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한 자
내가 말하는 ‘극복한 자’란 자신을 통합하여 스스로 주인 된 사람을 말한다.
여자의 사랑에 포로가 된 남자와 남자의 사랑에 포로가 된 여자는 모두 ‘자유’라는
고귀한 왕관을 쓸 자격이 없다.
그러나 서로 뗄 수 없고 구별되지 않는 ‘사랑’에 의해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는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정복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육신과 피를 먹고 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여자를 남자에게 끌어들여 더 많은 여자와 더 많은 남자를 낳게 하고 결국 육신의
구속을 영구화하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극복한 자’란 너무나 자유로워서 남자가 될 수 없고 지극히 지고지순하여
여성이 될 수 없는 불사조 인간을 말한다.
비록 육체 안에 있을 때에도 남자와 여자는 육체의 교류가 아니라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 ‘완전한 통합’과 ‘신성한 이해’에 다다르는 그들의 여정에
방해되는 모든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서 통합을 이룩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인간의 본성’을 마치 모든 면에서 측정과 규정이 가능하고 충분히
탐구되었으며, ‘성sex’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모든 면에서 확고한 영역이 정해진
부동不動의 요소인 것처럼 말하는 걸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성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격정적인 분출의 욕망을 이용하여 과도한 성욕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며, 결국 고통이 따른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의 쓸데없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인간은 너무나 광대한 존재이며, 그의 본성 역시 헤아리기가 너무나 어렵다.
인간의 재능은 너무나 다양하고 그의 능력은 지칠 줄 모른다.
그러니 인간에게 한계를 두려고 애쓰는 자들을 경계하라.
육체가 인간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만 그 대가를 치른다.
그대들 가운데 누가 영원한 노예로 살아가고자 하겠는가?
주인이 씌워 놓은 멍에를 던져버리고 세금을 내는 짐을 덜어내고자 하는 꿈을
꾸지 않는 노예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노예로 태어나지 않았고,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도 노예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모든 종류의 노예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얻기를 너무나 갈망한다.
그리고 자유는 분명 그의 것이다.
극복하려는 자에게 혈연관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지로써 깨부숴야 할 연결고리이다.
‘극복한 자’는 자신의 피가 모든 피와 연관되어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그는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갈망하지 않는 자들은 종족을 번식하도록 놔두어라.
갈망하는 자들이 번식해야 할 또 다른 종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극복한 자들의 종족이다.
<미르다드의 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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