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참된 맏음과 삶

qhrwk 2024. 12. 25. 21:19

 

 

♣참된 맏음과 삶 ♣

'군포교 설법자료집'에 쓴다고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고 하여 언젠가 적어놓았던 글입니다.

개요:
1.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2. 굳은 믿음은 어떤 경계에서도 흔들림 없는 내 삶의 중심을 잡아준다.
3.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믿음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4. 조건이 붙지 않는 온전한 믿음이 그대로 수행임을 깨닫게 한다.

종교와 믿음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믿음에기초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신을 믿는 종교라면 그 절대신과 절대신의 가르침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어야만 

그 종교를 믿는 신앙인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종교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불교도 마찬가지 종교이기 때문에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불교라는 종교는 다른 절대신을 섬기는 종교(엄격히 말하면 religion)와는크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행여 불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데 무슨 믿음이 필요한가 하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믿음은 마음공부를 지속시켜 나가는 데 있어 

정진력을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큰 내면의 힘이 될 것입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치고 괴롭고 힘겨운 경계(境界)를 

만납니다. 어떤 경계들은 우리 힘으로 쉽게 이겨 낼 수 있는 것들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너무나도 크고 괴로운 경계가 우리들을 덮쳐와도무지 이겨낼 수 없고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휘두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중에는 그경계를 이겨내지 못하여 세상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부터

도망치려 하고 심지어는 군에서도 탈영이나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경우까지 종종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다 내 안에 중심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거친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끄떡하지 않고당당히 서

있는 것처럼 우리들 또한 내면에 중심이 딱 잡혀 있으면 그 어떤 괴로운 경계가 오더라도

당당히 이겨낼 수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내면에 중심이 서 있지 못하며 속 뜰이 조악하고 얕게 뿌리내리고 있으면 작은

경계가 닥치더라도 쉬 휘둘려 괴로워하고 답답해 하며 결국에는쓰러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음에 중심세우기

그렇다면 내면에 중심을 잡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내 안에 튼튼한 뿌리를 굳게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속 뜰은 아직 굳지 못하고 나약합니다. 누가 욕을 한마디 해도 괴로워 죽겠고, 

선임병들에게 혼이 나면 기가 죽고, 여자친구가 변심을 해도 괴롭고, 휴가를 제때 가지 

못해도 얼마나 괴롭습니까.
작은 경계에 이렇게 휘둘리면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니 온 천지가 자갈밭이고 하루 중에도 

괴로운 일들이 하나 둘이겠어요? 

이렇게 나약한 내면세계를 가지고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굳은 믿음을 세움으로써 그 믿음의 힘으로 세상을 당당하게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굳은 믿음이라는 뿌리를 우리의 내면에 깊게 세우면 그 어떤 

괴로운 경계가 우리를 뒤흔들지라도 쉽게 흔들리지않을 수 있는 당당한 내면의 

힘이 생겨납니다.

 

부처님 말씀에
"바른 법을 믿고 따르면 그것은 나쁜 길에 빠지는 고통을 건지나니 어디로 가나 따라 다니는 

그 굳은 믿음은 늘 큰 힘이 있다. 등불이 어둠을 없애는 것과 같고, 병자가 좋은 약을 얻는 

것과 같으며,장님은 눈을 뜬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이 재물을 얻는 것과 같다. 죽을 때에도 

굳은 믿음을 일으키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 열반을 얻으리라. 이는 믿음이 큰 힘을 일으키기 

때문에 바른 지혜와 수행을 가져온 것이다.
[정법염처경]


이와같이 부처님께서도 굳은 믿음은 큰 힘을 일으키기 때문에 어리석은자, 병자,장님, 

가난한 자 등 수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괴로움을 건지고, 또한 결국에 열반에 

들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굳은 믿음이 있으면 쉽게 휘둘리지 않고 고통을 건널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어',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렇게 당당하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굳게 믿을 만한 것이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다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믿는 구석이 있으니 말이지요. 우리들 불교를 공부하는 수행자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또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면에 굳은 신심이 딱 뿌리를 내려 버티고 있으면 그 어떤 경계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다면 불교에서 신심(信心) 혹은 '믿음'이라고 할 때 이 믿음은 과연 무엇에 대한믿음인가 하는 

점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믿음의 대상이 확실해야지 

무엇을 믿을지 모른다면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할지 우왕좌왕 하게 

될 것입니다.부처님 말씀에 만일 지혜있는 선남자가 있으면 병이 들어 고통하는 지혜있는 

다른 선남자 선녀인에게 가서 세 가지 힘을 얻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즉 "어진이여, 너는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고. [잡아함경] 

부처님을 믿는다

부처님이란 나를 비롯한 일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 내면의 깊이에 있는본래 자리,

'참나'를 의미합니다.우리들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답답해 하며 살아가고 있고,

생노병사라는 네 가지 고통 앞에서 나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모습들은

우리들의 겉모습 다시말해 '거짓 나'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우리 내면의 '참나'는

누구나 부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괴로운 듯 하고 나고 죽는 것처럼 보이고,한낱 어리석고 

나약한 중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본래자리는 온 우주 법계의 근본과 둘이 아닌 

내 안의 근본자리 '참나'가 딱 버티고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에 드러난 괴로움의 경계에 이리 휘둘리고저리 휘둘리며 어리석고 

괴롭게 살아가지 말고, 당당한 자기 중심, 흔들림 없고 여여한내 안에 '참나'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믿음의 대상인 것입니다.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이 

생겨나면 더 이상 두렵고 괴로움에휘둘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괴로운 것들은 다만 

겉모습이며 껍데기일 뿐, 금강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 모습일 뿐그 근본의 본래자리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항상 

여여하고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를 이끌어 가는 근본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내 안의 금본을 믿는다

살아간다고 하니 괴롭고 힘겹고 답답하지 내 근본에서는 '참나'라는부처님께서 당당히 나를

이끌고 간다고 하는 굳은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경계 앞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떳떳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는 네 가지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경전에서 말한 첫 번째인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둘로 나누고 계십니다.원효스님의 말씀에 어떻게 하는 것이 신심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수행인가? 대략 말하자면 신심에 네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소위 참나를 굳게 믿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공덕을 믿는 것이며
셋째는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어서, 항상 법에 따라 수행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수행자가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이타할 것을 믿어서 항상 모든 보살들을가까이 하여 

여실한 수행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소별기] 다시 말해 원효스님께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둘로 나누어 

첫째는 '참나'라는 내 안의 근본에 대한 믿음으로, 

둘째는 부처님의 공덕에 대한 믿음으로 나누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에 대한 믿음, 근본인 '참나'에 대한 믿음은 모든 수행자들에게있어 

첫 번째 가장 중요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믿는다

둘째는 가르침에 대한 믿음입니다.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란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설법해 주신 온갖가르침에 대한 굳은 

믿음을 말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마디로 연기법이라고 했을 때, 연기법에 대한 굳은 

믿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여 착하게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말을많이 합니다. 

적당히 악을 행할 줄도 알고, 머리 굴려 잔꾀를 쓸 줄도알아야지 너무 착하기만 하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더럽혀 놓았습니까. 

이런 어리석음 때문에 인과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과응보라는 엄연한 법칙은 시공을 초월하는 온전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인과를 믿지 않을 때 우리는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과를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맑고 향기로운 청정한 행동이 뒤따를 

것입니다.

청정한 수행자를 믿는다


세번째의 믿음이 바로 청정한 수행자에 대한 믿음입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치의

의심 없이 굳게 믿음으로써 청정한 수행을 해 나가는 모든 수행자들은 그러한 신행(信行)의

과보로 반드시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정한 수행자를 믿고 따름으로써 우리들도 청정 수행자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청정한 수행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바로 정법의 길로 나아가는수행자라는

나 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이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 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청정한 수행자를 굳게 믿고 따르며 그

가르침을 실천하였을 때 내 스스로 부처님이 되고,가르침의 실천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으며,

청정한 수행자가 된다는굳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는다

나를 믿고 내가 나에게 의지하여 귀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껍데기에 드러난 어리석은 나, 이기적인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참나' 부처님과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부처님의 음성과 내 안의 청정한 실천행을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용성스님께서는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 하여 이 몸 가운데 삼보를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자성연각즉불보(自性緣覺卽佛寶)요, 자성적 멸즉법보(自性寂滅卽法寶)요, 

자성청정즉승보(自性淸淨卽僧寶)"라고 하여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님이고, 내 마음 고요하면 법이며, 내 마음 청정하면 수행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조건 없는 굳은 믿음

이와 같은 삼보에 대한 굳은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신념은, 우리의 신앙은 강해질 수 없습니다.

굳은 믿음이 없으면 마음 공부도, 절수행도, 염불이며 그 어떤 부처님의 가르침도 모두

헛것이 되고 맙니다. 너무나도 힘겹고 괴로운 경계 앞에서 우린 누구나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되고 맙니다.
그 나약함에 믿음마저 흔들리고 나면 그야말로 우린 아무것도 가진것이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힘겨운 경계일지라도 굳은 믿음이 있다면 우린 전부를 가진것이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들이 가진 재산 가운데 제일은 믿음이라. 믿음이 있어야 나고 죽음의 거센 물결을

건너고 게으르지 않아야 고통의 바다를 건너며 수행에 힘써야 번뇌 망상을 떠날 수 있고

지혜로워야 마음의 청정함을 얻는다.
[별역잡아함경]

굳은 믿음이란 조건이 붙는 것이 아닙니다. '잘 되게 해 주면 믿는다', '믿으면 잘 되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든 살든 목숨 내어놓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무거운 업장 녹일 길이 없습니다. 

지을 때는 쉽게 쉽게 지어놓고 받을 때는 괴롭게 마련입니다. 받을 때 참 쉽게 받는 법이 

바로 굳은 믿음으로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한치의 수행도 없는 것입니다.

어느 포교산미의 믿음

알고 있는 포교사님이 계십니다. 

참 열심히 사시고 열심히 포교하시며 남들이 보면 참 신기한 사람이다싶을 정도로 그렇게 

베푸는 것에 아주 익숙하신 그런 분이십니다.
그렇게 열심히 수행하셨지만 그 분에게도 IMF는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자진 퇴사하시고 또 다른 돌파구를 찾고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힘겨워 보일 때가 많았지만 

늘 기도하는 마음, 수행하는마음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포교사님의 뒷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곤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고는 그 때를 

회상하셨습니다. 그 때는 참으로 힘들었다고, 너무 괴로웠기에 부처님을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또 열심히 기도하고 그래도 낳아지지 않는 현실을 볼 때마다 분별심만 

커져갔습니다.

'부처님! 제가 얼마나 지금껏 열심히 수행하고 교화했는데, 제가 직장좀 가지고돈좀 번다고 

내가 다 쓰는 것도 아니고 회향하고 포교 하는데 쓸테니 도와 주세요.' 하는 계산된 마음, 

부처님께 거래를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내면의 깊은 곳에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깔려 

있으셨던 것입니다. 잘 살게 해 달라고, 잘 되게 해 달라고 비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수없이 기도를 하며 마지막에 가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신 것입니다.직장이고, 돈벌이고, 지위, 명예, 가족이며 

자식들 교육까지, 이 모든 것을 그야말로 다 비워 버리신 것입니다. 죽든 살든 다 놓아 

버리신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을 택해 이렇게 해 주십사 하는 기도가 아닌 그저 일체를 

놓아버리고 죽든 살든 믿게 된 것입니다. 죽든 살든 다 놓아버리고일심(一心)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조건이 없이 굳게 믿고 놓고 나니 현실에서 하나 하나 길이 보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믿지 못할 만큼 일이 쉽게 풀리게 되고 밝은 인연이 찾아오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 놓고 나니 다 잡힌다는 그런 말씀을 알았노라고 그렇게 밝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죽든 살든 굳게 믿는다

죽음에 대해 뭐가 그리 무섭습니까. 목숨 내어 놓고 굳게 믿고 나면세상 참 허허롭습니다.

넉넉히 여여할 수 있습니다. 살려고 믿어선 안됩니다. 죽는 것도 사는 것입니다. 바른 법을

듣고 그 날 죽어도 좋다는 그런 굳은 믿음이라야 합니다.

죽는 것도 죽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잠시 옷 갈아입는 것일진데그 놈을 놓지 못합니다.

살려고 하니 괴롭게 마련입니다. 목숨 내어 놓고 죽든 살든 믿고 놓아 보세요.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죽는 일도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꼭 한번은 죽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고요히 명상해 보시길 바랍니다.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온 몸을 청정히 하며,

믿음은 힘이 견고하여 파괴치 못한다. 믿음은 능히 번뇌와 괴로움의 뿌리를 송두리채

뽑아버린다. 믿음은 능히 부처님의 공덕만을 지향하여 나아간다. [화엄경]

굳게 믿으면 이러한 공덕이 있습니다. 온 몸을 청정히 해 주며, 믿음의 힘은 견고하여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굳은 믿음이 있으면 능히 온갖 번뇌와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버리며,

능히 부처님의 모든 공덕을 나오게 합니다.참된 믿음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한 턱 넘어서고 나면, 그야말로 넘쳐나는 큰 힘과 정진력, 굳은 믿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참되게사는 것입니다. 밝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경계를 만난 수행자는 참으로 행복한 줄 아셔야 합니다. 언제 받을지 모를 것 이렇게 

수행할 때, 이렇게 밝은 법 만났을 때 만난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닦아낼 수 있으니...

굳은 믿음은 수행의 기초이기보다 전부입니다. 수행의 준비과정이 아닌 수행 그 자체입니다. 

굳게 믿는 자는 내 안에 굳은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되므로, 뿌리 깊은 나무가 온갖 

바람에 휘둘리지 않듯, 온갖 세상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앞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믿음이라는 속 뜰의 중심 굳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목탁소리]:글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