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말씀을 책으로 엮으며 내가 처음 법정 스님을 뵙기 위해 송광사 뒷산 불일암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고요한 한낮, 우거진 나무들 사이를 지나 그곳에 도착하니 스님은 출타 중이고 안 계셨다. 나는 서너 시간을 주인 없는 불일암 뜰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차츰 어떤 평온함 같은 것이 내 안에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없는 빈터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료한 일이다. 나는 그냥 떠나갈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무료함 대신 이상하게도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장소가 가진 어떤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떤 집이나 방은 그 주인의 내면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집과 방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방식의 삶을 사는가의 적나라한 드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