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처음 발심한 납자가 알아야 할 공부 3.

qhrwk 2024. 12. 14. 11:30

 

 

♣처음 발심한 납자가 알아야 할 공부 3.♣

 

31. 알음알이를 공부로 오인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공부로 오인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혹 눈썹을 치켜 뜨고 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굴리는 것에 무엇인가 있다고 

여겨서 알음알이를붙들고 참선에 임한다면 외도의 노예조차도 되기 힘들 것이다.
   
32. 마음 갈 곳이 없도록 하라
참선하는 데에는 어디에고 마음 쓸 곳이 없어야 한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도를 묻고 대답한 기연을 생각하는 데 마음을 쏟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동산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갖가지 묘한 경계를 체험하고도 근본 종지를 잃어버려서 

본말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근기가 되면 함께 도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만일 도리를 깨달았으면 하나하나가 모두 삼매여서 자기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게 되니 이러한 

깨달음은 사유 조작과는 천지차이 정도가 아니다.

33. 공부가 향상되지 않음을 두려워 말라공부가 향상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향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공부이다. 옛 스님께서도 아무 방편도 쓰지 안음이 해탈에 이르는 문이고, 

아무 생각도 없음이 깨달은 이의 생각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에 들어가는 모든 방법을 몸소 체득하는 일이니, 공부가 향상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버리면 설사 백천 겁을 태어나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34. 다급한 마음으로 생사문제에 매달려라
외정이 막 일어나서 놓을래야 놓을 수 없게 되면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생사문제를 늘 염두에 두고 마치 호랑이에게 쫓기는 듯 다급해야 한다. 

만약 죽어라고 달려서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래도 

어정거릴 것인가?

35. 여러 공안은 천착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하나의 공안에만 마음을 쏟아야지 여러 공안에다가 알음알이를 지어서는 

안된다. 비록 많은 공안을 이해하였다고 생각하더라도 결코 깨달은 것은 아니다.

[법화경]에서는  이 법은 사량분별로는 깨달을 수 없다 라고 하였고, [원각경]에서도  

알음알이로 원만하게 깨달은 여래의 경지를 헤아려 보려는 것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또한 동산 스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알음알이로 묘한 깨달음을 배우려 함은 서쪽으로 가려 하면서 동쪽으로 발을 

내딛는 짓과 마찬가지이다.
공안을 참구하는 모든 납자들은 살아서 피가 흐르는 자라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6. 경론에서 증거를 드는 알음알이를 조심하라
참선할 때에는 화두를 들고서 오직 이 의정이 깨어지지 않았음을 알았으면 끝까지 딴 생각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결코 경에서 증거를 대어가며 알음알이에 끄달려가서는 안된다.

알음알이가 일단 작동하게 되면 망념이 갈래갈래 치달리게 되니, 그때 가서 말 길이 딱 끊기고 

마음 쓸 곳이 없어진 경지를 얻고자 한들 되겠는가?
    
37. 잠시도 중단하지 말라
도(道)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 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공부는 잠시라도 중단해서는 안되니, 중단해도 된다면 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납자라면마치 눈썹이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절실하게 공부를 해야 하니, 어느 겨를에 

딴 생각을 내겠는가. 옛 큰스님께서도  마치 한 사람이 적병 만 명과 싸우듯 해야 하니 한눈을 팔 

겨를이 있겠는가 라고 하셨다. 이것은 공부에 가장 요긴한 말이니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38. 깨닫지 못하고서 남을 가르치지 말라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깨닫지 못하였으면 오직 자기 공부만을 힘써야지 남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서울에 가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서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는 일이다.

39. 방일과 무애를 혼돈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새벽이나 밤이나 감히 게을러서는 안된다. 자명 스님 같은 분은 밤에 잠이 오면 

송곳으로 자기 살을 찌르면서, 옛 사람은 도를 위해서라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자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라고 하였다 한다.

옛 사람은 석회로 테두리를 그려놓고 깨치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그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제멋대로 놀아제껴 법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그것을 걸림 

없는 공부라 하고 있으니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40. 얻어진 경계에 집착하지 말라
참선하는 중에 몸과 마음이 거뜬해지거나 혹은 화두를 이해했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 참산은 당시  뱃사공 덕성 스님은 종적이 없어졌다 는 화두를 들고 

있었는데, 하루는 [전등록]을 읽다가 조주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부탁한 말씀인  3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대목(조주스님에게 한 스님이 떠나겠다고 인사하니 스님은 

이렇게 당부하셨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은 얼른 지나가거라. 

그렇게 해서 3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이 소식을 잘못 들먹여서는 안된다...) 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메고 있던 푸대를 끌러 천근 짐을 내려놓은 듯하였다. 

그때 나는 확실하게 깨쳤다고 생각 하였는데 나중에 보방 스님을 만나게 되자 나의 

깨달음이란 것이 마치 네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격으로 터무니 없어 비로소

부끄러운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한 다음에 큰 선지식을 만나지

않았다면 비록 경안은 얻었을지 모르나 끝내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방스님은 이 노래를 지어 주면서 나를 격려하였다. 공(空)으로 공을 밀쳐내니 그 공(功)

더없이 크고 유(有)로 유를 쫓아내니 덕이 더욱 오묘하다가섭이(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두타행에 안주했다고 하는 비난은 편안함을 얻은 곳에서 편안함을 잃는다는 말이네

이 게송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말씀으로 선을 공부하는 납자들은 잘

살펴야할 것이다. 나는 납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보방스님에게서 유(有)와 공(空)을 긍정하지 않는 뜻을 터득하고 나서부터는 응용

(수용-受用)이 무궁하였다.
   
41.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들지 말라
참선할 때는 도리를 따져서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되니, 오직 딱딱하게 참구해 나아가야 비로소 

의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도리를 따져 이해하려 든다면 이것은 무미건조한 껍데기일 뿐이니, 

그 결과는 비단 자기의 생사대사를 확철대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정을 일으키는 일조차 

못할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릇 속에 담긴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나, 사실 그 속에 

담긴 것은 그가 지목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아닌 것을 옳다 하고 있으니 의정이 생겨날 수가 없다. 

비단 의정이 생겨나지 않을 뿐 아니라 저것을 이것이라 하고 이것을 저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착각하고 있다면 그릇을 열고 한번 몸소 그 속을 보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도 

그 속에 담긴 것을 가려내지 못할 것이다.

42.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도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도(道) 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고, 오직 이 도리를 밝혀

내고야 말겠다는 뜻을 굳게 세워야 한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바로 도라는 생각에 빠지면

일생동안 그저  아무 일없는 놈 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가사 속의 생사대사는 끝내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음과 같아서 확실하게 찾았으면 비로소일이 끝나지만, 확실히 찾지도 못한 채 무사안일에 

몸을 맡겨 찾아 보려는 의지조차 없다면 설사 잃은 물건이 나타나더라도 빤히 보면서도 잘못 알고 

지나쳐 버리게 되니, 이것은 그에게 찾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43. 단번에 깨치려고 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번갯불 부싯돌처럼 반짝하는 사이에 깨치겠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된다. 

비록 빛이 문 앞에 번득거릴 때 반짝하고 보이는 것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거기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단 말인가?

요는 착실히 실천해 가면서 직접 자기 눈으로 한 번 확인 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것이다.만약 진득하게 하여 뜻대로 되어간다면 맑은 하늘 밝은 해 아래

잃었던 부모를 만난 듯하리니, 세상에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44. 사유와 판단을 주의하라
화두를 들 때에는 의식 속에서 알음알이를 내어서는 안된다. 따져보고 판단하는 등의 일은 공부를 

조금도 제대로 되지못하게 하고 의정을 일으킬 수도 없게 한다. 그러므로  알음알이 라는 

네 글자는 바른 믿음과 바른 수행을 장애하고 아울러 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납자들은 그것을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의 원수 집안처럼 대해야 한다.
   
45. 화두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화두를 들 때에는 화두 표면상에 나타난 의미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만약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런 납자를 이른바  얼굴만 멀쩡한 바보 라고 하니, 마음을 참구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오직 모름지기 의정을 일으키고 철저하게 아무 곳도 고개 끄덕일 곳이 없게끔 해야 한다. 

또 아무데도 고개 끄덕일 곳 없는 사람도 공중누각이 이리 저리로 다 뚫린 것처럼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을 자식으로 알고 하인을 신랑인 줄로 착각하는 꼴이 된다. 

옛 큰스님께서도  당나귀 안장자루를 아버지 턱뼈라고 부르지 말아라  하셨으니

바로 이 뜻이다.
   
46. 남의 설명을 기대하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남이 다 설명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만약 남이 설명해 준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도이므로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오직 길만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거기다가

서울 소식을 물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다. 그가 낱낱이 서울 소식을 말로 전해준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이 본 서울이지 길을 물은 사람이 직접 본 서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는 힘써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다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면 바로 

이런 꼴이 되는 것이다.
   
47. 공안만을 참구하라
참선할 때 오직 한 생각으로 공안만을 참구하지 않고 다른 생각이 오락가락하면 도(道)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계속해 보았자 역시 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잡념이 일어날 때 왜 아미타불을 염(念)하지 않는가. 염불은 참선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생각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 화두를 드는 데도 무방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개에게서 불성이 없다 는 화두를 들 때라면 그  없다 는 말에 달라붙어 의정을 일으키고, 

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는 화두를 들 때는 그  잣나무 에 대하여 의정을 일으키고,만법이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 라는 화두를 들 때는 그 하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 에다가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일단 의심이 일어나면 시방세계 모두가 하나의 

의심덩어리가 된다. 

그리하여 부모에게서 받은 이 몸과 마음을 잊고 온통 의심 덩어리 뿐이다.

시방세계가 있는지, 또는 어디까지가 내 자신이고 어디까지가 바깥 세상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의심만이 물밀 듯 다가온다. 

그러다가 대다무 태를 맨 물동이가 탁 터지듯 의심덩어리가 풀리고 나면 다시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생사대사는 다 마친 뒤라 비로소 

박장대소하게 된다.그리고 난 뒤 그때까지도 공안을 천착하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마치 

말 배우는 앵무새와 같으니 무엇 때문에 거기에 섞이겠는가?

48. 바른 생각을 지녀 사견에 빠지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잠시도 바른 생각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만약 참구하는 한 생각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딴 길로 빠져들어 망망히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예컨대 어떤 납자가 오직 깨끗한 곳에

앉아 맑고 고요하여 티끌 한 점 없는 것을 좋아하며 이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을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고 맑고 고요한 데 빠진 사람 이라고 부른다.

혹 어떤 사람은 말로 도리를 설명해내며 동정(動靜)의 방편을 짓는 것을 공부라고 인정하는데,

이런 사람을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고 알음알이를 인정하는 사람 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망심을 가지고 망심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지로 내리누르는 일을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를 가리켜  망심으로 망심을 누르는 납자 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마치 풀 위에 돌을 올려놓는 것과 같으며 또한 파초껍질을 벗겨내는 일과 같으니 

한 겹을 벗겨내면 또 한 겹이 생겨나서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혹 어떤 납자는 자기 몸과 마음이 

허공과 같을 것이라고 상상으로 관(觀)하여 담벼락처럼 아무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데, 이런 

사람도 바른 생각을 잃은 납자 라고 부른다. 현사 스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단단히 굳혀 단속하고 모든 현상을 공으로 귀착시키려 하면 이런 사람은  단견[공무

(空無)]에 떨어져 혼만 흩어지지 않았지 사실 죽은 사람 이 되고 만다. 이상은 모두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오는 병통이다.

 49. 바른 생각으로 간절하게 참구하라
참선할 때 의심이 일어났거든 이제는 그것을 깨부숴야 한다. 그 의심이 깨어지지 않았을 때라면 

바른 생각을 굳건히 하고 용맹심을 내어 간절, 또 간절하게 참구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되어간다 하겠다. 

경산 대혜 스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대장부가 일대사인연을 결판내려 한다면 

모든 세상일을 돌보지 않고 조급한 마음으로 꼿꼿하게 앉아서 남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평소부터 

품어 오던 자기 의심을 붙들어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치 멀쩡한 사람이 누가 돈이 없어졌다고 자기를 잡으러 쫓아오는 상황에서,갚아줄 돈 한 푼 

없고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할까봐 도망가듯 해야 한다. 

그리하여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는 데서 다급해지고, 큰일날 것도 없는 데서 무슨 일이나 난 듯

참구해 나가야만 비로소 이 생사문제를 해결해 나갈 자격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