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그렇게 살지들 않는가
자다가 비 지나가는 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밤비 소리는 낮에 내리는 빗소리와는 또 다르다.
잠결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빗줄기 하나하나가 무슨 사연을 지닌 채 소곤소곤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밤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빗소리로 인해 숲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하늘은 구름을 떨치고 하루하루 높아간다.
날이 맑게 개어야 창을 바를 텐데, 궂은 날씨로 자꾸만 뒤로 미룬다.
바람기 없이 날씨가 화창한 날 창을 바르고 있으면 산중의
하루가 그지없이 풋풋하다.
이 산중에 들어와 산지 꼽아보니 어느덧 열두 해째가 된다.
세월 참 빠르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두 해째라니.
처음 이 오두막에 들어올 때는 무인지경에서 서너 철 살까 했는데
그렁저렁 지내다 보니 10년을 훌쩍 넘었다.
친지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또 어디서 사는지 궁금히 여기면서
‘유도신문’들을 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곳에서 그렇게 산다고 잘라 말한다.
‘그 곳에서 그렇게 산다’는 말처럼 직설적인 표현은 없을 듯싶다.
나 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서
그렇게 살지들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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