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반에 프러시아를 통치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는 어떠한 공식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뚱뚱하고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경호원 한 명도 거느리지 않고 베를린 길거리를 걷다가 누군가 그를 불쾌하게
만들면-그는 쉽게 불쾌함을 느끼는 타입이었다-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지팡이를 곤봉 삼아 휘두르곤 했다.
왕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니!
호기심을 느끼는 것도 이젠 지쳤는지, 베를린 사람들은 멀리서 황제가 보이면 조용히 인근으로 피했다.
길은 모두 텅 비었다. 황제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 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피해버렸다.
한 번은 빌헬름 황제가 길을 걷다가 한 시민이 그를 보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건물 입구로 조용히 피하려다가 황제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자네, 지금 어딜 가고 있나?”
시민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폐하”
“거기가 자네 집인가?”
“아닙니다, 페하.”
“친구의 집인가?”
“아닙니다, 폐하.”
“그럼 왜 그리고 들어가고 있었나?”
빈집털이로 붙잡힐까봐 두려워진 그 불쌍한 시민은 마침내 이실직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은 황제를 피하려고 그런 겁니다, 폐하.”
빌헬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를 피하려고? 왜지?”
“폐하가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폐하.”
빌헬름 황제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고, 황제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대들은 나를 두려워하면 안 되네!
나를 사랑해야 마땅하지! 나를 사랑하라, 이놈들아! 나를 사랑하란 말이다!”
어떻게 사랑을 억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은 의무가 될 수 없다.
마땅히 사랑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을 하도록 명령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억지로 사랑하도록 시킬 수는 없다.
사랑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고, 사랑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사랑에 대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사랑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신성처럼 드문 일이다.
신성은 사랑이고 사랑은 신성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사랑을 향해 열려있다면, 신성에 대해서도 열려있게 될 것이다.
그 둘은 동일하다.
사랑은 시작이고 신성은 끝이다.
사랑은 신성한 사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사랑의 길, 가슴의 길은 그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우주 전체가 알아서 돌봐줄 것이다.
부디 이완하라.
존재계 전체가 그대를 보살펴줄 것이다.
오쇼의 <사랑의 연금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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