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초천법륜의 역사적 의미
부처님이 마가다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지극히 미묘해서 보통사람은 알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운
법’을 누구에게 설법할까를 생각했다.
알라라 카라마와 웃다라카 라마풋타를 떠올렸으나 그들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대신 과거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는 아직 바라나시에 있었다.
부처님은 그들을 찾아 갔다.
그들은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저기에 타락한 수행자 고타마가 온다. 우리는 그에게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일어나 자리를
권하지도 말고 말도 건네지 말자.’
그렇지만 그들은 약속과는 달리 부처님이 가까이 오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그대는 어디에 있다가 왔는가’ 하고 물었다.
“그대들은 나를 ‘그대’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은 여래(如來)니라.”
“그대는 고행을 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하물며 고행을 버리고서 어찌 깨달음을
얻은 여래하고 하는가?”
“그대들은 내 얼굴이 이렇게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이미 불사(不死)의 법을 얻었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들으라.”
부처님은 이들에게 괴로움의 진리(苦聖諦)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진리(苦集聖諦)와
괴로움에서 벗어난 진리(苦集滅聖諦)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관한 진리(苦集滅道聖諦)에
대해 설법했다.
다섯 수행자 중 카운디냐는 가장 먼저 번뇌가 없어지고 법의 눈이 깨끗해졌다.
부처님은 기뻐하면서 그를 아즈냐타 카운디냐(깨달은 교진여)라고 불렀다.
이어 부처님은 두 사람이 설법을 듣는 동안 세 사람이 나가 걸식하고, 세 사람이 설법을 듣는
동안은 두 사람이 나가 걸식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다섯 명의 수행자가 다 열반을 얻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다섯 명의 아라한과 부처님을 더해 여섯 명의 아라한이 있게 되었다.
증일아함 14권 고당품(高幢品) 제5경
‘불교 제1 사명은 포교활동’설법으로 다섯 비구 교화한부처님 ‘종교적 출발’ 본받아‘一人五化’
운동 전개했으면…
만약 부처님이 바라나시로 다섯 수행자를 찾아가 설법하지 않았다면 불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그 종교적 출발을 초전법륜에 두고 있다고 해야 한다.
불교의 종교적 사명도 바로 포교활동에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 불교는 이 포교의 사명에 소홀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을 표방하지만, 하화중생은 외면하고 상구보리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한때 국민의 절반이상이 불교신자이던 나라에서 불교는 이제 소수종교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정법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생구제를 제일사명으로 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책임을 방기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일인오화(一人五化)’운동이다.
초전법륜에 나섰던 부처님을 본받아 한 사람이 다섯 사람씩 교화하여 정법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다.
모든 출가수행자는 부처님을 본받아 1년에 최소한 다섯 사람을 교화한 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해야 한다.
모든 재가신도도 기간을 정해서 다섯 사람을 교화해 정법에 귀의시키는 것을 최고의 공덕으로
여겨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부처님의 은혜도 갚고 낙후된 포교사업도 활성화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총무원이나 종회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여야 한다.
홍사성 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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