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무소유 삶 4.무소유,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기침으로 여는 새벽

qhrwk 2022. 7. 7. 07:36

 

"스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까."
21세기가 시작되자 방송사의 한 기자가 법정에게 물었다.

법정은 무심히 대답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지 미래에 대한 관심은 없소."
법정은 이어서 말을 붙였다.

"저는 솔직히 내일과 미래에 대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계획도 없습니다.그저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이것은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 같이 말해온
 진리이지요,"

법정은 돌아서며 속으로 되뇌였다.

'과거를 다라가비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피고 익히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법정은 여전히 강원도 오두막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홀로 정진하며 세속에 있는 인간사에 대해 여전히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둠이 내리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리면 상념은 잦아 들었다.

천지간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잠들어 있었다. 

적막강산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결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의식 하지 않은채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법정은 자신의 기침소리에 종종 잠에서 깼다.

법정은 기침과 더 싸우지 않고 머리맡에 벗어 놓은 누더기를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 기침이 한 밤중에 자신을 깨운 까닭을 해아렸다.

"한낮의 좌정보다 자다가 깬 한밤중의 이 좌정을 나는 즐기고자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않고 개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기침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맑은 정신이 든다.
중천에 떠 있는 달처럼 내 둘레를 두루두루 비쳐주고 있다.
" 창문에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창문을 열었을 때 달빛도 희고 눈도 희고 온천지가 흰것을 보며 법정은

따뜻함을 느꼈다.

이른 아침 눈을 치우기 위해 밖에 나가 눈 위에 토끼 고라니 발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볼때도 그의 가슴은 따뜻해졌다.

그러나 그뿐,그의 천식은 사라질 줄 모르고 계속 그를 괴롭혔다.
법정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오래전 일이었다.

그의 작품중 『미리 쓰는 유서』는 아득히 먼 1971년에 쓴 것이었다.

그의 세속 나이 마흔이 되기도 전이었다.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쏘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 가고 있다는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시할 때, 사는 일은 곧

죽은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선뜻 털고 일서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훌쩍 지나간 1992년 가을에는 이렇게 술회 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곳에 와 지내면서 세삼스레 죽음에 대해서 가끔 생각합니다. 죽음은 삶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연소요, 소모이므로 순간순간 죽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다음생의 시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나는,평소부터 죽음의 의례적인  번거로운 의식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강조했다.
"할 수 있다면 여럿이 사는 절에서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이웃들에게 내 벗어 버린 껍데기로 인해 펴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절에서 행해진 번거로운 검은 의식을 목격하면서  결심한바 입니다.

나는 살만큼 살다가 심지가 다 하게 되면 아무도 없는데서 내 별 한데나 알리고 자취없이 증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 어느 날에는 생각이 내킨 김에 내 죽음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
 '남기는 말'을 맑은 정신으로 미리 써 두었습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은 마치 예견이라도 한듯 1999년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일을 마쳤으니 한숨 쉬기로 했다. 내가 살만큼 살다가 숨이 멎어 굳어지면 이 침상채로옮겨다가 화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무도 없는데서 제발 조용히,벗어 버린 껍데기를 지체 없이 없애 주었으면 좋겠다."

산에서의 일상은 그에게 늘 죽음을 떠올리게 했지만 칠십노구를 이끌고 그는 계속 정진했다.

그에게 정진은 일 그 자체였다.여름철이 다가오면 입을 옷가지에 풀을 먹여 다렸다.

창 바르고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이런 일이 곧 마음 닦는 수행이고 중노릇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도를 마음밖에서 찾지 말라는 옛 스승들을 떠 올렸다.

그리고 이맘때쯤 그는 하루에 식사를 두끼만 먹기 시작했다.
아침,점심은 챙기고 오후에는 먹지 않았다. 목이 마르면 생수를 마시거나 차를 마실 뿐이다. 하

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친구를 만났다.

소로우의 『윌든』과 허균의 『한정록』과아메리카 인디언들,그리고 사막의 교부들의 조주 선사가 그의 밤 친구들이

되어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을 기울리고 있으면, 청랭한 개울 물소리를 들을 때처럼 법정은 속이

풀리면서 생각의 실마리가 풀렸다.
그리고 다시 평생동안 해왔던 것처럼 만년필을 들어 원고지를 메웠다.
밤 눈이 소리 없이 그의 오두막을 덮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내던 중 어느날 친구가 찾아왔다. 불일암 시절과는 다르게 오두막 시절 법정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자들에게 조차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지들은 넌지시 묻기도 했지만그는 '그곳에서 산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를 찾아오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두막을 같이 고쳐주고 그의 생활을 도와 주는 일꾼들뿐이었다.

이날 찾아온 사람도 일꾼인 김서방이었다..

그는 법정에게 눈이 너무와서 걱정이 되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의 배낭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가득했다.

소식이 그것뿐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김서방은 전날 뉴스에서 정채봉 씨가 이 세상을 떠났음을 들었다며 법정에게 알렸다.
법정은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산을 내랴갔다. 영안실에 들어서자 사람은 어디가고 사진만 영단에 올려져 있었다.

허무했다.

법정은 전채봉 작가와 출판사샌터사의 지원으로 만나 35년이 넘도록 가까이 지냈던 친지였다.

그런 친지를 잃었던 것이다."그대는 지근 어느 곳에 있는가.
정채봉님은 아주 죽은게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이다.
한때 머물던 육체를 떠나 자신의 틀에 알맞는 새로운 몸을 갖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이 몸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이 몸을 지닌 것이므로,이몸이 제 할 일을 다 했을 때 낡은 옷을 벗어

버리듯 한쪽에 벗 놓는다.
그는 때가 되면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법정은 세상을 떠난 정채봉을 위로하고 또한 그 자신을 위로했지만 친지가 떠난 허허함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 이른봄,스님에게 날아든 정채봉의 소포와 편지를 떠올렸다.
 「스님,생신 축하 올립니다.오늘이 있어 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 참으로 저에게도 뜻있는 날입니다. 저를 길러 주신 

할머니께서는 늘 절 구경을 다니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몰래 한푼두푼 모은 돈이 여비가 될 만하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가 털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때의 제 속임수란
" 할머니, 제가 이 다음에 돈 벌어 절에 모시고 갈께요."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제 손으로 월급을 받아오기 훨씬 전에 저쪽별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한데는 내복을 사드릴 어머님도,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스님의 생신에(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수 없는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짚어 주시리라 믿습니다.스님께서는
 제 혼의 양식을 대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스님!」

그날 법정은 봄볕이 들어 온 앞마루에 않아 이 사연을 두 번 읽었다. 

함께 부쳐온 봄내의를 매만지면서 대숲머리로 울긋불긋 넘어다 보이는 앞산의 진달래에 묵묵히 눈길을 보냈다.

법정은 입산 출가 이래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기억한 적도, 생일 축하를 받아 본 적도 없었다. 

그것은 출가 수행자에게 어룰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정이 정채봉 작가를 아낀 이유는 그가 한참이나 어린 동생이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받은 외동아들이라는 

공통된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채봉이 자신의 과거사를 말할 때마다 법정은 자신이 두고 온 속세의 삶을 떠 올리며 정채봉의 아름다운 심성을 사랑했다.
정채봉이 떠나간후 법정은 더 잦게 기침으로 새벽을 열었다.
2001년을 여는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