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현웅스님의 법문을 간추린 것입니다

qhrwk 2024. 12. 26. 07:27

 

* 상념 속에 있는 망상, 나를 떠났으니 망할 놈이다.
* 여러 마음 중에서 어떤 것이 眞마음이냐? 견문각지를 대하는 자를 관하면다 사라지고
하나만 남는다. 그게 一句다. 그것을 깨달아버리면 다른 雜마음에 초연해진다.
초연해지니까, 그림자(幻)가 되어버려, 집착이 끊어진다.

* 견문각지가 비었더라. 빈 것을 알고 대하는 자는 누구냐?
* 참선을 하면, 모든 경전이 일거에 다 풀린다.
* 선악이 없는 게 아니라, 선악 속에 있지만 물들지 않는다.
* 불성은 심왕이다. 심왕이 사자후를 하면뭇 짐승(잡심)이 도망친다.
* 어디다 화두를 하느냐? 깨달음의 씨앗에다 화두를 두어야지! 그래서 ‘佛性 觀’을 한다.
* ‘불성 관’을 하면, 보는 자마저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고 관만 남는다. 그게 의정이다.

* 저녁예불 할 때 종을 치면서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가 끊어진다(聞鐘聲 煩惱斷)”고
한다. 종소리를 듣고 있는 그 자리가 부처님이다. 귀는 부처님과 연결되어 있다.
귀를 통해 들을 줄 아는 것, 듣는 성질이 부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들을 줄 아는
그 마음을 보면 번뇌가 끊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 선심(禪心)에 들면,
지혜가 자라나고 보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다.
(離苦得樂)’가 된다.이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 깨달은 자가 본 인생의 실상은 苦海라는 말이 맞다.
* 지진 해일이 밀려와서, 사람 시체는 산처럼 쌓였는데 짐승 시체는 없었다고 한다.
확실히 사람은 환상 속에 살고, 짐승은 본능의 실상 속에 살고 있다.
* 살아있으면 속에서 열(급한 마음)이 난다. 그 마음을 봐야 수행이 된다.
가장 가까운 자기 마음을 봐야 한다.
* 속상한 마음이 날 때, 바로 공부의 기회로 삼으라.
* 살아있는 한, 민감한 몸이 있는 한,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생각만 많지 돌이켜보지는 않는다.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만남이란? 마음이 열려 만나는 게 진짜 만남이다.날마다 같이 사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만나면 헛 만남이다.오랜만에 만나도 마음을 열고
만나면 깊은 만남이 된다. 스승과 도반과의 만남이 그렇다. 서로 거룩하고
귀하고 아끼는 만남이 된다.
* 자기 지혜를 억누르고 있는 마음을 봐야 한다. 그 마음이 풀려야 한다. 막힌 마음
푸는 게 공부의 급소다.
* 성현이란 남에게 잘 묻고 들어서 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 생각을 생각으로 없애려면 안 되고, 믿음으로 조복 받아야 한다.

* 살아있으니까 걱정하게 된다. 그것을 인정하면 여유가 생긴다. 기운이 내려가고
차분해진다. 어려운 일 만나면 바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대하는 나를 봐야 한다.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어려운 일을객관적으로 보고 해결할 수 있다.
* 생각이 일어나서 나온 망상은 정상이다. 살아있으니까 일어나지, 죽었으면 일어나는가?
인정하고 부처의 씨앗과도 같이 있다고 믿는다. 불성의 거울에 자꾸 비추면 비밀이
드러나 수그러든다. 그러면 고요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정혜쌍수가 된다.

*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하지 않고는 중생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다.
* 마음이 바뀌면 새 생활이 늘 태어난다.지혜로 지식을 쓰게 된다.
* 불교는 앎을 배우지 않고, 관(觀)을 배운다.
* 공부는 새로운 것을 아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아는 것이다.
* 의정은 홀로 역력하게 있다. 그게 活句다.
* 소수의 큰스님만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소승불교다. 대승불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심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살려내는 것이
참선의 참모습이다.

* 천하장사도 번뇌를 이길 수 없다. 불성을 믿는 마음에 의지하여 가라앉힐 수밖에.
* 마음공부에도 복덕방이 필요하다. 번뇌 망상을 내가 직접 없앨 게 아니라,
불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복덕방을 매개하면 거래가 쉬워진다.

*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않아야 남에게도 속지 않는다.
* 자아가 공이 되면 외부의 색(色)도 공이 된다. 한쪽 손바닥이 비면,
다른 쪽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비우는 것이다.
* 수행은 자기 허물 보는 것.
* 사람의 마음을 바꿔주는 것 이상의 보시가 없다.


* 주역에서 근신하라고 읽는 것은화두를 들 때 관하는 것과 같다.한 생각 돌이키라는
말이다.
* 집착하는 동안은 지혜가 안 생긴다. 놓아서 고요해지면 지혜가 나온다.
* 참선 외에는 중생의 속성을 결판낼 길이 없다.
* 아는 것은 결국 망식(亡識)이다. 아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아는 것에 집착하여
머무는 게 나쁘다.
* 선(禪)을 볼 시(示)와 홑 단(單)으로 보아서 간단한 것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짝이 없는 것을 보는 눈이랄까? ‘한 손으로 치는 소리 내봐라’도 이 소리다.

* 선방에서 통솔하는 사람을 ‘노끈 세우는 사람(入繩)’이라고 한다. 번뇌 망상은 어지러워 세울 수 없다.다 쉬어버리면 자성(自性)에 의해서 한 노끈만 선다.
* 참선은 인간의 정신을 바로잡아주는 진리다.
* 부처님은 인간의 마음에 통달한 분이다. 선은 인간의 마음을 통달하는 공부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유일한 공부다.

* 답사는 옛날 사람들 손때 묻은 것 보러가는 거다.
* 내가 어디에 붙들려 있나 잘 살펴봐라.그것 깨닫자는 공부다.
* 마음에서 풀어지면 모든 것이 풀어진다.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다.
* 부처님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그 말로 번뇌 망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入禪)하라는 거다.

* 큰스님이 주장자 치켜들고 “알겠느냐?”고 묻는 것을 보았는데, 양심이 의심스러웠다.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한 사람이 남을 윽박지르는 것 같아서다. 참선은 참 정직해야
하는 공부다. 스님들의 숩관적인 법문에 속지 마라. 속으면 ‘부처는 부처고 나는
중생’이라고 포기하게 된다.‘자기를 중생이라고 한정시키는 것’이 큰 문제다.

* 번뇌 망상을 인정해야 자각이 되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기면 번뇌가
같이 있는 불성을 믿어라. 오만가지 작용을 다 하는데 보이지는 않는 그것을
확인해나가면, 결국 의정만 남고 화두로 들어간다.
* 자성의 성질을 설명한 것이 불경이다. 원래 불성이란 말을 육조가 자성으로 바꿨다.
참선으로 자성을 체득하고 불경을 보면 다 ‘내 소리구나’ 하게 된다.

* 누가 천국으로 가는가? 자기가 번뇌 망상을 털어보면 안다. 속일 수가 없다.
하지만 번뇌 망상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깨달으면 즉시 서방정토가 된다. 기독교의
에덴동산도 이 소리다. 부처가 나를 절대로 떠나 있은 적이 없다.서방정토가 나를 떠나
있은 적이 없다. 나 스스로 가려있을 뿐이다.
* 번뇌 망상에 손대지 마라. 원래 뿌리가 없어서 그냥 두면 사라진다. 만지면 덧난다.

* 지금 한국에는 참선이 유행이지만 옳은 공부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책보고 하다가 혼자 머물고 있거나, 경험 반 아는 것 반 섞어 머물고 있다.
안되면 어록에 매달리고 그러면 영영 진전이 없다.식이 밝아지는 것은 조심해야 할

단계이다. 나는 사람들이 헛고생 좀 안하고 공부하도록 인도할 수 없나 해서
‘불성을 관해가는 법’을 만들었다.
내가 초보자 시절로 돌아가서 불성을 염하고 관해가니까 번뇌 망상이 길을 비켜주더라.
미세망념만 남게 되는 그 상태에서 불성의 성질을 돌이키니 그대로 관이 안으로 향하여
이뭣고가 된다. 앞으로 초보자들은 ‘불성을 관해가는 법’을 공부하면 기초가 단단히
닦아질 것 같다.

* 묘용을 통해 부처 마음이 나타난다.
* 사람들은 진리를 지나치게 상상으로 대하고 있다. 실제 생활의 순간에 마음 바꿔
변하는 거지 무슨 신통이 아니다.
* 일반 삼매는 고요하기만 하지만, 화두 삼매는 정혜쌍수다.
고요하면서도 성성(惺惺)히 깨어있어 경계를 환히 내다본다.
물들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거울에 비유하는 것이다

조계사문 육조사 玄雄스님말씀

 

 

한국에서 현웅 스님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법랍 40년이 다 돼가지만 스님들에게도 그 이름이 생소한 것은, 출가후 반 이상의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해외포교를 해온 것이다.
1984년 스위스 제네바의 불승사에 초청돼 간 것을 시작으로 1986년 북미로 옮겨 지금까지 서양인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소재한 육조사(sixth patriarch ZEN center)와 시애틀의 돈오선원이 그동안 스님이 일궈온 전법의 터전. 스님은 사찰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의 정통 간화선을 근간으로 비파사나 명상법을 수용한 나름의 방법으로, 미국인들에게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왔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주에서 현웅 스님은 잘 알려져 있는 ‘한국인 멍크’로, 명상잡지의 표지모델이 된 적도 있다.
국내 출입이 잦지 않은 현웅 스님이 지난해 연말 한국에 와 서울 법련사에 머문 적이 있었다. 법련사는 스님이 구산 스님의 상좌이기에 인연이 닿은 사찰로, 기자 역시 그 때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이 한국에 온 이유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서양인들에게 해온 법문과 시, 선사와의 법거량 등을 한데 모아 한국으로 들고 온 것이다. 그동안 동서양을 오가며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깨달은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접촉이 없었던 한국의 불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