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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그런 길은 없다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그런 길은 없다 장마가 오기 전에 서둘러 해야 할 일로 나는 요즘 바쁘다. 오두막 둘레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고, 고추밭에 김도 매야 한다. 장마철에 지필 땔감도 비에 젖지 않도록 미리 추녀 밑에 들이고, 폭우가 내리더라도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여기저기 도랑을 친다. 산중에 살면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이나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지낼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일이 많다. 여럿이 할 일을 혼자서 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일이 끝이 없다. 산그늘이 내릴 무렵, 하루일을 마치고 개울물에 씻고 나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한참을 쉬었다.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무소유(법정) 2022.01.23

오두막 편지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가난을 건너는 법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가난을 건너는 법 얼어붙은 산골에도 봄기운이 조금씩 번지고 있다. 응달과 골짜기는 아직도 얼어붙어 있지만, 한낮으로 비치는 햇살과 바람결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두어 자 높이로 지붕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 내리는 낙숫물 소리에 문득 봄의 입김을 느낄 수 있다. 지난 겨울부터 산 아래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기름 보일러를 장작이나 연탄 보일러로 개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은 산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어제 장터에서 만난 김씨 보일러를 고치고 나니 기름값에 쫓기던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하면서, 장작 타는 냄새에 옛 정취를 느끼게 되더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시련은,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고갈되고 탕진된 민족의 에너지를 재..

무소유(법정) 2022.01.23

오두막 편지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거리의 스승들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거리의 스승들 오두막 둘레에는 5월 하순인 요즘에야 철쭉이 한창이다. 창호에 아련히 비쳐드는 분홍빛이 마치 밖에 꽃등이라도 밝혀 놓은 것 같다. 철쭉이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검은 등 뻐꾸기가 찾아온다. 네 박자로 우는 그 새소리를 듣고 고랭지의 모란도 살며시 문을 연다. 야지에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 모란이 6월의 문턱에서 피기 시작한다. 그 빛깔이 어찌나 투명하고 여린지 가까이 다가서기가 조심스럽다. 어제는 산 너머 장에서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고추와 가지와 오이와 케일, 방울토마토도 세 그루 심었다. 그리고 호박 모종을 여덟 구덩이 심고 남은 이랑에 고소씨도 뿌렸다. 며칠 동안 개울물을 길어다 목을 축여주면 모종들은 꼿꼿이 일어설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제..

무소유(법정) 20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