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qhrwk 2022. 1. 31. 19:57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애착이다

그 애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뱀이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이 세상[此岸]도

저 세상[彼岸] 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연못에 핀 연꽃을 물 속에 들어가 꺾듯이 애욕을 말끔히 끊어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넘쳐흐르는 애착의 물줄기를 남김없이 말렵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거센 격류가 연약한 갈대의 둑을 무너뜨리듯이 교만한 생각을 남김없이 없애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무화과나무 숲에서는꽃을 찾아도 볼 수 없듯이모든 존재 속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아는

수행자는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안으로 성내는 일 없고밖으로 세상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잡념을 남김없이 불살라 없애고 마음이 잘 다듬어진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 망상을 모조리 끊어버린 수행자는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고 아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고 알아

탐욕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고 알아 애욕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고 알아 미움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너무 빨리 대닫거나 느리지도 않고'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고 알아헤매임[迷安]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나쁜 버릇이 조금도 없고악의 뿌리를 뽑아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할 인연이 되는그 번뇌에서 생기는 것을 조금도 간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애착이다그 애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리고번뇌가 없고 의혹을 뛰어넘어 괴로움이 없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다섯 가지 덮개[五蓋] 탐욕, 분노, 우울, 들뜸, 의심 등을 말한다.

 

★강론

 

비본질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라

 

경전은 원래 소리내어 외우도록 [口誦] 편찬되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외우면, 그 울림이 영혼에까지 메아리친다.

후렴처럼 되풀이 되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이런 구절을 눈으로 스치고 말면 그저 지루한 되풀이일 뿐이다.

성급하고 조급한 현대의 우리들은 이런 반복의 의미를 모르고 지겹게 여긴 나머지 건너뛰려고 한다.

 

그러나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듯 소리내어 외우고 있으면,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마음속에 거듭거듭 새기는 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무 뜻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되풀이해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들 일상적인 삶의 여건은 거의 비슷비슷한 되풀이다.

 

그러나 그 되풀이 속에서 심화深化가 이루어져야 평범한 삶에 생기가 돈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오늘로서 새날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는 말은 현실과 이상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집착일지라도 그것은 괴로움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 않고"는 지나친 과열이나 게으름을 경계한 말이다.

여기 수행자를 출가한 수행승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오늘 우리들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은 그 어디에도 메이지 않을 때 거리낌없는  불성佛性이 눈을 뜬다.

우리를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바로 애착이라는 이 가르침은 두고두고 새겨둘 말씀이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비본질적인 삶의 틀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야 한다.

 

침묵의 성자로 알려진 인도의 요가 수행자 바바 하리 다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한 성자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숲 속에서 홀로 살았다.

어느 날 다른 성자 한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바가바드 기타》(힌두교 성전) 한 권을 주고 갔다.

성자는 날마다 그 책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쥐가 책을 쏠아버린 것을 보고,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게 되었다.고양이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해지자 이번에는 젖소를 키웠다.

이렇게 되자 그는 이 짐승들을 혼자서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던 끝에 젖소를 돌봐줄 여자를  한 사람 구했다.

숲 속에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커다란 집과 아내와 두 아이와 고양이 떼와 젖소들과

여러 잡다한 것들이 마련되었다.

 

그러자 성자는 걱정이 되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혼자서 살 때,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돌이켜보았다.

이제 그는 신을 생각하는 대신 아내와 자식들과 젖소와 고양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권의 책이 이토록 엉뚱한 사태를 몰고온 것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지었다.

 

이 이야기 우리에게 일러주는 바가 많다.

하나의 소유물이 여거 가지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경전을 법문으로 대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시들지 않는 삶의 교훈을

얼마든지 캐낼 수 있다.그 성자는 경전을 입으로만 외우고, 살아 있는 교훈으로

받아들일 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자초 한 것이다.

 

모든 경전은 읽고 외우면서 그런 정신으로 살라고 말해놓은 것이고,

또한 엮어서 옮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경전은 책장에 꽂아두거나 선반에

모셔놓기만 한다면 그것은 한낱 소유의 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는 잡다한 짐이다.   잡다한 짐에서는 빛이 발하지 않는다.

 

이 땅의 불교도들은 경전을 가까이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멀리하고 있다.

물론 경전 자체가 지닌 이해하기 어려운 점과, 미숙한 번역에서 오는 거부감에도 그 까닭이 없지

않겠지만,무엇보다도 지적인 욕구와 탐구력이 모자라는 데 그 첫째 요인이 있을 것 같다.

용한 관상쟁이나 쪽집게처럼 꼭꼭 집어낸다는 점쟁이한테는 불원 천리하고 달려가면서도,

바로 집 안에 있는 성인의 가르침에는 등을 돌리는 것이다.

경전에서 단 한두 마디라도 번쩍 눈을 뜨게 해주는 교훈을 얻어들을 수 있다면 ,

그것은 평생을 두고 살아가는 데 길잡이가 될 것이다.

 

경전을 단순한 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면 귓속의 귀에 울려오는 성인의 말씀으로 대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법보法寶 가 된다.종이로 된 책은 쥐도 쏠고, 불에 타고, 물에 젖어 없어질 수

있지만,법문은 그 무엇으로도  망가뜨릴 수 없는 영원한 빛이다.

그 빛을 가까이하면 우리들 눈이 밝아지고 세상이 밝게 열린다.

경전을 가까이하라,  그래서 새로운 삶을 이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