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에필로그 무 소유의 행복

qhrwk 2022. 7. 15. 07:11

"스님 불들어 갑니다.!"
한 스님이 불을 놓으며 외쳤다.
"스님 뜨거워요 빨리 나오세요!"
어떤 여인이 그의 헌옷에 대고 소리쳤다. 법정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이이 그의 영혼은 헌옷을 벗어 던지고 떠나간 걸까.
사람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노보살도 울었고,구경꾼도 울었고 스님들도 울었다.
지난 3월13일송광사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길상사에서 운구해온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있는 날이었다.

누군가는 안동에서 불편한 다리를 끌고 도착했고,누군가는 약까지 챙겨 겨우겨우 도착했다.

직장도 내 팽개치고 밤기차를 타고 내려온청년도 있었다.
끊이지 않는 행렬이 모두 도착하기도 전에'그저 헌옷'이라던 그의 육신은 제자들의 손에 의해 나무제단 위에 안치됬다.

그저 헌 덩마같은 천으로 덮혀 있을뿐인 그의 매마른 육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가진 것 없음이,그의 약속이 훤히 보였다.

봄이다 법정 스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봄이다. 

허긴 법정 스님이 싫어했던 계절이 있었던가.봄엔 생명이 움터서,여름엔 신록이 우거져 좋아했다.

청명한 바람이 불어 오는 가을이 오면 길 떠나기 편해 좋아했다.겨울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방안 가득 텅 빈 충만을

풀어 놓았다.그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 어떤 것도 소유하기를 거부 했지만 모든 것을사랑했고 살아 있는 모든 것

행복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 3월,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투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라고,모든 고민과 걱정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스님이 더나서 일까.유난히 올 3월엔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분다.

어느날 나라를 빼앗긴 희망을 찾아 볼수 없는 땅에 사람이 태어났다. 

손 귀한 집에 아들로 태어난 그는해방과 분단을 뒤로 하고 산에 올랐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어려운 문자로 나열된,그저 국보일 뿐이었던 법전을 해석해 쉬운 한글로 풀어
국민들에게부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그러면서도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글을 풀어 내기 시작했다.

고단한 너무도 고단한 인생살이,강압적인 권력 앞에서 늘 시들했던 우리들은 그의 글에 같이 분노하고,사랑하고 위안을
받았다. 또한 홀로 사는 그의 인생살이를 보며 우리도, 우리땅에도 해맑은 정신이 있음을 안도했다.

그의 상식적이지 못한 정치권력 앞에서 당당히 맞섰고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는용기를 불어넣었다. 

세상살이가 역겨워 깊은 산사,깊은 오두막으로 들어갔지만 언제나 세상에 나올 땐 이전보다 더 뜨거운 말을 

글칸에 담았다.

그러기를 55년 그가 풀어낸 책은 쌓여 갔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던가.
우리의 세상은 그가 꿈꾼세상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죽음이 없으면 삶은 무의 합니다. 죽음이 싫다면 살 줄 아십시요,육신은 헌옷']

''항상깨어 있는채로 정진하십시요."
방송에서 자주 들었던 진행자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스님이 생전에 남겼던 말을 나직히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은 흐느끼고 통곡하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어떤 만화가는 밤새 달려와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그의 도화지메 법정 스님의 모습은 없었다.그를 태우던 불꽃도 없었다. 
그저 텅빈 공간만이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을 뿐이다.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베스트셀러 작가,번역가,시민운동가,철학자...그어던 낱말로도 설명 불가능한 한 스님과의 해어짐 속에
우리는 그저 두려움을느낄 수밖에 없다.

법정 스님의 글<두려워 하지 말라>를 인용해 보자.
"한 순례자가 순례의 길에서 흑사병(페스트)과 마주치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가는 길이요."

몇칠 뒤 순례자응 되돌아오는 흑사병을 보고 그에게 따졌다.
"너는 일전에 나한데 바그다드로 5천명을 줄이러 간다고 했는데 어째서 3만명이나
무고한 생명을 죽였느냐?"

이때 흑사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내가 말한대로 5천명만 죽였소. 

그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자기네들 스스로가 죽은 것이요."
마음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이어주는 법칙은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걱정과 근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늘 걱정 근심거리만 생긴다.
그러나 희망에 넘치고 신념에 차 있는 마음은 희망과 신념에찬 우주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끌어 들린다.

비관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낙관과 희망은 건전한 삶에 이르는 재기의 톨로다. 

어떤 상황아래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끝없는 시도요 실험이 아닌가. 

근심 걱정을 미리 가불해 쓰지 말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도 봄은 움튼다.

화면을 통해 타오르는 텅 빈 시간을 앞으로 무엇으로 채울지
그저 넋 놓고 있었을 뿐이다.

다비식을 지켜 보던 누군가의 말처럼 스님은 떠나지 않고 어딘가에 계실까
그래서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실까. 

그저 빈 공간을 보며 우리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볼 뿐이다.

우리의 진몀목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임일 것이다.

스님은 그토록 좋아 하셨던 숲의 나무로, 혹은 연꽃으로 환생하셨으면 한다.
스님의 고단한 삶을 돌아볼 때 사람 많은 곳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시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다.

그리고 스님에게 어린 시절 열차 안에서 목숨을 빌린 값은 갚지 않겠다.
부모의 은혜,스승의 은혜, 또 누군가의 은혜 갚기에는 빚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님이 없는 빈 공간이 너무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