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3.단순하고 간소한 삶-제비꽃은 제비꽃 답게1.

qhrwk 2022. 6. 21. 19:55

※소유하고 있는 것을 버리고 모든 속박에서 그대 자신을 해방시키라.
그리고 존재하라.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풍성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은 누기 만들어서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한 평생 수학이 좋아서 그것만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수학자가 있다.
그는 숫자에서 미의식 같은 것을 느낄 정도로 그길에는 통달한 사람이다.
연구실에서 풀리지 안던 문제가 산을 오르거나 바닷가를 산책하는 무심한 여가에 문득 풀리는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그는 가끔 동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자네는 지겹지도 않아서 평생을 두고 수학만을 그렇게 연구 하는가?
자네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인류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그 수학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제비곷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제비꽃이 피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

그건 제비꽃이 알 바가 아니라네."


어떻게 들으면 아주 오만한 소리로 들리지만,그의 대답은 그만큼 자신과 신념에 넘쳐 있다.

그 꽃이 그 꽃답게만 핀다면 한두 송이를 피어 가지고도 봄의 온 들녘을 술렁거리게 할수 있다.
그러나 만일 제비꽃이 제비꽃답게 피지 못하고 개나리처럼 핀다거나 또는 벗꽃처럼 핀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봐

줄수 없는 꼴물견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제비꽃만의 이변이 아니라 봄의 비극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기 빛깔을 지니고 살기가 정말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개인의 신념이나 개성이 둘레로부터 도전을 받는다기 보다는 차라리 화살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도도히 흐르는

회일의 강물에 휩쓰려 끝없이 표류해야 할 운명이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보면,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한때는 무관의 제왕이라고 제법 뽐내던 신문을 비롯해, 그 사촌격인 주간지와 라디오,텔레비젼의 대중매체들이

우리들에게 획일적인 속물이 되어 달라고 몹시도 보채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빛깔을 배앗고 얼을 앗아간다.

사고의 힘과 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흐려 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마약같은 힘을 가지고 그 안에서만 허우적거리게 한다.따라서 맹목적이고 범속한 추종은 있어도

자기 신념을 갖는 것은 어렵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들은 서로 닳아간다. 

 

이쯤 되면 고유 명사는 차라니 거추장스럽다.
보통 명사로써 우리들의 호칭을 대신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평범한 일상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 생명의 전개,다시 말해 창조적인 활동을 원한다. 모험과 위헌을 무릅 쓰고라도 자기답게 살고자 한다.

그것은 생명의 욕구이다.

단 하나 뿐인 목숨도 희생해 가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일까? 

물론 우리는 산을 보고 산을 오른다.
그러나 산이 불러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산을 오르고 싶은 욕구가 솟아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힘, 그것이 곧 살아 있는 생명력이다.

우리들의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들과 함게 얽혀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를 

모르고는 제대로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더기로 공포 발효된 새 법의 조문을 외워 두어야 하고, 지식과 정보를 배당 받으려고 비싼값을

치르면서 , 비인간적인 경쟁을  수 없이 겪으면서 좁은 문을 뚫고 모여든다.

이건 누구나 느낌직한 일이지만, 나는 서점에 들을 때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많은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다 소화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기가 질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중 몇장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갑자기 작아진다. 

그리고 조금 우울하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는 얼마마한 지식이 필요할까.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수록 좋을것 같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유용하게 쓰이고 대우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따른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여러가지 지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지식이 인간을 그 속에 파묻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본래부터 따지기를 좋아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식인은 더욱 분별하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이유가 많은 동물이어서 단순 소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이 말은 복잡하게 분별하고 있느냐의 뜻이다.

그와 같은 외부의 지식에만 의존할 때 우리는 자기 언어와 사유를 박탈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접촉이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많아서 인간적으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는 나그네가 된다.

파우스트의 비유를 들출 것도 없이, 회색의 이론에 묻혀 생명의 나무가 시들고 있다.

그럼 안다는 것이 인간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 것인까.
지식이 인간을 형성하는본질적인요소가 될수 있을까. 

산스크리트어의 지식은 인식을 가리키는 말이다.어원으로 보면 아는 것을 쪼갠것, 즉 분별의 지식이다.

그래서 이것을 분별지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이 분별지는 인격과 직접 관계가 없다.

그저 아는 것만을 뜻 할 뿐이다.

일찍부터 옛스승들은 이와 같은 지식을'분별망상'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대신 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지의 세계를 추구하고, 또한 거기에 도달하려고 애썼다.


여기서 말 하고 있는 무분별이란,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허둥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쪼개고 하는 분별 망상을 초월한 경지를 뜻한다.지혜는,아는 것을'가설한다.' '통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혜를 무분별지라고도 한다.

이 지혜는 인격과 직결된 것이므로 거기에는 행동과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의지 해야 할 것은 사변인 지식이 아니라 끝없는 빛,즉 지혜라고 불교 경전에서는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