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성의 개념을 이해하고 참선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법문은 잘하는데, 자기 감정 하나 조절 못하고 이상에만 사는 선객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기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을 지키는 세퍼트 노릇만 하고 산다.
* 불성이란? 조주는 무(無)라고 했다. 형상이 없다. 그런데 여기 이 순간에 있으며
작용하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작용을 하고 있다. 있는데 보이지는 않으니,
이뭣고? 하게 된다.
* 관하는 힘이 커지면, 정이 익혀지고, 지혜가 생긴다.
* 화두법은 불교의 핵이다. 붓다가 경험한 것을 나도 경험하는 것이다.
* 대개의 선객들은 깨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는 아는데, 자기가 깨치지는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선문답은 병폐다.
* 마음을 알아야 한다. 작용은 하는데 마음도 부처도 중생도 아니다.
[???] 불성을 관해서 마음에 대한 감지가 와야 화두를 할 수 있다.
* 불성은 망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 불성을 자각하면서, 감지하면서 묘용을 봐야 의정이 생긴다.
* 불교의 ‘없다’는 ‘있되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있되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 일반 불자들은 큰스님을 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있는 문턱도 없게 해야 하는데, 없는 문턱을 왜 있게 하는지 모르겠다.
* 육조사의 공부 분위기는 부처님 당시와 같이 해보려고 한다.
* 생활 자체가 불교지, 경 공부가 불교가 아니다. 모든 행동 속에 여래가 있기 때문이다.
* 나는 하나인데, 일어난 번뇌도 번뇌,없애려는 생각도 번뇌다.
하나인 나에게서 두 생각이 나니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뇌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보려고 하라. 번뇌와 같이 살 줄 알아야 참선 잘하는 사람이다.
* 번뇌가 일어나면, 그 때문에 자기 마음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번뇌를 주시하여, 이윽고 가라앉으면, 그때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연꽃은 시궁창에서 핀다. 불성은 번뇌와 같이 있다. 번뇌를 좋게 써야 한다.
* 정이 깊어지면 식이 밝아지는데, 그때 화두를 안 하면 식의 밝음에 놀아나게 된다.
화두로 무심까지 가야 그 식이 쉬어진다. 밝은 식도 번뇌의 일종이다. 그것을
‘마른 지혜(乾解)’라고 한다.
* 번뇌 망상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어야 공부가 시작된다.
* 공부가 안된 사람은 앉아야 되고, 된 사람은 생활 중에서 공부해도 된다.
* 믿음이란? 나는 부처 마음이 있는데,단지 흐트러져 있다는 것.
* 틀리면 빨리 다시 시작해야 용기 있는 사람이다.용기 있는 사람만이 공부를 성취한다.
* ‘빨리’가 아니라 ‘바르게’! 바르게 공부하려면 법문을 들어야 한다. 마음 바뀌는 것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대개 법문 듣는 중에 온다.
* 자기를 믿으면 걱정할 게 없다. 번뇌가 있어도 그곳에 내가 있고,천당이나 지옥에 가도
그곳에 내가 있다. 내가 있으면 걱정할 게 없다. 번뇌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 뭐가 나냐?
* 석가가 자기를 보았다는 게 어떤 경험일까? 생각해 보라.
* 마음의 6개 문(육식)으로 나가면 바로 시장통이다. 안에 있으면 마음이다.
마음을 알고 행동하면, 무위(無爲)가 된다.
* 귀신은 몸 없는 귀신이고, 사람은 몸 있는 귀신이다.
* 많이 풀려고 하지 말고, 하나를 풀려고 해라. 그 하나 때문에 윤회하게 된다.
* 자기 마음의 말을 듣게 되면, 세상의 상식이나 도덕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 육식이 비어야 윤회가 끊어진다. 참선은 무서운 공부다. 마음뿌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공부다.몸과 마음은 뿌리 없는 나무다.
* 선문답이나 게송은 자기와 남을 속이는 일이 되기 쉽다.
* 진리의 고향, 믿을 데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 거품과 환상이 걷히는 곳.
* 성품은 비어 있으면서 비추는 성질이 있다.
* 종교, 종교 하는데, 깊은 차원에서 보면, 종교는 없고 사람만 있다.
* 마음은 오장육부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감정과 기운과 지혜 등으로 표현되고,
생각은 두뇌 안에서의 뇌파작용이다. 사람들은 대개 생각이 앞서기에 마음을 모른다.
서산대사는 “마음을 모르고 공부하면 어리석음만 는다”고 했고,
육조 혜능은 “마음을 알아야 성품을 본다”고 했다.
망상은 망할 생각이다. 상(想)은 상(相)에 집착한 마음이다.
* 마음은 항상 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괜찮지만, 마음이 실리지 않은 생각은 헛돈다.
* 미운 사람이 옆에 있을 땐,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미운 사람이 옆에 없는데도,
미운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그것은 미운 생각이 망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 망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있지도 않은데 혼자 만들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망상이다.
* 망상이 쉬어지면, 생각이 쉬고, 그러면 마음이 보인다. 그때 부처의 성품을 돌이켜 그
묘용을 본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보면, 생각이 끊어지고맑아져서 미워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 마음이 보이면 지혜로 바꿔진다. 마음을 보면, 내가 바꿔진다.
참선은 사람을 바꾸는 공부다.
* 내가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알면, 밖으로 찾는 마음이 쉬어져 살만하게 된다.
사람들은 괜히 나를 가려놓고 스스로 속아서 밖으로 찾으러 다닌다.
‘나’에 집중하면, 생활이 단출해진다. 일이 공부로 돌아온다.사람 대하는 눈이 변하니까,
사람을 달리 대하게 된다.일반인들은 작심삼일이지만, 참선을 하면 근본이 변할
수밖에 없다.마음을 모르니 작심하지만, 마음을 알게 되면 작심할 필요가 없다.
가려진 것을 벗기는 새해를 맞자.
* 생명에서 벗어나는 게 망상이다.
* 바깥으로 치닫는 것을 안으로 돌이키는 것, 견문각지를 돌려 그것을대하는 자를
보는 것이 참선이다. 바깥은 환상이고, 그것을 대하는 내 안의 본성이 나의 진실이다.
* 번뇌 망상은 내 마음을 대상에 뺏겨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다. 불교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참선을 하게 되면,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삶 자체가 교실로
변한다.
* 눈이 보는 게 아니라 눈의 뿌리가 눈을 통해 보는데, 그것이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을 돌이키면 바깥 경계는 끊어져 나가 버린다. 참선은 끊어가는 공부다.
* 다른 삼매는 깨어나면 다시 흩트려지지만, 참선 삼매는 그 자체가 깨어있는 것이다.
* 내 마음을 봐야지. 펄펄 살아있는 이 마음을 봐야지, 일어난 생각을 따라가면 안 된다.
* 참선은 무슨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더 현실적이고 정확하고 생생해지는
것이다. 이상한 공부가 아니라, 환상을 벗겨 깨어있고자 하는 것이다
. 세상을 잘 살려고, 정상인이 되려고 공부하는 거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 전도몽상이다.
* 사람은 환상으로 꿈을 몇 층이나 지어놓고 그 안에 갇혀 산다. 그 환상과 자기 본성
사이의 거리가 ‘겁’이다.
* 공부하면 시공이 없어지니까, 부처, 육조, 마조와 마주 대하게 된다. 노사(老死)가 없다.
늘 그 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 부처는 불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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