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훈

'공의 명상' 으로 자유로와 지기

qhrwk 2023. 10. 10. 06:52

♣ '공의 명상'으로 자유로와지기

한 거사님의 고민은진급에 대한 불안에 있고,
한 보살님의 고민은 사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있다.
거사님은 토끼 같은 자식들 공부라도 다 시키려면 어떻게든 끝가지
버티면서 진급에 목메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보살님은 벌여 놓은 사업이 왜 신통치 않은지 날이 갈수록 고민만 쌓인다.
그런데 어느 날 설법을 듣고,방하착에 대한, 무집착에 대한,
그리고 공의 명상에 대한 가르침 대목에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조금 내려 놓으니 답이 없었던 것이,완전히 내려 놓아 보니 시원한 답이 나왔던 것이다.

자식들 공부 시키고, 마누라 월급도 갖다 줘야 하고,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진급도 해야 하고,특히, 자식 공부 끝날 때 까지는 포기할 수 없다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진급, 직장에 대해완전히 내려 놓아 보았더니,
그래도 죽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진급 안 하면 우리 가족 다 죽는 줄만 알았고,해결책이 없을 줄만 알았고,
진급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그것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사실,
정녕,
결정코,
그런 것인가?
결코 진급 없인 안 되는가?
하고 냉정하게 물어 보았더니, 그렇지는 않더라고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진급 까짓거 안 되면 어떻게든 죽으라는
법이야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마음으로
내려 놓아 보았더니,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가 한결 수월해지더라는 것이다.

  보살님도 마찬가지다.
사업 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내가 어떻게 일구어 온 것인데,
어떻게든 한 번 빛을 보고야 말 것이라고,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사업인데,‘이걸 놓으라고?’ ‘절대 그럴 수 없어’
‘스님이 뭘 안다고 놓으라는거야? 남 사정도 모르면서’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단 말이야’
하고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사업,그것을 까짓거 마음으로인데 어때 하고

받아들이고 났더니,까짓거 놓아볼 용기가 생기더란다.

그래 사업,내가 젊었을 때부터 일구어 왔고,어렵게 어렵게 이렇게까지
 끌고 왔는데,한번 크게 성공도 못 하고, 본전도 못 찾고,
남들에게 성공했단 소리도 못 듣고, 여기서 끝내라고?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더니,한 번 놓아 보자 한 생각에
내려 놓고도 살 수는 있을 것 같더란다.

억울하지만,그리고 아깝지만,까짓거 내려 놓을 수도 있겠더란다.
그렇게 내려 놓고 났더니,그제서야 속이 후련해 지더란다.
이제까지 그 사업으로 인해 속끓이고,골치 썩이고, 괴로워하고,
자식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신경도 못 써주고,몸도 못 돌보고,
 못 먹는 술도 먹어야 하고,그 모든 것들이까짓거 한 번 놓겠다는 마음 내
보았더니,못 놓을 것도 없고,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더라고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그렇게 마음에서 짐을 내려 놓고 나면,
실제 포기한 것은 아니더라도마음은 훨씬 편안해 지고,자유로워지고,
얽매임이 훨씬 줄어들게 됨을 경험한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던 생각들이 놓여지면서,훨씬 여유가 생기고,
잘 안 되더라도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되고,조금 잘 되더라도 쉬 들뜨지 않게
되면서,조금 더 크게 자신의 사업에 대해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집착하게 되면,그 집착이라는 좁은 소견에 갇혀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넓은 시선으로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게 되는지혜로운 눈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될 지는 모를지라도,내려 놓아야 할 때가 온다면
미련 없이 ‘그래 내려 놓고 말지’라는 큰 한 생각을 내고 나면
오히려 그 일에 대한 지혜와 통찰과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이게 바로내려 놓아야 더 크게 잡힌다는 도리다.
물론 미묘하게도,내려 놓으면 더 큰 것을 잡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계산은
또 다른 어리석음이며, 더 큰 것을 붙잡겠다는 무명일 뿐이다.

 완전히 내려 놓아 보면,상상할 수 없는 큰 공덕이 있다.
 자유로움이 있고,지혜가 있고,여유가 생겨나고,통찰과 직관이 깨어나며,
나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자비로움도 생겨나고,
매 순간의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 또한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크게 한 번 내려 놓는,그래서 본래 아무 것도 없었던 ‘무(無)’,
‘공(空)’ ‘제로(0)’로 돌아가 보는 명상이다.
 진짜로 사업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진급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삶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집착을 내려 놓음으로 인해,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참된 무소유를 통해,
공의 실천을 통해더 큰 지혜와 사랑과 통찰이 열리는 귀하디 귀한 명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놓으려면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하는지를 모른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잡고 있고,또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내려놓아야 할까?
그리고 집착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 ‘공(空)의 명상’이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씩 둘씩 붙잡고 집착하며 집착과 소유의
 굴레에 사로잡힌 줄도 모른 채무거운 집착의 속박에 갇히곤 한다.
 처음엔 작게 시작되었던 집착들이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다 보면그것이 어느 새 늘어난 줄도 모르고
집착의 무게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시절에는백 원짜리, 오백 원 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가,대학생 때 쯤에는 몇 만원 쯤은 있어야 행복해지고,
직장생활 초년생 때는 월급 100만원에도 행복해지지만,
점차 월급도 연봉도 많아지면서연봉 5,000만원, 7,000만원,
1억을 받으면서도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욕심과 만족할 줄 모르는 집착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누구나 때때로 ‘공성의 명상’을 통해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의 집착의 굴레에 갇혀 있는지,내가 집착하고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물론 소유하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다.
소유하되, 거기에 소유 당하고 있는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알아차리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성의 명상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0’으로, 즉 ‘무(無)’, 아무 것도 없음의공(空)으로 돌아가 보는 명상이다.
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그리고 생을 마치고 떠나가야 할 때,
우리가 본래 나왔던 바로 그 자리가 바로 공의 자리다.
이 나온 자리를 아주 생소하게, 낯설게,‘나’라는 모든 수식과 정의와
규정들을 완전히 내려 놓고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무아(無我)의
나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우리가 나온 자리는 어디인가?
처음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어떤 존재로 왔는가?
아무 것도 없는 존재로 왔다.
소유한 바도 없었고, 집착한 것도 없었으며,이루어야 할 꿈도 없었고,

커서 무엇이 되리라는 목표도 없었다.
 동전 한 닢도 없었고,돈도, 차도, 집도, 집착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알몸 하나 달랑 가지고 태어나매 순간순간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도 없었고,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그 순간을 누리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이 자리가 바로 공의 자리다.
바로 이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내가 문득 낯선 여행지에 섰을 때,히말라야 고지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때,
문득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너무나도 낯설고 낯설어,
나의 이름도, 정체성도, 외모도, 학력도, 그 무엇도 잊은 채그저 광대한
우주 속의 공이 된 한 존재를 느끼곤 했다.
그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자유스러웠던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고,그저 그 어떤 수식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한 존재가 자유로이 서 있었다.
 공의 명상을 위해,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수식과 정의와 규정들을
미련 없이 내려 놓아 보자.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이나,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꼬리표들을 하나씩 내려 놓아 보는 것이다.

 <자료출처 목탁소리 지대방-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