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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시 황의 출생 비밀

qhrwk 2022. 3. 10. 09:00

 


한국의 한 여름 시골에서 들었던 뻐꾸기 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졌다. 
뻐꾸기 소리를 들어 본지도 반세기!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느끼면서 뻐꾸기의 탁란과
진시왕을 생각했다.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 휘파람새, 산솔새 등이 알을 품고 있으면 
기회를 보다 둥지가 빌 때 들어가 알 하나를 없애고 자기 일을 낳고 도망쳐 새끼를 부화시키는
탁란과에 속한 조류다. 
그렇게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잘 먹고 잘 커서 다른 새끼를 못살게 굴고 심할 경우 둥지 밖으로 떨어 트려 
죽이기까지 하면서 자라는 못된 조류이다.
진시황의 출생 비밀을 보고 뻐꾸기를 떠 올린 것은 이런 탁란 행위 때문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 춘추 전국시대 말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출생했다. 당시 진(秦), 초(楚), 제(齊),
조(趙), 위(魏), 한(韓), 연(燕) 칠웅(七雄)이 하루 아침에 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우방이 되면서 
생존을 위해 피 터지게 싸우고 있던 시절 진의 소양왕과 조의 혜문왕은 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인질을 교환했다.
이때 소양왕이 조나라에 인질로 보낸 사람은 손자 이인(異人)이었다.

조나라에서는 이인을 수도인 한단(邯?)에 살게 했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인질 교환은 춘추시대와는 달리 
전쟁 억제효과가 거의 없어 몇 년 후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장평전투가 벌어졌다. 
진나라 장군 백기가 조나라의 조괄을 물리치고 무려 40만 명의 조나라 병사들을 생매장했다.

당시 조나라 백성들의 대다수가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진나라에 대해 이를 갈고 분노하여 
조나라 왕이 이인을 죽이려 했으나 대신들의 만류로 죽임은 면했으나 대우를 대폭 강등시켜 조석 끼니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에 장사 수단이 뛰어나 많은 재산을 모은 여불위(呂不韋)가 한단에 볼모로 와 있는 진나라 왕손 이인을 
만나게 되었다. 
이인은 당시 왕위를 이을 희망도 없었고 조나라의 무시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물도 부족해 몹시 
곤궁한 상태에 있었는데 그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귀한 물건임을 알아 본 것이다.

여불위는 이때부터 가산을 탕진해가며 이인을 후대하고 그를 대신해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유력 인사들에게 
예물을 주면서 이인의 위치를 천하에 알렸다.
특히 태자 안국군의 처 화양부인의 언니와 친해진 후 아들이 없었던 화양부인과 연결해 이인을 양자로 삼아 
남편 안국군의 후계자로 삼게 했다. 
이렇게 되자 이인의 명성이 제후국에 널리 알려져 대우도 좋아졌다.

이인이 진나라로 귀국하기 전에 여불위는 한단에서 거금을 들여 조희(趙姬)라는 미인을 샀다. 
여불위는 조희에게 자신의 아이를 임신시킨 후 이인에게 보냈다.
『사기』에는 조희가 임신한 지 12개월 만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조정이라 했으며 이가 바로 훗날의 진시황이다. 
조희가 이인에게 간 후 열 달 만에 분만했기 때문에 이인은 자신의 아들로 여겼다. 
사실 그는 여불위의 핏줄이다. 

기원전 250년 56년에 걸쳐 진을 다스리던 소양왕이 사망하자 태자인 안국군이 뒤를 이으니 이가 
효문왕(孝文王)이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았던 그는 겨우 1년 만에 사망했고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이인이 뒤를 이어받으니
바로 장양왕(莊襄王 기원전 250-247)이었다.
장양왕은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여불위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를 승상으로 삼았다.



▲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 건설에 착수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에 관한 문헌인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편에 의하면 황릉은 지하궁전으로 지어졌으며 내와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의 수은을 이용하여
무덤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보호되게끔 시설되었다고 쓰여져있다」

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사망하자 조희 소생의 아들 정(政)이 13세에 즉위하니 이가 
후대에 널리 알려진 진시왕이 된 것이다. 
진시왕은 다시 말하면 왕손이 아닌 여불위의 자손인데 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진시왕은 자신이 예전에 여불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전국 칠웅의 최강국인 진나라의 군주가 된 것을 고맙게 
여겨 생모인 조희를 태후(太后)로 삼고 여불위를 상부(尙父)라 부르며 우대했다.

이렇게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중년에 접어든 조희는 때도 가리지 않고 여불위를 불러 음욕을
채우는 일이 벌어져 그 소문이 퍼졌다. 
이인과 조희의 친아들인 장안군(長安君) 성교(成嶠)가 이 사실을 알고 반란을 주도하다 실패하여 죽임을 당했다.
이에 놀란 여불위는 태후 조희와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전국에 수소문 해서 성기가 크고 혈기왕성한 노애를 
내시로 위장해서 조희에게 보내고 피해 버렸다.

노애를 만난 조희의 음욕은 절정에 달해 추태가 널리 퍼져 진시왕이 알게 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에 
불만을 품은 노애의 반란으로 조희와 노애는 물론 그 사이에 태어난 핏덩어리도 진시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불위는 자살을 했다.
탁란과 같이 왕족의 둥지에 들어가 결국은 생모, 생부와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이에 관계된 수 천명의
목숨까지 빼앗는 잔혹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가까이 볼수록 비밀이 보이고, 깊이 들어갈수록 비밀이 생겨난다..
사랑은 아름다운 비밀을 만드는 것이고, 믿음은 그 비밀을 아름답게 간직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륜대사에 어긋나는 비밀은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진시황의 출생 비밀 같은 것은 깊이 묻혀서 들어 
나지 말았어야 할 일인데 어찌다 노출되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몇 천 년이 지남 오늘날까지
여러 사람에게 화자(話者)되고 있는 엄청난 사실 앞에 쓴 웃음이 난다..

서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