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처음 발심한 납자가 알아야 할 공부 2.

qhrwk 2024. 12. 14. 11:04

 

♣처음 발심한 납자가 알아야 할 공부 2. ♣

 16.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마음을 여러 갈래로 치닫게 하면 도(道)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니, 그런 식으로는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해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만일 의정이 문득 일어난 납자라면 허공 속에 갇혀 있어도 그것이 허공인 줄 모르고 또한 

은산철벽(깨뜨리기 어려운 장애를 비유함) 속에 앉아 있듯 하여 오직 살아나갈 길만을 모색해야 

하니,  살길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편안하게 은산철벽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지 이렇게 공부해 나가다 보면 때가 올 것이니,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자연히 

들어갈(入道) 곳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7. 공부로는 도를 깨칠 수 없다는 사견을 조심하라
요즘 삿된 선사가 납자들을 잘못 가르치는 일이 있다. 그들은  깨치는 길은
 공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옛 사람들은 한번도 공부해서 도를 깨친 일은 없다 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말은 가장 해로와서 후학을 미혹케 하여 쏜살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대의 선사의 [좌선명]에는 이런 글이 있다.참구할 필요 없다 절대로 큰소리 말지니옛분이 

애써서 모범이 되어주지 않았던가
지금은 낡은 누각 버려진 땅이라 해서한번에 영영 황폐시켜서야 되겠는가. 만약에 참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문득  나는 도를 깨쳤노라 고 한다면 이는하늘에서 떨어진 미륵, 땅에서 솟은 

석가일 것이다. 이런 무리들을 이름하여 불쌍한 존재라고 한다.자기 스스로 참구하지는 않고 옛 

스님들이 도를 묻고 대답한 것을 보고는 문득 자기가 깨달았다고 착각한다. 드디어 알음알이를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속인다.
그러다가 호된 열병에라도 한 번 걸리면 아프다고 하늘에 닿도록 소리치니 평생동안 깨달은 

바가 하나도 쓸모없게 된다. 이윽고 죽는 마당에 이르면 마치 끓는 남비 속에 들어간 방게처럼 

손을 바삐 움직이고 발버둥을 치게 되니 그제서야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벽 스님은 이런 노래를 지으셨다.
   
티끌 세상을 벗어남은 보통 일이 아니니
고삐 끝을 꼭 잡고 한바탕 일을 치루라
매서운 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떻게 매화향기 코를 찌르랴
             
이것은 가장 간절한 말씀이니, 이것으로써 때때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 공부는 자연히 날로 

향상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백리 길을 가는데 한 발자국을 걸어가면 한 발자국만큼 길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아치이다. 한 발자국도 걸어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면, 비록 

자기 고향일은 훤히 설명할 수가 있지만 진정한 고향인 깨달음에는 끝내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 어느 쪽 일을 택해야 마땅하겠는가?
 
18. 간절하게 참구하라
참선하는 데 있어서는  간절함 이라는 한마디가 가장 요긴하다.간절함은 무엇보다도 힘이 있는 

말이니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기게 되면 편한 곳으로 내쳐 마음대로 놀게 

되며 못할 짓이 없게 된다. 만일 공부에 마음이 간절하면 방일할 겨를이 있겠는가.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만 알면 옛 스님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근심할 필요도 없고,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이 간절하다는 말을 버리고 따로 불법을 

구한다면 모두 어리석고 미친 사람들로서 형편없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와 참선하는 사람을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가 어찌 허물만 멀리 할 뿐이겠는가? 당장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의 

3삼성(三性)을 뛰어넘을 수 있다. 무슨 뜻인가? 화두 하나에 온통 간절하게 마음을 쏟으면 

선(善)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악(惡)도생각하지 않게 되며, 또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무기(無記)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화두를 간절히 참구하면 마음이 들뜨는 상태와 어둡게 가라앉는 상태가 없어지고, 화두가

 눈앞에 나타나면 무기(감각이 없는 상태)에 떨어지지도 않는다.그러므로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가 

가장 친절한 말이다. 마음씀이 매우 간절하면 마가 들어올 틈이 없다. 또한 있다 없다 를 놓고 

분별심을 내지 않아서외도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19. 참선 중에는 앉아 있음도 잊어라
참선하는 중에는 걸어가도 걷는 줄을 모르고 앉아 있어도 앉은 줄을 모르니, 이것을  화두가

현전한다 고 말한다. 의정이 깨어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하물며 걷고 앉는

일을 의식하겠는가.
 
20. 주변사에 마음을 쓰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는 시를 짓고 노래 부르며 글쓰기를 생각하는 일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시나 노래로 대가가 되면 승려시인 아무개라 불리우고, 문장력이 뛰어나면  글 잘하는 아무개 스님이라 

불리게 되나 참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마음에 맞거나 거슬리는 바깥 경계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경우를 만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는 화두를 들고서 바깥 경계를 따라 굴러가지 말아야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수 있다.어떤 사람은  그렇게 바짝 조여댈 것 없다 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태도가 가장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공부이니, 납자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21. 공(空)에 떨어짐을 두려워 말라
참선하는 사람이 흔히 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데 화두가 현전한다면 어떻게 空에 떨어질 수 

있겠는가. 오직 이렇게 空에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공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하물며 화두가 현전할 수 있겠는가.참선할 때에 의정을 깨뜨리지 못했으면 마치 깊은 물가에 간 듯 

살얼음판을 지나듯 조심해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한 생각 놓쳐버리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의정을 깨리지 못하면 이치를 밝혔다고 한 숨을 놓을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숨이 떨어지면 

일생 동안 중음신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업식(業識)에 매이는 결과를 면치 못한다. 

그리하여 계속 다른  몸을 받고 윤회하면서도, 머리를 바꾸고 얼굴을 바꾸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의정에다가 또 하나의 의정을 덧붙이게 되어서 화두를 들어도 결정코 밝혀야

할 곳을 밝히지 못한다. 이 일은 도둑 잡는 일에 비유하자면 물증으로 장물을 찾아내야

비로소 잡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22. 직접 부딪쳐 깨달아라
참선할 때에는 깨닫겠다는 마음만 가지고는 안된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길바닥에 주저

앉아서 집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끝내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모름지기 계속 걸어가야만 집에 다다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니, 오직 직접 

부딪쳐서 깨달아야 한다.크게 깨닫는 순간은 마치 연꽃이 활짝 피어나듯 하고, 또는 깊은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는 듯하다. 이런 이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꿈은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잠이 깊이 들고나면 자연히 깨어나고, 꽃은 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핀다. 

마찬가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인연이 맞으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인연이 맞는다 할 때, 중요한 것은 화두가 간절하여 몸으로 

부딪쳐서 깨달음을 얻게 하여야 되는 것이지 깨달을 때를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또 깨달았을 때는 마치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듯 훤하게 사방이 탁 틔어서 아무 곳에도 눈을둘 

곳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땅이 뒤바뀌게 되니 이것이 또한 한바탕 뒤집힌 경계이다.
 
23. 참선에 필요한 몇 가지 태도
참선에는 긴박함과 바름, 면밀함과 융활함이 요구된다.무엇을  긴박함 이라고 하는가?

사람의 생명은 호흡에 달려 있는데, 생사대사를 밝히지 못한 채로 숨이 떨어지면 앞길이 깜깜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옛날 어떤 큰스님도  삼으로 꼰

새끼를 물에 적시듯 하여 한 발짝 한 발짝 갈수록 조여드는 것과 같다 라고 하셨다.

무엇을  바름 이라고 하는가?

납자들은 모름지기 바른 법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하니, 3천 7백 조사들에게도 다

공통된 안목이 있었다. 그러니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곧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된다.

경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오직 이 일승(一乘)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이승은 진실이 아니다.

무엇을  면밀함 이라고 하는가? 눈썹을 허공에다 매어두고 바늘구멍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이나

술도 스며들 수 없을 정도로 털끝만한 틈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만일 털끝만한 틈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마의 경계가 스며들게 된다. 옛날 어떤 큰스님께서는  한때라도 마음이 도(道)를

떠나면 죽은 사람과 같다 라고 하셨다.
무엇을  융활 이라고 하는가? 세계의 넓이가 1장이면 고경(古鏡)도 1장이고, 고경의 넓이가 

1장이면 화로의 폭도 1장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이치를 바둑에 비유할 수 있다. 바둑돌을 한 

곳에 두어 놓고 거기에 매여서 죽은 바둑돌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한 곳에 얽매여서 

양쪽 축머리에 돌을 놓고 망망하고 탕탕한 곳을 바라보기만 하여서도 안된다. 옛 고승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허공과 같이 원만하여 모자라는 것도 남는 것도 없어야 한다 라고 하셨다.

참으로 융활한 곳에 이르게 되면 안으로는 몸도 마음도 보이지 않고, 밖으로는 세계가 있는 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래야 비로소 도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긴박감만 있고 바른 길을 모른다면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고, 바른 길만 알고 긴박하지 못하면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미 도의 문턱에 들어갔으면 면밀해야만 도를 깨칠 수가 있고, 또한 활달해야만 비로소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
 
24. 딴 생각이 일어남을 조심하라
참선할 때에는 한 가닥의 실오라기만큼도 딴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나 오직 한 길로 

본래 참구해 오던 화두만을 들고 의정을 일으켜 하나의 귀결처만을 찾는 데 분발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딴 생각이 있게 되면 이것은 옛사람이 말씀한  잡독이 심장 속에 

들어갔다 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결과가 어찌 목숨만을 상하게 하는 데 그치겠는가. 부처님의 혜명까지도 

해치게 되니 납자라면 반드시 삼가야 한다.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딴 생각 이란 단지 속세의 

일뿐이 아니라 마음을 참구하는 일을 제외한나머지 불법 중의 모든 좋은 일까지도 포함된다. 

또한 어찌 불법에만 국한되겠는가. 갖고 버리고 집착하여 변화시키는 등 마음자리에서 생기는 

모든 것도 다 딴 생각이라고 해야 한다.
   
25. 끊임없이 참구하라
참선하는 사람들이 흔히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다. 마치 모르는 길을 물어서 찾는 일과 마찬가지이니, 물어도 길을 모른다고 

쉬어서야 되겠는가. 

정확하게 길을 찾았거든 걷는 일이 중요하니, 똑바로 그 길을 걸어가서 목적지인 집에 

도착해야 한다. 길바닥에 진을 치고 있어서는 안되니, 걸어가지 않으면 끝내 집에

도착할 기약이 없다.

26. 더 이상 마음 쓸 곳 없는 경지
참선할 때 더 이상 마음 쓸 곳이 없는 경지, 즉 만 길 낭떠러지나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초승달 

그림자가 물소뿔에 새겨지는 경지(무소가 초사흘 달을 보면 뿔에 달의 그림자가 새겨진다고 함. 

범부가 깨달음을 얻고 불신으로 전화하려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늙은 쥐가 쇠뿔 속에 덜컥 

걸려들어가듯 (옛날에는 쇠뿔에다 기름을 먹여 등잔불로 썼는데 쥐가 그리 걸려 들어가면 꼼짝

없이 나올 수가 없으니, 공부가 다 되어 저절로 깨치게 되는 순간을 비유함) 어찌할 수 없이

저절로 정(定)에 들게 되리라.

27. 민첩하고 약은 마음을 경계하라.
참선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민첩하고 약은 마음이다. 그것은 공부에 있어서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약이니 조금이라도 먹었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게 된다.

진정한 납자라면 소경이나 귀머거리 같아야 한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알음알이가 생기거든 마치 은산철벽에 부딪친 듯하라.이렇게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다. 

28. 자신과 세계를 하나로 하라
진정하고 절실하게 공부하려면 자기 심신과 바깥 세계를 불에 구운 쇠말뚝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갑자기 폭발해서 끊어지고 부러지기만을 기다려, 다시 그것을 주워 모아야만 

비로소 공부가 되었다 할 것이다.
   
29. 사견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경계하라
공부할 때에는 잘못됨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설사 수행을 하다가 잘못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한 생각에 잘못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자 생사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이며, 마의 

그물을 깰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석가 부처님께서는 외도의 법에 대하여 하나하나 몸소 경험해 나오셨다. 

이것은 오직 사견의 소굴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인 줄 안 즉시 떠난다 는 태도를 가지고

범부에서 부터 부처자리에 이르셨던 것이다.

이 뜻이 어찌 세간을 벗어난 출가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속인들도 생각을 잘못했을 때가 있거든, 오직  잘못인 줄 알았으면 바로 버린다 는 이 뜻만

소화해 낼 수 있으면 청정한 선남자가 될 수있을 것이다. 만약 잘못을 안고 그 속에 정착하여

옳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알려 하지 않는다면비록 산 부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30. 시끄러운 경계를 피하려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시끄러운 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고요한 곳을 찾아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도깨비굴 속에 앉아 살아날 궁리를 하는 셈이다.옛사람이 이른바  흑산 밑에 앉아 있으면

사수(死水)가 젖어 들어올 때 어느 쪽으로 건너겠는가?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연의 굴레 속에 있으면서 공부해 나가야 비로소 힘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문득 한 구절의 화두가 눈썹 위에 붙어 있게 되면, 걸어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나 오직 그 화두의 귀결처만을 밝힌다.

그러던 어느 날아침, 얼굴을 씻다가 콧구멍을 더듬어 만져보니 원래 그 자리에 붙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 힘을 얻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