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은 제비꽃 답게 2.♣
9세기 중국의 선승으로 위산이란 분이 있었다.
그의 어록은 일찍부터 우리나라승가의 발심 수향자에게 교재로 쓰일 만큼 널리 알려졌다.
그의 문하에 키가 7척이나 되고 총명과 재주가 비상하게 뒤어난 향엄이란 학인이 있었다.
위산은 향엄이 큰 그릇임을 한눈에 알아보고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지금가지 보고 들은 것을 떠나서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해 보라."
향엄은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지면서 몇 마디 대답해 보았지만,스승은 모두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꺼내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고 들은 것을 젖쳐 놓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다시 위산 앞에 나아가 그르쳐 주기를 청한다.
그러나 위산은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내가 말 하는 것은 내 소견이지, 그게 너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는냐."
향엄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아, 가지고 있던 책을 다 불살라 버리고 홀로 수행한 끝에 본래 면목을 깨닫게 된다.
창백한 지식인,무기력한 지식인이라는 말을 우리들은 가끔 듣는다.
향엄은 곧 오늘의 우리다. 평소에는 온 세상을 주름잡듯 큰 소리를 떵떵치던그 지식인이 어떤 상황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비슬비슬 주저 않는다.
막상 그 행동이 요구될 때 그는 움추려들고 만다. 지식이 이런 것이라면 그게 뭐 대단하단 말인가.
그것이 인격과 별개인 것을 우리는 이런데서 찾아 낼수 있다.
따지고 쪼개는 분별에서는 지혜로운 행동이 나올 수 없다.용기 있고 바람직한 행동은 이론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작용은 신념에서만 나올수 있다.
그런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분별의 지식에서가 아니라 무분별의 지혜에서 저절로 우러난다.
그렇다면 인격을 이루는 근원적인 요소는 회색의 이론인지식이 아니라, 퍼내도 퍼내도샘솟듯 솟아나는 지혜다.
그러므로 지식이 지식 본래의 기능을 다 하려면 지혜로까지 깊어지고 승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을 형성하는 기초교육 기관을 학교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 학교교육의 맹점은지식 전달에만 안주 하고 있는 점이다.
교육이라는 어원을 살펴보면, 처넣는 것이 아니라 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의 중심은 지식을 전달하는데 있지 않고 지혜를 이끌어 내는데 있다.
요즘의 교육은 메마르고 차디찬 정보를 교환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서로의 인격이 교류될 수 없다.
옛날과는 달리 사제간의 길이 단절 되어 버린 것도 바로 이 점에 원인이 있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빫기를 주저했던 그 시절에는 스승이 그 만큼 절대적이고 존엄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식을 파는 일에 그친 오늘날의 관계는 마치 계약 노동자의 사이처럼 되었다.
한 학기에 얼마를 내고 몇 시간짜리 지식과 정보를 얻어 듣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기간 일지라도 비위에 거슬리면그림자의 실체까지도 밟고 올라선다.
이러한 마당에서 인간이 형성되기 때문에 냉혹한 사회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들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스승의 상을 곱아 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분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기억 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어서가 아니다.
크고 있는 우리에게 눈을 뜰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자극을 통해 우리 안에 접혀 있던 지혜의 날개가 펼쳐졌던 것이다.
그러한 스승의 상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들 자신을 조명 해주고 있다.
스승의 인격이 내 안에 녹아 들어와 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교육인가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와 같은 스승의 상을 통해 여실히 알수 있다.
지식이 지혜로 깊어지려면 거기에는 어떤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상을 객관화시켜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순수한 집중을 통해 생의 밀도 같은 것을 의식하는 일이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해 자각하는 일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와 같은 원초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부의 정보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속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우리들이 홀로 있다는 것은 온전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지나친 접촉으로 홀로 있는 시간을 거의 잃어 버린다.
백빽히 꽂혀 있는 밑에서 툭 트인 虛허를 익힐 필요가 있다
무심한 경지가,순수 의식의 상태가 아쉽다.
그러므로 홀로 있음은 보라빛 외로움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것은 당당한 인간 실존이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순수해진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궁리를 한다.
가장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깊은 것을 들여다 보고, 높은 곳에 눈을 주게 된다.
또한 사람이 홀로 있을때는죽음이라던가 비정상적인것을 헤아리게 된다.
저만치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본다.껍질에서 알맹이를 찾는다.
그래서 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진공묘유라는 말은 텅 빈 데에 오묘한 것이 있다는 듯이다.
텅 비우지 않고는 새것을 받아들릴 수도 없고, 자기 생명의 물을 고이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入此門內입차문내 莫存知解막존지해"라고 타이른다.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다시 말해 진리의 세계에 들어 올려면 시시콜콜하게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새 눈이 열릴 수 있다는 간절한 당부이다.
이와 같은 여과 과정을 통해 우리들은 자신의 무게와 존재 의미를 깨닫는다.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신하게 된다.그래서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자기 생명을 펼쳐갈수 있다
우리의 스스은 어디에 있는가? 본질적인 스승은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인간의 책임과 긍지가 있다.
외부의 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막론하고 나에게 다만 자극을 줄 뿐이다.
그것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받아들리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렇기 대문에 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일도 소중하지만,그것이 바른 것이 아닐 때는
선뜻 버리고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찾는 일보다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되풀이 되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한 인간의 생애는 유일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라는 말을 우리는 교과서와 그 밖의 지식에서 얻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시하게 살마 버릴 수가 없다.
아무렇게나 죽어 버릴 수가 없다.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일종의 연소 같은것, 남이 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훨훨 타서 재가 되는 것이다.
유일하고 존엄하다는 인간 존재가 오늘처럼 비인간화된 적이 일찍히 있었던가.
그저 범속한 동질화의 강물에 둥둥 떠서 획일의 바다로 끝없이 표류해 가고 있다.
우리가 동물이 아니고 인간인것은 回心회심 할 줄 아는데 그 무게가 있을 것이다.
그릇된 줄 알았을 때 선듯 고칠 수 있는 바로 그 점이다.
그리고 회심의 고비에서 눈을 뜬다.
언젠가 신문에서, 어떤 저명인사가 살기 졸다는 미국으로 아주 살러 가버렸는 기사를 읽고 같은 겨레의 입장에서
섭서하고 조금은 쾌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아주 가버린 줄 알았던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분이 돌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3등표를 가지고 1등칸에 않아 있는 기분이어서 더 견딜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회심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주위의 눈이 두려워 ,또는 체면 때문에 시들어 버리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 행위를 가르켜 경솔하다고 탓 할수도 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그는 자기 신념을 가지고 자기답게
살 줄 아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제비꽃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숨쉬고 있는 오늘의 시류는 제비꽃으로 하여금 자꾸 제비꽃답게 피지 못하도록 작용하는데 문제가 있다.
같은 품종의 꽃으로만 닮으라고 밤낮으로 보채대는 것이다.
우리들의 정원에 똑 같은 꽃만 핀다고 가정할 때,우리들에 손길과 눈은 저절로 멀어지고 말 것이다.
모든 꽃들이 그 꽃답게 피어날 때 그 꽃밭은 비로소 장엄한 교향악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사계절을 두고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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