기 하나를 같이 짚고 더듬더듬 들어오는 봉사거지부부가 

가믄장아기의 눈에 들어왔다. 부모가 틀림없었다. 가믄장아기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지만 곧 차분한 표정을 짓고 일군들을 불러 조용히 일렀다.
“저 거지 부부가 위쪽에 앉거든 아래쪽부터 밥을 주다가 떨어버리고, 아래쪽에 앉거든 

위쪽부터 밥을 주다가 떨어버리고, 가운데에 앉거든 양쪽 끝에서부터 주다가 떨어버려라.”

봉사거지부부는 빨리 얻어먹어보려고 위쪽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릇소리는 달각달각 나는데 자신들 차례는 오지 않았다. 

아래쪽으로 자리를 옮겨보고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날은 저물어버리고 잔치는 끝나는 분위기였다.
“휴~, 거지잔치도 복이 있어야 얻어먹는 모양이로구나. 그만 갑시다.”

봉사거지부부가 탄식하며 그냥 나가려하자 그때야 가믄장아기는 종을 시켜 부부를 사랑방으로 

모시게 했다. 그리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리고 귀한 약주로 대접을 했다. 

부부는 영문을 알 길이 없었지만 우선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어댔다.

잠시 후 가믄장아기가 말을 걸었다.
“듣고 본 옛말이나 좀 해보시지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살았던 말이나 해보시지요.”

부부는 옛날 이야기하듯 살아온 얘기를 풀어놓았다. 거지로 얻어먹고 다니다가 부부인연을

맺은 젊은 시절, 은장아기 놋장아기 가믄장아기를 낳고 거부가 되어 호강하던 시절,

가믄장아기를 내쫓고 다시 거지가 되어 얻어먹고 다니며 헤매는 신세타령….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던 가믄장아기는 약주를 잔이 넘치게 따라 부부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 술 한 잔 드세요. 천년주 만년주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가믄장아기입니다.”
“뭐, 뭐라고? 이게 무슨 소리냐!”
깜짝 놀란 부부가 술잔을 털렁 떨어뜨리는 순간, 눈이 팔롱하게 밝아졌다.

<참고문헌>
현용준(1976). 「제주도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