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지식을 토해내라

qhrwk 2022. 2. 13. 09:49


지식을 토해내라

‘순진무구함’은 문이다. 
‘순진무구함’이라는 문을 통해서 그대는 ‘아름다움’으로 들어간다.
그대가 순진무구할수록, 존재계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대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존재계는 더욱 추해진다.
그대는 지식의 삶, 결론을 내리는 삶을 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는 순간, 모든 아름다운 시는 짓밟힌다.

그대가 아는 순간, 자신이 안다고 여기는 순간, 그대는 자기 자신과 존재계 사이에
장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왜곡된다.
그러면 그대는 자신의 귀로 듣지 않고 해석하게 된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판단하게 된다.

자신의 가슴으로 경험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존재계와 즉흥적이고 친밀하게 만날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대는 존재계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원죄이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지혜의 나무로부터 열매를 먹었던 성경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지혜의 열매를 먹자마자 낙원에서 쫓겨났다.
누군가 그들을 내쫓은 게 아니다.

신이 그들에게 낙원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자신들이 더 이상 순진하지 못하고 존재계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자신들이 에고의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알게 된 것이 철의 장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대는 순진무구함’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지식’을 토해내라! 지혜의 나무에서 따먹은 과일을 토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상’의 의미이다.

자신의 시스템으로부터 그것을 밖으로 내던져라.
그것은 독에 불과하다.
아무런 지식 없이 살아가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걸 알라.
이러한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대는 ‘아름다움’이 뭔지 알게 되리라.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이 뭔지 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지식’이 있고, 아는 ‘무지’가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무지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그대의 존재에 완전히 다른 특질이 생겨난다.
그대는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된다.
그대의 눈망울은 다시 궁금증으로 가득 차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날아가는 새를 보며 그대는 전율을 느낀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마치 자기 자신이 날아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연잎에서 아침이슬이 떨어지는 것, 아침 햇살이 그 위에 영롱하게 빛나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순간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감동을 준다.
연잎에서 아침이슬이 호수로 떨어지며 드넓은 바다와 만나려는 찰나,

그대는 자신이 마치 그 이슬방울처럼 이파리에서 떨어져 신성의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함의 순간, 관찰자와 그 관찰의 대상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만다. 그대는 더 이상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대는 더 이상 자신이 듣고 있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 오쇼의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향기로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적인 성장  (0) 2022.02.13
전환의 시대  (0) 2022.02.13
어제와는 또 다른 하루를 열며  (0) 2022.02.13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0) 2022.02.13
내 주의에 모든 사람들은 소중합니다  (0)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