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절♣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안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시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법정은 흔들림 없이 준비해온 법문을 읽었다.1997년 12월14일. 법정의 창건법문은 길상사의 문을 열었다.
길상사는 1930년대 조선시단의 촉망받는 천재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김영한 씨의 시주로 창건됐다.
개원식에서 김영한 씨는 시종 감격에 떨리는목소리로 인사말을 했다.
"저는 배운 것이 많지 않고 죄가 많아 아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년에 귀한 인연으로 제가 일군 이 터에 절이 들어서고 마음속에 부처를 모시게 돼서 한 없이 기쁨니다.
저의 남은 한은 이 절의 종을 힘껏 치고 싶을 분입니다."
법정은 그에게 염주 한 벌을 선물했다. 그녀는 평범한 염주 한 벌을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길상사 창건은 말이 많았다.길상사의 부지는 김영한 씨가 갖고 있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기도 하지만 워낙
고가의 땅이었다.
땅의 용도도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김영한 씨는 시인백석의 연인이기도 했지만 삯바느질로 다섯 자녀를 먹여
살리는 홀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다 못해 권번에 들어가 가무의 명인으로 장한 한량들의 애를 태우던
「사교계의 꽃」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직접 요정을 열었다. 다시 말 하자면 길상사는부자동네에 있던 요정에 세워진 것이다.
김영한 씨가 법정에게 시주하기로 대원각을 시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0년전 그러니까 1987년이었다.
"스님이라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법정은 그러나 '무소유'의 수행질서를 내세우며
한사코 사양하다 1996년 "이것도 시절 인연이니 할 수 없다."며 시주를 받아 들이기로 결심했다.
길상사의 개원에는 김수환 추기경도 참석했다.
법정과 인연이 깊은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의 건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도
"법정 스님은 우리 신부들과 수녀님들도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주일 미사가 있는 날이지만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자신의 뜻도 같음을 말했다. 이에 답으로 이듬해 2월 명동성당을 찾아 연사로 나서 자비의
법문을 읽었다.
법정은 후일 길상의 창건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 한 시주의 갸륵한 뜻으로 길상사를 세워 개원 하던날, 나는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절과 교회가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절만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청정한 도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석에서 몇 차레 밝힌 바 있듯이, 내 자신은
시주의 뜻을 받아들여 절을 일의키는 일로써 할 일은 끝난 것이다.
운영은 이 절에 몸담아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절을 세우는 데에 함께 동참한 크고 작은 시주들에게 나는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에서 기꺼이 참여한 시주의 공덕은 이 도량이
존속하는 한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기회에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절은 어떤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종단의
공유물이라는 사실이다."
법정의 말처럼 절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고,더더군다나 절은 무소유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는 법정 스님의 것도
아니었다.
흙탕물에서도 연꽃은 피고,요정이었던 곳에도 길상사는 창건되었다.
이러한 정신이 수천 년을 이어온 불교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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