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밖에서 살다 ♣
삼복더위에 별고 없는가. 더위에 지치지나 않았는가.더위를 원망하지 말라.
무더운 여름이 있기 때문에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그 가을 바람 속에서 이삭이 여물고 과일에 단맛이 든다
이런 계절의 순환이 없다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제대로 삶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니 날씨가 무덥다고 해서짜증낼 일이 아니다.
한반도와 같이 봄,여름,가을, 겨울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는 지역에서 살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복이라 할 수 있다.
7월 한 달은 나는 바깥출입 없이 산중에만 눌러 않아 지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서 새롭게 살아 보고자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집회의 약속을 이행 못하게 된 연유로 해서 모처럼 틀에서 벗어난 생활을 갖게 되었다.
때 마침 건전지가 다 소모되어 시계도 멋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바로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이 시계를 발명한 이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여 사회생활에 여러가지로 보탬이 된 것은 지난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 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시계에 의존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야 하는 페단도 있다.
먹고 싶지 않아도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먹게 되고,잠이 오지 않는데도 잠자리에 들게 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우리들은시계바늘에 조종당하면서 삶을 이루고 있다.
시계가 맞고 시감을 알리는 라다오의 기능이 쉬게 되자,
나는 비로서 시간 밖에서 살수 있었다.
배가 고파야만 끼니를 챙기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 후에라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시계바늘이 지시하는 시간 말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태평해졌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비로서 자주적인 삶에 한 걸은 다가선 기분 이었다.
도리켜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뒤면서 부질없이 살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시계에 대한 최초의 경험은 불안이었다. 어린시절, 나는 고모네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고모가 잘 해주어 몹시 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빈 방에서 혼자 놀다보면 벽시계의 '똑닥똑닥' 시계추 소리가 몹시 불안하게 들려 오곤 했다.
맛있는 음식을 놓아둔 채 나는 슬그머니 고모네 집을 빠져 나와야 했다.
아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고모는 걱정이 되어 우리집에 와서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갔다.
요즘은 하나 뿐이지만 불일암에서 살 때만 해도 방마다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말 하자면 시계의 노예 노릇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째각째각' 소리가 나는 시계는 산아래로 내려 보냈다.
손님으로 가서 객실에 묵을때도 벽시계가 됐건 탁상시계가 됐건 째각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시계추를 멎게 하거나
건전지를 빼두는 것이 나그네의 습관처럼 되었다. 물론 객실에서 나올때는 원래대로 살려 놓고 나온다.
손목에 수갑처럼 차는 것이 싫어서 손목시계를 한사코 멀리 해 오다가,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부터 외출 할때만
할수 없이 차게 됐다.
그러니 시간의 노예임을 스스로 표시하고 다니는 꼴이다.
내가 송광사에서 수련회를 주관 할때는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시계를 풀어 보관하게 했다.
모처럼 시한부 출가 생활을 하는 수련생들에게 시계의 굴래와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나도록 하고자 해서였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 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가.
아직도 몇분이 남았다고 하면서, 또는 시간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하면서 일 없이 아까눈 시간을 쏟아 버린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은남들과 똑같은 24시간을 살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을 안 것이다.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 말로 시간 밖에서 살수 있다.
요즘같은 산업 사회에서는우리들 자신도 시간앞에 점점 냉혹해져 가고 야박하게 전락되어 간다.
한참 일을 하다가도 시간이 다 됬다고 일손을 놓아버리기가 일쑤다.
묻힌김에 조금만 더 하면 개끗이 끝낼일도 시계를 보고 일손을 중단하고 만다.
이건 시계의 노예로 익힌 나쁜 근성이다. 시계바늘이 미치지 않는 일터에서 인간의 덕이 두터워진다는 노동의 비밀도
터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그 시간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나 시계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서건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세상살이에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노인은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좀더 기다려 보라고
일러준다.
한 고비가 지나면 좋은 일이 됐건 언잖은 일이 됐건안팍의 사정이 달라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풍진 세상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의 비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 할수 없는 문제를 시간은 가끔 해결해 주는 수가 있다.
그래서 참는 것이 덕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우선 하룻밤 푹 자고 나서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조급히 해결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 한 걸음 물러 나서 조용히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시간 밖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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